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히트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던 건...
박일문의 소설에서였다...

그가 이름난 극작가라는 것을 알게 된 거는 그보다 더 뒤의 일이었고...
소설을 통해 접한 그는 여자 앞에서 똥폼잡기 좋은(?) 외우기 쉬운 짧은 시를 지었던 시인이었다.
(뭐... 이제는 시 따위 좋아한다고 해봐야 바람 맞기 딱 좋은 세태인듯 하지만... ㅎ)

그때 처음 접했던 그의 시는 이것이었지...


살아남은 자의 슬픔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까닭에
나는 다른 내 친구들보다 더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나 자신이 미워졌다.


어느날 서점에서 발견한 같은 제목의 시집을 사고... 브레히트라는 이름의 사나이에 대해 하나 둘 씩 알아가면서...
나는 점차 그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위의 시에 나오던 '내 친구'들이 나치 치하에서 죽어간 마거렛 슈테핀, 발터 벤야민 등이란 것도 알게 되었고...
바이마르 공화국, 나치독일, 미국, 종전 후 동독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도 만족하지 못하던 이방인으로 살아온 역정은...
한창 좋아하던 '광장'의 이명준을 떠올리게 했다...

그는 시가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수도 있을 뿐 아니라, 삶과 역사에 대한 통찰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시집의 다른 시들을 통해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얼마전 피노키오님의 글을 보면서 문득 다시 기억난 그의 시 한 편...


어느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

성문이 일곱 개인 테베를 누가 건설 했던가?

책에는 왕들의 이름만 적혀 있다.

왕들이 손수 바윗덩어리들을 끌고 왔을까?

그리고 몇 차례나 파괴된 바빌론

그 때마다 그 도시를 누가 일으켜 세웠던가? 건축 노동자들은

황금빛 찬란한 도시 리마의 어떤 집에서 살았던가?

만리장성이 완공된 날 밤

벽돌공들은 어디로 갔던가? 위대한 로마에는

개선문이 많기도 하다. 누가 그것들을 세웠던가?

로마의 황제들은 누구를 정복하고 개선했던가?

끊임없이 노래되는 비잔틴에는

시민들을 위한 궁전들만 있었던가? 전설적인 아틀란티스에서도

바다가 그 땅을 삼켜 버린 날 밤에

물에 빠져 죽어가는 자들이 그들의 노예를 찾으며 울부짖었다.

젊은 알렉산더는 인도를 정복했다.

그가 혼자서 해냈을까?

시저는 갈리아를 토벌했다.

적어도 취사병 한 명쯤은 데려가지 않았을까?

스페인의 필립왕은 자신의 함대가 침몰 당하자

울었다. 그 말고는 아무도 울지 않았을까?

프리드리히 2세는 7년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 말고도

또 누군가 승리하지 않았을까?

역사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승리가 하나씩 나온다.

승리의 향연은 누가 차렸던가?

십 년마다 한 명씩 위대한 인물이 나타난다.

그 비용은 누가 지불했던가?

그 많은 사실들.

그 많은 의문들.


그의 시들은 어찌보면... 내가 좋아하는 기형도나, 국어책에 자주 등장하는 김소월, 서정주나, 시 하면 떠오르는 다른 사람들의 시와는 다르고, 어쩌면 시 자체의 가치에서는 문학적으로 크게 평가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이후 읽었던 수많은 걸작 희곡들을 보면 사실 극작가 브레히트가 시인 브레히트보다 더 평가받는 것은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쉽게 희망을 이야기하기 힘들었던 그 냉혹한 시절에... 미당이나 기타 낭만적인 시인들처럼... 서정을...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것이 과연 쉬웠을까? 오히려 그런 시대에 낭만이나 서정만을 입에 담았던 사람들이야 말로 몰상식했던 것은 아닌가? 망명을 밥먹듯하며 체제를 비판했던 브레히트와, 그 이후 오래오래 잘 살면서 권력자를 찬양했던 미당을 비교해보면... 그 심증은 확신으로 굳어진다... 그리고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를 살아야 했던 그의 토로에 공감하게 된다...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나도 안다. 행복한 자만이
사랑받고 있음을 그의 음성은
듣기 좋고, 그의 얼굴은 잘 생겼다.

마당의 구부러진 나무가
토질 나쁜 땅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으레 나무를
못생겼다 욕한다.

해협의 산뜻한 보우트와 즐거운 돛단배들이
내게는 보이지 않는다. 내게는 무엇보다도
어부들의 찢어진 어망이 눈에 띌 뿐이다.
왜 나는 자꾸
40대의 소작인 처가 허리를 꾸부리고 걸어가는 것만 이야기하는가?
처녀들의 젖가슴은
예나 이제나 따스한데.

나의 시에 운을 맞춘다면 그것은
내게 거의 오만처럼 생각된다.
꽃피는 사과나무에 대한 감동과
엉터리 화가에 대한 경악이
나의 가슴 속에서 다투고 있다.
그러나 바로 두 번째 것이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