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수학자들은 공리(axiom)에서 출발하여 정리(theorem)를 증명한다. 공리는 자명해 보이는 전제다. 증명은 자명해 보이는 논리 전개다.

 

수학 철학자들은 “무엇을 공리로 인정할 것인가”와 “무엇을 증명 절차로 인정할 것인가”를 두고 어느 정도 논쟁을 벌인다. 기하학의 경우 에우클레이데스(Εὐκλείδης, Euclid, 유클리드) 기하학과 비에우클레이데스(non-Euclidean) 기하학을 모두 인정하는 방식으로 결말이 났다. 순수주의를 표방하는 수학 철학자들은 수학자들이 흔히 쓰는 일부 증명 방식을 인정하지 않는다.

 

수학 철학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런 논쟁을 제외하면 수학계에서는 논쟁이 거의 벌어지지 않는다. 남들이 인정하는 공리와 증명 방식을 이용하여 증명을 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간혹 실수를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시비를 걸 일이 없다. 그리고 실수를 지적하면 실수한 사람은 곧바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

 

수학은 인간이 추구하는 학문 중 확실성의 극한을 보여준다. 하지만 수학자들도 정말 증명 과정이 자명한지 여부를 증명할 수는 없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인간 이성 자체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모든 수학 철학자들이 자명한 증명 방식이라고 인정하는 것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면 마땅히 반박할 수가 없다. 즉 절대적 확실성에 가장 가까운 수학도 절대적 확실성에는 미치지 못한다.

 

Lewis Carroll이 쓴 「What The Tortoise Said To Achilles」는 인간이 결코 절대적 확실성에 이를 수 없다는 점을 우스꽝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http://www.lewiscarroll.org/achilles.html

http://en.wikipedia.org/wiki/What_the_Tortoise_Said_to_Achilles

 

 

 

 

 

물리학과 화학
 

수학을 제외하면 물리학과 화학 이론들이 대체로 가장 강력하게 입증되었다. 이미 뉴턴의 중력 이론은 놀랍도록 정교한 정량 분석에 성공했는데 나중에 이보다 더 정확한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으로 대체되었다.

 

어떤 사람이 물리학 이론의 검증 수준이 수학의 완벽한 증명보다는 못하다고 시비를 거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물리학 이론은 수학 정리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일반 상대성 이론의 경쟁 상대는 뉴턴의 중력 이론이지 집합론의 정리가 아니다. 일반 상대성 이론은 뉴턴의 이론보다 더 낫다는 것이 입증되었으며 결국 뉴턴의 이론을 대체했다. 이것으로 그만이다. 일반 상대성 이론이 수학의 정리처럼 완벽하게 증명되지 않았다고 시비를 걸어봐야 별로 의미가 없다.

 

 

 

 

 

진화 생물학과 창조론
 

창조론자는 진화 생물학에는 빈틈이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물리학에 비하면 진화 생물학의 여러 이론들의 근거는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진화 생물학의 개념들도 그리 깔끔하지 못하다. 진화 생물학의 최적화 이론 등의 정량 분석은 물리학에 비하면 상당히 부실하다.

 

창조론자는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진화론이 아니라 창조론을 믿는다고 주장한다. 웃기는 얘기다. 이것은 세계 최고의 역도 선수도 1톤을 들어 올릴 수 없다는 사실에서 출발하여 다섯 살짜리 보통 꼬마가 1톤을 들어 올릴 수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 다른 비유를 하자면, 맥주를 3000cc 마시는 것이 건강에 별로 안 좋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농약 3000cc를 마시는 것과 마찬가지다.

 

창조론/진화론 논쟁이라는 맥락에서 진화 생물학의 경쟁 상대는 물리학이 아니라 창조론이다. 인간 같은 복잡한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 진화 생물학과 기독교 등의 창조론이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진화 생물학에 빈틈이 많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창조론은 진화 생물학에 비하면 너무나 부실하다.

 

 

 

 

 

동물학과 인간 진화 심리학
 

진화 심리학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창조론자과 비슷한 전략을 취하는 경우가 있다. 그들은 어떤 동물에 대한 진화 생물학 연구를 인간에 대한 어떤 진화 심리학 연구와 대비한다. 비판자에 따르면 인간에 대한 어떤 진화 심리학 연구가 어떤 동물에 대한 진화 생물학 연구에 비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그럴 수 있다.

 

어떤 면에서는 인간에 대한 연구가 유리한 점들이 있다. 인간이 주로 알고 싶은 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아주 많은 연구자들이 인간을 연구한다. 또한 인간은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아주 많은 정보를 언어를 통해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온갖 이유 때문에 인간에 대한 연구는 동물에 대한 연구보다 어렵다.

 

첫째,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더 복잡하다. 인간의 뇌가 우주에서 가장 복잡한 구조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일리가 있는 말이다.

 

둘째, 인간이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에 대해 항상 정직하게 말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특히 성 생활이나 도덕성 문제에 있어서는 인간이 곧잘 거짓말을 한다. 정직하게 이야기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말을 완전히 믿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자기 기만에 빠지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동물이 연구자를 속이는 경우는 훨씬 드물다.

 

셋째, 인간을 대상으로 잔인한 실험을 하는 것은 도덕적인 이유로 금지된다. 많은 경우 동물 실험도 규제되지만 여전히 인간에게는 감히 하지 못할 실험을 동물에게는 한다.

 

넷째, 인간의 경우 과거 환경과 현재 환경은 극적으로 다르다. 반면 많은 종의 동물의 경우 인간 근처에 살지 않는다면 과거와 비슷한 환경에서 산다. 따라서 인간의 경우 그만큼 진화론적으로 연구하기 힘들다. 예컨대 자식 수를 세는 것은 동물의 적응 또는 적응성 연구에서는 상당히 유용하다. 반면 콘돔이 있는 인간 사회에서 자식 수를 세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다섯째, 인간은 오래 산다. 따라서 여러 세대를 연구하기가 힘들다. 초파리나 쥐처럼 금방 번식하는 종의 경우와 비교해 보라.

 

여섯째, 우리는 인간이다. 어떤 면에서는 인간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직시하기 힘들다. 항상 공기 속에 살면 공기의 의미를 잘 알 수 없듯이 항상 인간적인 것들을 접하기 때문에 그 의미를 모르고 사는 것이다. 또한 인간 종의 치부를 밝히는 연구가 어떤 동물 종의 치부를 밝히는 연구에 비해 저항을 받을 가능성이 더 크다.

 

이런 상황에서 잘 입증된 동물 연구보다 인간 진화 심리학 가설이 상당히 부실하게 검증되는 경우가 많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인간 진화 심리학의 경쟁 상대는 동물학이 아니다. 이것은 물리학의 경쟁 상대가 수학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며, 진화 생물학의 경쟁 상대가 물리학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어떤 인간 진화 심리학 가설의 경쟁 상대는 다른 인간 진화 심리학 가설, 정신분석 가설, 기능론적 사회학 가설, 마르크스주의 가설, 가부장제 이론가의 가설 등이다.

 

어떤 인간 진화 심리학 가설이 수학에 비해, 물리학에 비해, 동물학에 비해 훨씬 부실하게 검증되었다 하더라도 인간 현상을 설명하려는 다른 모든 학파의 가설들에 비해 낫다면 적어도 잠정적으로 인간 진화 심리학 가설을 받아들여야 한다.

 

 

 

 

 

대안 제시와 비판을 위한 비판
 

위에서 이야기한 이유들 때문에 인간을 연구하기는 너무나 어렵다. 그래서 인간의 정신적,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현상을 다루는 가설들이 서로 경합을 할 때에는 도토리 키 재기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때에도 그나마 더 나은 가설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도토리 키 재기라도 해야 한다. “물리학 이론은 저렇게 환상적으로 입증 되었는데…”라며 푸념을 해 봐야 소용이 없다.

 

어떤 진화 심리학 가설이 마음에 안 든다면 더 나은 가설 즉 더 잘 검증된 가설을 제시하면 된다. 그러면 해당 진화 심리학 가설을 꺾을 수 있다. 이것이 과학계의 게임의 규칙이다.

 

그렇다고 내가 비판을 위한 비판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적어도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앞으로 가설을 더 잘 검증하기 위해서는 잘 검증된 모범적인 사례와 비교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모범적인 사례에 근접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둘째, 진화 심리학 가설을 정책에 응용할 때에는 상대적인 검증 정도가 아니라 절대적인 검증 정도를 따져야 한다. 어떤 현상에 대한 온갖 학파의 가설들이 모두 한심한 수준이라고 하자. 이 때 진화 심리학 가설이 그나마 제일 낫다고 하자. 그렇다고 그 진화 심리학 가설을 정책에 응용해야 할까? 아니다. 모든 가설이 다 한심한 수준이라면 어떤 가설도 응용해서는 안 된다. 의료나 정책에 응용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확실하게 검증해야 한다.

 

 

 

 

 

진화 심리학자들이 검증 정도를 과장한다고?
 

대중 매체나 대중서에서 소개되는 것과 진화 심리학자들이 쓴 논문과 학술서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전문 진화 심리학자들이 직접 쓴 글에는 확신에 찬 구절이 별로 없다. 짜증이 날 정도로 “그럴 지도 모른다(may be, probably, plausible)”라는 표현이 많이 나온다. 반면 대중 매체에서는 확실하게 검증되기라도 한 듯이 소개되는 경우가 많다. 그것도 상당히 왜곡해서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

 

진화 심리학자들이 상당히 자신에 차서 이야기할 때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보통 “니들보다는 낫다”과 이야기를 할 때다. 이 때 “니들”은 여러 조류의 비진화론적, 비인지 심리학적 학파들을 가리킨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한편으로는 수학, 물리학, 동물학 등을 보며 아직 갈 길이 멀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정신분석, 기능론적 사회학, 마르크스주의, 가부장제 이론 등을 보면서 우월감을 느낀다.

 

창조론자와 빈 서판론자들은 진화 심리학을 물리학이나 동물학과 비교하면서 한심하다고 조롱한다. 하지만 그들이 믿는 창조론이나 빈 서판론이 진화 심리학에 비해 훨씬 더 한심하다는 점은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다.

 

 

 

2010-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