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9-23 ()     12:31~

 

인식론

 

 

나는 명상을 한다. 명상을 하면 우주를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무한한 사랑, 한없는 자비, 지극한 평화가 느껴진다. 한마디로 우아일체다.

 

그렇게 마음 편안하고 행복하지만, 그런 행복한 순간을 단번에 박살내는 때가 가끔 있다.  급하게 대변이 마려울 때가 있다. 그것도 어디를 가느냐고 버스나 전철을 탈 때 그러면 너무나 곤란하다. 그냥 변은 참을 만하다. 소변은 참으면 병이 되고 대변은 참으면 정력이 세진다니 한번 참아볼 만하지 않는가 말이다.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설사끼가 있을 때 그런 소리는 사치한 소리다. 참을래야 참을 수가 없을 정도가 되면 그만 신음 소리까지 기어나온다. 모든 신경이 어떻게 빨리 똥눌 곳을 찾느냐에 집중이 되고 만다. 마치 신이라도 된 것 같은 마음 상태가 일순에 나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추락 하고 마는 것이다.

 

오늘 아침 도서관에 가는 아이들을 성대역까지 태워주고, 헤어질 땐 만면에 미소를 가득 머금으며 행복하게 공부하다 오렴~라고 (하고) 자상의 극치를 떨었다. 역 플랫폼에 도착하자마자 손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토요일이라 마음은 여유작작이었다. 느긋하게 자리에 앉아서 밑줄을 그으며 책의 세계로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어쩌랴. 뒤가 묵직해지더니 급하게 대변이 마려워 오는게 아닌가? 아니, 왜 이러지 싶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배변을 하는 습관이 들어 있어, 오늘 아침에도 식사 전에 분명히 똥을 누었는데 말이야. 아하, 평소에 먹지 않던 아침 밥을 먹어서 덜 나온 똥이 나오려는가 싶었다. 딸아이가 도서관 간다고 하니깐 아내가 아침을 준비했다. 그래서 덕분에 나도 한그릇 얻어먹고 나온 것이다. 그래서 갑자기 배변끼가 느껴졌던가 보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군포역에서는 조금이라도 빨리 전철에서 내려 화장실로 튀어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 출입문쪽에 서 있으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책은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었다. 삐직삐직 나오려는 느낌이 든다.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괄약근에 온힘을 주었다. 위대한 인간인데도 자율신경계를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에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 하느님!

 

금정역에서 내려서 보니 화장실 30M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오리 걸음으로 뒤뚱뒤뚱 그러나 종종걸음으로 걸어가서 (동양식) 화장실에 (문을)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손가방을 내려놓고, 책은 화장실 임시로 칸막이 윗쪽 모서리 위에 얹어 놓았다. 웃옷을 벗어서 걸대에 걸고 손가방() 앞쪽 구석탱이에 세워 놓았다. 자세를 잡고 일을 보기 시작했다. 뿌지직 일순간에 밀려나온다. 묽은 똥이었다. 고통은 순식간에 날아가버렸다. 순간 행복은 만땅이었다. 혹시나 싶어 조금이라도 더 밀어내려고 힘을 주었다. 손에는 책을 쥐고 있었다. 그러나 읽지 않았다. 앞쪽 칸막이와(의 사이) 공간이 협소해서 책을 펼 수가 없었다. 휴지가 없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휴지도 가지고 다녀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이 책을 넣어갖고 다니는 손가방에는 A4크기의 인쇄물들이 여러장 들어있었다. 얼마 전에 네이버에서 검색해서 인쇄해 놓은 A4 2장짜리 행복의 조건이라는 글이었다. 그 글을 읽었다. 딸아이가 갑자기 심한 병에 걸리고 나서야 건강하다는 것 자체만으로 99% 행복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심장한 글이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않는가. 건강을 잃어본 사람만이 건강이 행복이고 축복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바로 이게 인식의 비밀이다. 더 밀어내려고 몇분 용을 써보았으나 헛일이었다. 휴지를 구깃구깃 꾸겼다. 몇번이고 구겨서 부드럽게 되었을 때 밑() 닦기 시작했다. 닦아도 닦아도 똥이 묻어나왔다. 10번을 정도를 닦으려니 이러다 밑이 다 닳아져서 피가 나오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나약한 생각에 나도 놀랐다. 옛날에는 벼 밑단에서 추스려서 뺀 부드러운 볏집으로, 그것이 없으면 그냥 볏집을 서너번 접어서 밑을 닦곤 했던 추억에 아 너무 편해진 세상에 살고 있으니 그 좋은 종이로 닦으면서도 잘 못 될까 걱정을 하다니 참으로 한심하단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여기에 행복의 비밀이 있어 이렇게 똥누었던 얘기를 상세하게 적고 있는 것이다.

 

[화장실에서 읽었던 건강에 관한 글]

해바라기(sunlove418)

 

http://cafe.naver.com/hopebusiness/204

 

서로돕는사람들 종합소식지 23

벌써 3년이나 흐른 얘기가 되었습니다.
정말 암담하고 우리집의 행복은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던 그날의 일이
...
나의 큰 딸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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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남의 장녀인 수영이는 그 때가 중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공부도 꽤 잘하고 명랑쾌활한 그야말로 요즘애들의 표준인 그런 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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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중간고사 이틀째인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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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공부 때문에 밤을 꼬박 새운 수영이가 갑자기 눈이 두 겹으로 겹쳐서 보인다고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그래서 좀더 눈을 붙이고 일어나라고 말한 뒤 나는 아침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조금 뒤 수영이가 비틀거리며 학교갈 준비를 한다고 욕실에 들어가는게 보였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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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실에서 나온 수용이는 계속 비틀거렸고 밥을 먹기 위해 식탁에 앉아서는 이상한 헛소리를 하면서 실없이 웃는데 입을 심하게 비트는 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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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서야 나는 눈엎이 캄캄해지며 나의 무지함, 무관심이 너무 원망스러웠습니다. 부랴부랴 옷을 챙겨입고 남편과 같이 시내 큰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차 속에서 수영이는 자꾸 잠꼬대하듯 헛소리를 하고 몸은 한쪽으로 치우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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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우리는 의사선생님의 지시대로 이 병실, 저 병실 옮겨다니며 검진을 받았고, 그 사이 난 부처님께 간곡히 빌고 또 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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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딸 아무일 없이 무사히 퇴원할 수 있게 해 주시면 아무 욕심없이 바라는 것 없이 주어진 대로 만족하며 살겠노라고
...
검진을 마친 수영이의 병명은 소아성 중풍이었다. 그리고, 생전에 들어보지 못한 '모야모야'병도 의심된다고... 정말이지 겁나게 말씀하시는 데 나오는 건 눈물과 한숨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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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라도 하는 생각에 좀 더 큰 대학병원으로 옮겨 검진을 받았으나 역시 소아성 중풍이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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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저는 다리, 한쪽 팔은 힘이 없어 축 늘어져 있고 한쪽 입언저리가 약간 올라가 있는 수영이의 모습은 중풍에 걸린 어르신의 축소판 그대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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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을 보고 있는 우리 부부의 쓰린 마음을 누가 알겠습니까? 수영이는 오랜 치료 끝에 지금은 건강을 완전히 회복했습니다. 가금 편두통에 시달릴 땐 그 때의 악몽이 떠올라 가슴을 쓸어 내리곤 합니다. 이제 고2가 된 수영이의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며 속상해 하는 모습을 볼 때면 공부 잘 하라고 안할 테니 건강하라고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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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란 별게 아닌 것 같습니다. 온 가족 건강하면 행복의 99%는 확보한 것이고 항상 긍정적인 사고로 나 아닌 타인을 배려하며 사는 것이며, 행복의 고향은 분명작은 오두막집이 아닐까 합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요?


첫째, 행복은 육체적 고통, 아픔, 불편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통이 없는 상태 자체가 행복은 아니라고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불행하지는 않은 상태라고는 할 수 있어, 불행의 부재는 틀림없는 것이다. 아무리 고상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도 육체적인 고통을 겪게 된다면 결코 행복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행복하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으로 고통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질병에 걸려 아프다면 그것은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러니 건강을 잃지 않은 것은 최소한 불행하지는 않은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건강한 대다수의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해도 좋은 것이다. 그런데 건강하다고 해서 행복하다고 인식할 수 있을까? 아니다, 절대 행복하다고 인식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둘째, 행복은 비교를 통해서만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행복이라는 말을 쓰기 거북하다면 만족, 혹은 기쁨 다른 어떤 말로 대체 해도 좋다. , 어째튼 (어쨌든) 건강한 사람은 어떻게 해야 행복한 마음이 들까? 자신이 무척 아파서 고생을 하거나, 가족 중에 한 사람이 질병에 걸려서 고생을 해 본 사람들은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 경험을 했을 때 비로소 아픈 것에 비교해 보아 건강한 것은 너무 좋은 것이라고, 행복하다고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평소에 건강해서 아무런 고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건강이 뭐가 그렇게 중요해~라며 다른 중요한 현안에만 매달리게 된다. 경험해 보지 않은 것에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상태에 머문다. 그런데,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경험을 해보지 않고도 인식하게 된다. 먼 남의 얘기에서나, 혹은 만일 이라는 상상력을 동원해서라도 건강을 잃었을 때의 어려운 상황을 미루어 짐작해 보아서 건강한 것이야말로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피부로 느낄 만큼 직접적으로 경험을 해서건, 형이상학적인 사고력을 통해서건 비교해보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제대로 인식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만약에 비교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차이를 느끼거나 감지할 수가 없다. 이런 비교에 의한 차이는 오감의 작용에 있어서 더욱 명확하게 작용을 한다. 우리가 의식하고 있던 없든 늘 비교에 ()해서 느끼고 판단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참으로 교활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바로 행복의 기술을 활용할 전략을 배울 수 있다.

 

지금의 상태를 좋은 것으로 느낄지(생각할지) 아닐지는 비교를 하는 것에 의해서 가능하다. 훨씬 더 나빴던 상황이라()비교하면 지금() 상황은 너무너무 좋아서 만족할 수 있고, 행복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위의 내 이야기에서처럼 그 꺼칠꺼칠한 볏짚을 사용해서 밑을 닦았던 경험을 떠올린다면 부드럽고 깨끗한 휴지로 밑은 닦을 때마다 행복한 느낌을 잡을 수가 있는 것이다. 반대로, 요즘 많은 가정이 비데를 사용하고 있는데 갑자기 처한 상황에서 휴지로 밑()닦아야 한다면 집에서 비데 쓰던 생각과 비교하면서 바로 언짢게 느껴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분 좋게 느끼려면 어떻해야만 하는가?  바로 여기에서 내려다보고는 살아도 올려다보는 살지 못한다는 속담이 나온 것이다. 원리를 몰랐을 뿐이지, 진리였던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요즘 너무나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은 지금의 상황과 비교해 볼만한 열악한 환경이 없다. 옛날의 어려웠던 시절이야기를 해줘도 이해를 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얘기를 왜 우리한테 하냐고 반박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환경을 살아본 적이 없는 경험이 부족한 사람은 행복할 수가 없는 법이다. 오늘날 우리는 항상 좋은 상황과 비교하면서 살 수 밖에 없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점점 더 잘 살고 있으니깐 말이다. 그러니 불행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이 있긴 하다. 항상 더 좋은 상태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비싼 집을 살고, 더 좋은 차를 끌고, 더 더 좋은 상황으로 올라가면 된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그렇게 주위 사람들과 경쟁적으로 비교하면서 점점 더 좋은 여건으로 성장, 발전해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다. 그렇다면 행복하게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가?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과 비교하는 것이다. 누구나가 과거보다는 오늘이 좀 더 나아지거나 했을 것이다. 그렇게 어려웠을 과거와 비교해본다면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월급이 조금씩 늘어났을 것이고, 누구나 조금씩 성장해왔을 것이니깐 말이다. 물론 개중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할 수 없이 나보다도 더 나쁜 상황에 처해 있는 타인과 비교해서 만족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남과의 경쟁으로 점점 피폐해지는 경우에는 자신 자신과 비교함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다. 누구나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도록 자신을 계발하고 성장시켜 나가는 것이다. 남과의 비교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으나 자신과의 비교에 끝이 없다. 즉 자신과 비교를 해 나간다면 멈춤없는 성장이 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행복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설령 어느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행복이라도 그것은 곧 일상적인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왜냐하면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에 말이다. 예를 들어보자. 길거리에서 천만원의 돈을 주웠다고 치자. 그게 말도 안된다고 생각되면  복권에 당첨되었다고 가정해보자. 당첨된 것을 알았을 때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그 사실은 내 과거의 조건이 되어 버린다. 돈을 점점 쓰다보면 없어지고처음에 복권에 당첨되어 돈이 많이 있을 때와 비교하게 되면서 점점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저축이나 투자를 잘 해서 더 많은 돈으로 불려나간다면 예외겠지만 말이다.

 

행복은 이렇게 잘 비교함으로써만이 느끼고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즉 행복은 인식하는 힘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인식의 힘은 조금만 연습하면 누구에게나 가능한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불행하신가? 그렇다면 어려웠던 자신의 과거와 비교해 보라~!

 

이게 행복의 전부인가? 그렇지 않다. 또 다른 행복의 기술이 있다. 그것은

 


2006. 9. 23.
     13:57

 

 

고통의 예방이 불행해지지 않는 하나의 길이라고 생각하는 고서

김 선욱

 
(교정: 10-02-19 17:09~ 1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