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러시-더라이벌" 이라는 영화가 개봉했었습니다.

니키라우다와 제임스헌트 라는 과거 실제 F1레이서들의 이야기를

이런쪽 드라마에 특별한 재주가 있는 론하워드가 풀어낸 영화입니다.

역시 론하워드표 실화영화는 그냥 믿고보는겁니다.

GOOD JOB!!!!!!!!1


전체 영화내용은 패스하고 마지막부분에 제임스헌트와 니키라우다가 이런대화를 합니다.

비시즌중에 비행교육에 빠져있는 니키라우다를 보고 제임스헌트가 


"요즘 비행기에 빠져지낸다며? 재밌어?" 라고 묻자


"비행은 충동을 억제하고 정해진 절차와 규칙을 준수해야만 하는것이다. 이것은 레이싱에도 도움이된다. 너도 해보는게 좋을걸?"


대화내용이 정확하진 않지만 하튼 이런류의 대화였습니다.


저는 저 니키라우다의 말을 이해하겠더군요

진중권처럼 실제 비행교육을 받아본적은 없지만 그래도 마소의 flightsimulator라도 꽤 오래 해본경험에 의하면

비행은 어릴적 상상처럼 '찬란한 창공을 마음대로 슝슝 날아다니는 자유'와는 꽤 동떨어진

SID, STAR, ENROUTE등의 차트와 ATC의 명령을 그대로 따르는것이 거의 전부입니다.

내마음대로 더 빠르게 갈수도, 더 높이 날수도, 더 마음에 드는 방향으로 비행할수가 없습니다. (특정한 상황의 VFR비행을 제외하고)


그래서 flightsimulator를 접하고 빠르게 손을떼는 사람들은 상상했던것과 동떨어진 빡빡함에 (뭐 사실 게임에서는 그냥 마음대로 비행해도 아무런 일이 생기지는 않지만) 실망하는 사람이 많고

시간이 지나도 계속 붙잡는 사람들은 그 정해진 규칙과 절차를 준수해나가는 맛에 점점 빠져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게임에 구현도 되지않은 제약을 스스로 걸어서 비행하기도 하죠. 점점 하드코어하게 세팅해서 비행할수록 더 자유로와지는게 아니라 더 구속이 심해지는데도 다들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세웁니다.

게임에서는 아무때나 flap을 내려도 절대 고장나는 법이 없건만, 어느샌가 실제 유효플랩속도에 맞춰 플랩을 가동하는 자신을 보게됩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세워 목표했던 공항에 무사히 착륙을 하고나면

"정말 멋지게 창공을 날았다!!" 라는 기분보다는 "비행중 내가 준수한 절차"에 대한 뿌듯함이 먼저 밀려옵니다.



근데 얼마전 F1 2013이라는 게임을 결제했습니다.

아케이드틱하기보다는 하드코어에 더 무게가 맞춰진 게임입니다. (그래봐야 게임은 게임)


"좋아! 나도 게임속에서라도 난봉꾼 제임스헌트가 되겠어!" 라고 시작을 했지만

이내 제작자의 의도에 맞춰 변변찮은 레이싱휠을 장만해야만 했습니다.

게임에서는 난봉질을 할수가 없으니까요

오로지 트랙을 달려야만 합니다. 그것도 아주 잘


근데 이게임을 해보면서 느끼는건


이 굉장히 빠른 머신의 랩타임을 줄이기위해 필요한건

얼마나 악셀을 밟아대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정확하게 브레이킹을 구사하느냐였습니다.


난생처음 보는 트랙에 들어서면 자꾸 펜스에 부딪힙니다. 트랙의 전체그림이 전혀 머리속에 있지않기때문이죠

그렇게 몇바퀴를 돌다보면 이제 트랙이 머리속에 들어옵니다. 다음코너 다음직선구간이 서서히 그려지죠

그럼이제 본격적으로 랩타임을 줄일시간입니다.

가만보니 퀄리파잉에서 20여명의 AI레이서중 최소한 10위권으로 들어가려고만 해도 현재 랩타임에서 최소 10-20초 정도를 줄여야하는게 보입니다.

근데 랩타임 줄이기위해 초반에 공격적으로 몰아보면 랩타임이 생각처럼 잘 줄어들지않습니다.

1-3초정도 줄어드는게 전부입니다.

이런때의 패턴은 거의 이렇습니다.

직선구간은 풀악셀로 최대한 코너에 가까워질때까지 밟아댑니다. 그리고 코너에 다가오면 급가속을 하고 거북이처럼 빌빌빌 코너를 통과해서 다시 직선구간이 나오면 풀악셀로 방방 밟아댑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하는건 아닌것같습니다. 획기적으로 줄어들지않습니다.

줄여야하는 랩타임은 여전히 15초이상....


서서히 코너에서 더 먼곳에서 브레이크를 밟기 시작하고 악셀을 좀더 유연하게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신기하게도 악셀의 욕망에서 벗어나니 점점더 랩타임이 빠르게 줄어듭니다.

이런식으로 몇번 돌아보면 적절한 브레이킹 지점과 적절한 악셀사용법이 익혀집니다. 

여기서 더 자신을 타이트하게 조여봅니다.

점점 적절한 목표했떤 랩타임에 매우 가까워진 자신을 봅니다.


무수한 반복끝에 이제 남은 랩타임은 1-2초


여기가 지옥입니다.

이 1-2초를 줄이기위해서는 매우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뭣모르고 트랙을 돌때보다 오히려 몸에 힘이 더 들어갑니다.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공략한 각 구간의 공략법에서 한치의 오차도없이 더 타이트하게 해내야만 합니다. 그런것이 다 합쳐져야 1-2초가 줄어들수있습니다.


10초정도 줄이느데 소모되는 에너지보다 이 1-2초를 줄이는데 들어가는 에너지가 더 많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목표한 랩타임을 통과하고 나면 한숨을 내쉬고 게임을 종료시킵니다.

더이상은 무리입니다. 눈이 빠질거같고 몸은 너무 경직되었습니다.

스트레칭하고 화장실에서 쉬~하고 담배도 하나 물어봅니다.



근데 이거 실제 f1레이서에 비하면 한 1/10? 아니면 1/1000정도의 경험도 안되는것이죠

실제 F1레이서들은 전투기 조종사들이 격어야하는 중력가속도에 맞먹는 G를 이겨내야한답니다.


그리고 제가 마지막 랩타임 1-2초를 줄이기위해 집중했던 그 집중력 (눈알이 빠지고 몸이 얼어버릴거같은)의 수십배되는 집중력을 트랙을 도는 내내 유지해야합니다.


그런걸 생각하다보면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한없이 자유스러울줄 알았던 비행은 무수히 체크하고 지켜야할게 많은 전혀 자유스롭지 않은것이었고

마초적인 스피드가 제일 매력이라고 생각해던 레이싱은 머신의 성능과 엔진의 굉음보다는 '신경질적일정도의 집중력과 깐깐한 선생같은 정확성'이 랩타임을 줄이는데 가장 필요한것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