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레미 리프킨은 그의 저서 "노동의 종말"에서 기술 발전에 따른 실업의 대량 양산을 경고 했다. 기술이 발전 할수록 소수의 유능한 인력이 생산을 담당하게 되고, 따라서 중간수준의 숙련도를 가진 인력들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기술 디스토피아론은 폴 크루그먼의 핀잔을 듣게 된다. 크루그먼은 기술 발전에 의한 생산성의 향상이 서비스업에서의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여 중간 기능 인력들을 흡수한다고 주장한다.

이 논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직관적인 모형을 살펴보아야 한다. 리프킨의 직관 모형은 '공장 모형"이라고 할수 있겠다. 많은 사람의 손이 가던 생산과정을 기계가 대체함으로서 실업이 양산된다. 물론 그 기계는 소수의 뛰어난 엔지니어가 만든것이다. 다수의 중간 기능인력을 소수의 유능한 엔지니어가 대체한것이다.

반면 크루그먼의 모형은 "소세지" 모형이다. 인류의 과학기술이 발달함으로서 적은 노력으로 쏘세지를 만들수 있게 되었다. 남아 돌아가는 시간과 인력으로는 예술과 학술, 스포츠와 같은 레저활동을 즐긴다. 이것은 문명의 발전일 뿐이다.

공장 모형과 소세지 모형중 어느것이 더 현실을 잘 설명할까? 재밌는 주제가 아닐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우선 공장 모형에 의해 일시적으로 인력 재배치, 즉 유능한 사람들은 많은 소득을 얻지만 중간 기능직은 일자리를 잃는 현상이 발생한다. 하지만 소세지 모형에 의해 유능한 사람들의 고소득에 의한 새로운 수요가 발생한다. 이 수요가 실업자들을 흡수한다. 파티는 계속된다.

하지만 파티가 계속된다고 해서 문제가 없어지는건 아니다. 소세지 모형으로 인해 실업은 해결되었지만 새로운 문제가 발생할수 있다. 유능한 사람들의 고소득이 창출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생산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생산 과정 역시 기술 발전에 의한 양극화적 인력 배치에 기반을 두고 있다. 따라서 소득의 양극화가 발생할수 밖에 없다.

자영업의 창업이 계속되는 것은 불황때문이 아니라 경제 구조 자체의 변화 때문일수 있다. 고만고만한 인력들(중소기업)이 담당하던 생산과정을 소수의 유능한 재벌 대기업이 담당함으로서 양극화적 인력 재배치가 발생하고, 일자리를 잃은 노동력은 자영업으로 흡수된다. 그리고 이 자영업은 고소득 노동자들의 수요에 바탕을 둔다.

실업이 발생하지는 않는 다는 점에서 자기완결적 시장이 잘 작동하는 사례로 볼수도 있다. 생산성이 향상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양극화는 일종의 비용일수도 있다. 하지만 중간 숙련직들이 자영업으로 밀려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행착오의 문제는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자영업이 쉽사리 실패하지 않도록 기능 교육을 시켜주고 과당 경쟁을 방지하기 위한 규제를 두는 것이다.

또한 고소득이 창출하는 시장 수요를 관리할 필요도 있다. 고소득자들의 수요가 술이나 섹스 같은 비경제적 재화에 집중된다면 경제 구조는 그만큼 왜곡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소득자로부터 세금을 더 많이 걷어 스포츠, 문화, 학술 같은 분야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