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여러가지 갈등 중에, 이른바 '노-노 갈등'이라는 것이 있다. 전통적인 갈등 관계인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가 아니라 노동자와 노동자간에 갈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대기업 노동조합과 중소기업 노동조합 그리고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간에 벌어지는 갈등을 말하는데, 쉽게 말해 그들이 서로 이해 관계가 다르고 대립관계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오늘은 이 문제에 대한 나의 생각을 써보려고 하는데, 이것은 지난번 나와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님 사이에 벌어졌던 말다툼과도 관련이 있다. 대기업 노조를 이기적, 수구적 집단이라 질타하는 김대호님에게 내가 '노동조합이 이기적인 것은 당연한건데 무슨 소리냐'고 시비를 걸었고, 그로 인해 짧게 글싸움이 벌어졌는데, 내가 당황했던 것은 그런 김대호님이 신자유주의적 질서를 일부 긍정하는 중도우파적 입장인 것으로, 나는 무조건 노동자들의 편을 드는 극좌 편향적 입장인 것으로 구분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이다. 도리어 나는 '신자유주의 하려거든 제대로 하자'라는 전제위에서 펼치는 우파적 주장이었고, 김대호님은 중소기업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 대기업 노조가 이타적인 양보를 해야 한다는 좌파적 논리에 바탕한 주장이었음을 밝힌다.

물론 김대호님은 대기업 노조의 직접적인 양보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었고, 그 분이 주장하는 대강의 요지는 이러하다. 대기업 노조가 임금투쟁과 집단이기주의를 자제하면, 여유가 생긴 대기업 경영자들의 중소기업 수탈(?)이 완화될 것이고, 따라서 중소기업 노동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지가 나아질 것이다라는 논리였다. 일단 이 논리의 적합성을 따져보는 것은 둘째 치고, 각 개인 혹은 집단의 이기적 행동들의 균형이라는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내가 오히려 우파적 논리에 바탕한 것이고, 특정 집단에게 이타적 행동을 주문하는 김대호님의 이념적 포지션은 다름 아닌 좌파의 그것이라는 것은 조금만 좌, 우파의 구분을 알고 있는 분들에게 매우 상식적인 판단일 것이다.

단지 내가 겉보기에 노동자들을 편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논리에 깔린 배경은 살펴보지도 않고 매우 쉽게 나를 '아직도 정신못차린 극좌파' 쯤으로 인식한 김대호님에게 우선 성급하셨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겠다. 도리어 대기업 노조라는 특정 집단을 개체화하고 대상화시켜서, 이타적이고 공익적인 행동을 해야한다고 주문하는 김대호님의 태도에서 나는 그 분이야말로 아직도 '스탈린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면 너무 과한 언급일까?

이 문제는 어쩌면 대기업 노조의 양보를 요구하는 김대호님이, 그렇다면 대기업 노조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구체적인 질문 앞에서 두리뭉실 추상적인 답변으로 일관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나는 '노-노 갈등'에 대해서 도대체 그 분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아무리 그 분의 글을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저 '대기업 노조는 이기주의야. 그래서 나뻐. 양보해라' 이 짧은 문장말고는 그분께서 이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없다. 대기업 노조 스스로 임금을 깍고 봉사의 희생 정신으로 일을 하라는 것인지? 아니면 노조 필증 반납하고 해산이라도 하라는 것인지? 아니면 대기업 노조가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임금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결사 투쟁 총파업이라도 벌이라는 것인지?

더 나아가 나는 김대호님이 '각 개인이나 집단의 이타적 행동'이 정말로 가능하다고 믿고 있는 것인지  그것이 참으로 궁금하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그 분께 세계를 바라보는 철학적인 밑바탕부터 다시 세우시라는 정중한 충고를 드릴 수 밖에 없다. 인간 사회에서 스스로 이타적인 개인이나 집단은 존재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1. 대기업 노조와 중소기업 노조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이상적인 분배의 형태는 각자가 생산하는 가치의 질과 양에 따라 분배하는 것이다. 여기서 그러면 그 가치의 질과 양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이다. 당연히 그것은 생산된 그 가치가 화폐로 교환되는 시장에서 결정된다. (여기서 노동가치설과 효용가치설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다).  예를 들어, '나사못을 박는 노동'이 있다고 하자. 여기 A와 B 두 사람의 나사못 노동자가 있다. 숙련도는 똑같아서 동일한 나사못을 동일한 속도로 박는다고 치자. 그런데 A는 대기업인 현대자동차의 소나타 생산라인 앞에서 나사못을 박고, B는 어느 중소기업 어린이 장난감 생산 공장에서 나사못을 박는다고 하자. 그럼 겉보기에 똑같은 노동을 하는 두 사람이 생산하는 가치는 똑같은 것인가? 아니다. 시장에서 A의 노동은 10,000원의 화폐와 교환되는 가치를 생산하고, B의 노동은 3,000원의 화폐와 교환되는 가치를 생산한다는 차이가 있다. 비록 동일한 제품의 나사못일지라도 시장은 소나타에 박힌 나사못과 어린이 장난감에 박힌 나사못은 그 가치가 다르다고 결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연히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하는 A가, 동일한 노동을 하고 있음에도, B보다 더 많은 보상(임금)을 받아야 한다. 결과적 평등주의에 입각해 동일한 노동을 하는 A와 B가 비슷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신자유주의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것이야말로 불평등한 것이다' . 이것은 단순히 대기업은 생산성이 높고, 중소기업은 생산성이 낮다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대기업보다 노동자 1인당 생산하는 가치가 훨씬 더 높은, 많은 중소기업들이 존재한다. 당연히 그럴 때는 그 중소기업의 노동자가 더 많은 보상을 받아야한다. 이것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 시스템에서 당연한  논리이다.

나는 대기업의 노동자들이 더 높은 보상을 받는 이유는, 그들이 강경한 임금 투쟁을 하는 이유도 물론 있겠지만, 그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것은 그들이 생산하는 가치가 중소기업의 노동자들의 그것보다 더 높다는 것에 있다고 본다. 도리어 대기업의 노동조합이,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하는 자신들의 노동에 비례하는 보상을 요구하며 투쟁하는 것은 시장 경제적인 논리로도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김대호님은 대기업의 노동자들이 높은 보상을 받는 것은, 오로지 그들이 과격하고 이기적인 투쟁을 일삼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는듯 하다. 심지어 그 분의 인식속에서 대기업 자본은 강경 노조의 볼모가 되어, 울며 겨자먹기로 그들의 조폭스러운 요구를 들어주는 불쌍한 존재로 파악되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참으로 의심스러운 것이, 그 분 자신이 과거의 좌파적 시각에서 벗어낫다고 주장하는 것은 혹시 본인이 자본을 좀 더 부드럽고 약한 존재로 바라보게 된 것으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다.

그러나 죄송하지만 자본은 피도 눈물도 없다는 마르크스의 판단은 여전히 옳다. 도리어 마르크스가 틀렸던 것은 '인간은 이타적인 행동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미처 몰랐던 것에 있다. 나는 김대호님이 마르크스의 여러 주장들 중에서 옳았던 것은 버리고, 틀렸던 것은 여전히 계승하는, 그러면서도 본인이 전통적 좌파와 결별했다고 주장하시는 분이 아닐까 한다. 만약 김대호님이 대기업 자본을 그렇게 호락 호락하게, 노조의 위협이 두려워서 막 퍼주는 존재로 생각하신다면,  그리고 그런 바탕위에서 이런 저런 정책과 진단을 고민하신다면, 죄송하지만 그 결과는 낭패 밖에 없다는 것을 감히 말씀드리는 바이다.

물론 쌍용자동차 노동조합의 경우처럼, 자신들이 생산하는 가치보다 더 높은 보상을 요구하며 투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 책임은 노조의 책임이 아니다. 노동조합은 이익단체이므로, 열심히 일하고 더 많은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 본연의 임무이다. 사태 책임의 대부분은 쌍용자동차의 자본가 혹은 경영진이 쌍용차 노동자들이 생산하는 가치가 얼마만큼인지를 설득해야 하는 본인들의 고유한 지휘 노동을 태만히 한 것에 있다. 자본가 역시 생산수단의 소유자이기도 하지만, 한 측면으로는 지휘 노동을 통해 가치 생산에 참여할 의무가 있는 노동자이기도 하다. 그들이 받아가는 배당과 고액의 연봉은 그런 노동의 댓가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대기업 - 중소기업 노조의 갈등을 어찌할 것인가?

현대 사회에서 기업은 자본가의 사적 소유물이기도 하지만, 협업으로 생산하는 가장 발전된 형태의 단위이기도 하다. 따라서 노동조합은 기업의 일부분이다. 이 말은 노동조합이 자신이 속한 기업의 생산성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생산성이 높은 기업의 노동조합은 그에 걸맞는 보상을 받기 위해 (이기적으로) 부단히 노력하고, 그렇지 못한 기업의 노동조합은 자신의 생산성에 맞는 보상을 요구하는 것과 아울러 회사의 투명한 경영과 기술 개발 노력을 감시하고, 경영진이 보다 더 높은 부가가치를 가진 상품을 개발하도록 때로는 압력을, 때로는 협조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자신들의 노동이 시장에서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아,  그럼으로써 더 많은 화폐와 교환될 수 있도록 만드는 노력이기도 하고, 차후 현재보다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게끔 하는 노력의 전제이기도 하다. 물론 이때에도 높아진 생산성만큼, 그에 걸맞는 보상을 요구하는 노동조합 고유의 활동은 생략할 수 없는 기본일 것이다. 혹시 어쩌면 노동조합의 이러한 모습들이 진정 김대호님이 바라마지 않는다는 21세기형 모습이 아니겠는가?

오늘은 바빠서 이만, 다음편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노 갈등'에 대한 것으로 이어서 쓰겠습니다.

제가 직장인인 관계로, 틈틈이 시간을 쥐어짜서 쓰는 글이라 이런 저런 자료나 데이터들은 깨끗이 무시하고 주장만을 적시하는 것을 양해하여 주시고, 교정을 못해 어설픈 논리의 비약도 심한 부분들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