1. 민족주의적 서술에 대하여

기존의 교과서들에 어느 정도 민족주의적인 색채가 강했던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소위 내재적 발전론을 기본 모티프로 하여 서울대 이태진 교수의 고종 근대군주론 등 다양한 학설을 종합하여 서술하고 있는데
대체로는 '한민족'(그닥 동의하는 용어는 아니지만 편의상 사용한다)의 역량을 강조하는 방식이다.
이것이 개항기-일제시기 관련 서술에서는 한민족의 역량과 일제 등 제국주의의 폭력성을 강조하는 양면적인 방식을 갖는다.

물론 이 서술에 문제가 있는 것은 맞다.
이미 90년대 말에 임지현은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우리 안의 파시즘> 등의 책을 통해서 민족주의 등이 갖는 모순을 이슈화한 적이 있다.
말하자면 민족을 '반드시 잘 되어야만 하는 무언가'로 신격화하여 그에 대한 도전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근래 국문학과 쪽에서 많이 연구되는 소위 '모던 뽀이' 등 현상에 대해서는 적절하게 설명하지 못했을뿐만 아니라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소위 위안부 여성들이 입은 피해를 '민족의 수치'로 여겨 말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었다고도 한다.
또한 식민지 시기의 모든 것을 친일과 반일이라는 이분법적인 틀로 쪼갠다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다.
사실 그 사이에 있는 회색지대는 넓고 복잡했음에도 말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민족주의의 모순을 지적하는 '포스트 민족주의'의 문제의식을 현재 우파는 입맛에 맞게 편식하여 사용하고 있다.
일본뿐만 아니라 조선인 중 일부도 범죄행위와 침략행위에 가담했다거나, 대한제국/조선이 나쁜 정치가들로 드글거렸다는 이유로 일본 제국주의를 면책하는 것은 절대 포스트 민족주의의 의도에 맞는다고 할 수 없다.
포스트 민족주의가 의도하는 것은 반제국주의 투쟁 과정에서 억압된 우리 내부의 목소리들을 다시 찾고, 과거사를 입체적으로 이해하자는 것이지, 제국주의 그 자체가 갖는 폭력성을 용인하거나 면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단 제국주의라는 정책/행위 자체가 민족주의의 가장 극단적인 발로라고 할 수 있고, 따라서 포스트 민족주의를 주창하려면 제국주의부터 비판해야 하기 때문이다.

길벗 회원은 교학사 교과서가 만보산 사건을 빼놓고 있는 점이 아쉽다고 하셨는데 난 이것이야말로 교학사 교과서 집필진들의 의도라고 생각한다.
교학사 교과서 집필진은 절대 포스트 민족주의를 의도하는 것이 아니라, '대(對)일본 민족주의(혹은 반일 민족주의)'만을 무장해제하려는 것이다.
당장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이 저지른 만행에 대한 교학사 교과서의 언급이 있는지 주의해서 보아야 한다.

2. 교학사 교과서 그 자체에 대해

솔직히 교학사 교과서를 읽어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나중에 책을 한 권 직접 구해서 읽어볼 계획이다.
그러나 언론을 통해서 일부 문제점을 접해 본 결과 교학사 교과서가 그닥 좋은 교과서 같지는 않다는 인상을 받는다.
(예컨대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2183753
http://news1.kr/articles/1453928)
역사에 대한 가치판단이나 해석은 다를 수 있음이야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철저한 인용과 주석을 달아야 한다.
철학이나 문학은 보다 느슨한 인용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역사는 자료와의 싸움이다. 사료의 선택이 글의 신빙성을 좌우한다.
그런데 같잖은 블로그나 엔하위키 따위를 인용하여 교과서를 작성하였다는 것은 낙제점도 못 받을 짓이다.
(http://blog.naver.com/21sapientia?Redirect=Log&logNo=130183255664)
당장 인서울 대학에 아무 사학과 교수나 잡고 물어보라. 아니 강사들에게도 물어보라.
학생이 레포트를 내는데 블로그나 엔하위키 자료를 인용하면 어떤 점수를 줄 지.
당장 이것부터도 검정을 통과 못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뭐 그건 그렇다 치고....
글을 쓰던 중에 검색을 해보니 다음과 같은 블로그를 찾게 되었다.
백퍼센트 믿을만하진 못하지만 일단 논의의 기본점을 위해 참조하자면
http://blog.naver.com/whotheman?Redirect=Log&logNo=10183429994
길벗 회원의 주장과는 달리 오탈자뿐만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꽤나 수정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아직까지 수정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지점이 있는데
표면적으로는 오탈자 수정으로 내용 수정을 물타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언론 쪽으로는 자꾸 수정내용 대부분이 오탈자였다는 주장을 흘리는 한편 내용상으로 문제가 될 만한 부분들은 은폐하는 것이다.


3. 교학사 교과서 채택 반대 운동에 대해서

이거에 대해서 난 좀 원론적인 입장인데.
쓰겠다는 사람들한테 못 쓰게 해서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상한 음식 먹지 말라고 열심히 경고하는데도 그거 사 먹고 배탈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탓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쓰겠다는 사람'이 누구인지 좀 명확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교장인가? 역사/사회 교사인가? 학부모인가?
일단 기본적으로 초등교육제도라는 것은 부모로부터 교육권을 위임받아서 운영되는 것이다.
따라서 학부모들의 동의 없이 교장이나 교사가 일방적으로 결정해서 채택하는 것은 안된다고 본다.
다른 한편 학부모들은 교육에 필요한 전문성이 떨어질 수 있으므로, 교사의 식견/의견도 중요하다.
마지막으로는 학교 전체를 총괄하는 교장이 보기에 미풍양속을 해치지 않을 정도의 내용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세 가지가 충족되는 경우에는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하던, 그걸 라면냄비 받침으로 쓰건 다른 사람이 상관할 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교장이나 교사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면 그 정당성을 인정하기 힘들다고 본다.


4. 기타

원래 역사 교과서의 목적이라는 건 학생들에게 훌륭한 국민의식을 주입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국민을 '만들어내는' 게 교과서의 목적이다. 원래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게 당연하다.
이걸 비판하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탈민족주의적으로 가라.
모든 폭력을 비판하고 거부하라.
그게 아니라면 민족주의를 좀 강조한다고 타박하지 마라.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