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말, 박노해 시인이 얼굴 없는 노동자 시인이자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중앙위원으로 활동할 때에, 어느 비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고 전해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이야기이니 출처도 당근 알지 못하고, 어쩌면 박노해 본인 조차 기억못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질문 : 시인의 이름이 '노동해방'의 약자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럼 노동해방은 어떤 것일까요?
박노해 : 사회주의죠.
질문 : 그럼 사회주의는 어떤 것일까요?
박노해 : 노동자 모두가 하루의 보람찬 노동을 마치고, 가족들과 따뜻한 저녁 밥상을 마주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당시 안기부의 집중적인 수배를 피해다니면서, 사회주의 혁명에 일생을 바치겠노라 맹세한 혁명가의 말치고는 의외로 소박한 답변이었지요. 하지만 박노해의 답변은 이미 83년 그가 썼던 시집 '노동의 새벽'에 등장하는 어느 시의 한 구절이었고, 그 시를 읽어보면 그가 혁명가로 나서게 된 초심이 무엇인지, 그가 꿈꾸며 원하던 세상이 어떤 것이었는지 잘 드러내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박노해가 그 시를 쓸 당시, 노동법이 정규직만을 규정하고,  노조 활동을 하거나 회사가 망하지 않는 이상 정년이 보장되던 시절에 이런 시를 쓰던 박노해가, 당시보다 더 불안한 비정규 노동이 일상화된 지금을 살면서 왜 까무라치지 않는지 저는 그 것이 참 이상합니다. 년도와 작가의 이름을 지우고 읽으면, 이 시만큼 더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망을 노래한 시가 있겠나 싶거든요. 신문 기사를 읽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끄적거려봅니다.


평온한 저녁을 위하여 
                         - 박노해

나면서부터인가
노동자가 된 후부터인가
내 영혼은 불안하다

새벽잠을 깨면
또다시 시작될 하루의 노동
거대한 기계의 매정한 회전
주임놈의 차가운 낯짝이
어둠처럼 덮쳐 오고
아마도 내가 자살한다면
새벽일거야

 

잔업 끝난 늦은 귀가길
산다는 것, 노동자로  산다는 것의
깊은 불안이 또다시 나를 감싼다

 

화창한 일요일
가족들과 오붓한 저녁상의 웃음 속에서도
보장 없는 내일에
짙은 불안이 엄습해 온다

 

이 세상에 태어나
죄진 적도 없고
노예살이 머슴살이 하는 것도 아닌데
풍요로운 웃음이 하늘에 닿는
안정과 번영의 대한민국 땅에서
떳떳하게 생산하며 살아가는데
왜이리 종놈처럼 불안한 세상살이인가

 

믿을 거라곤 이 근육덩이 하나
착한 아내와 귀여운 딸내미
기만원짜리 전세 한 칸뿐인데
괴롭기만 한 긴 노동

 

쪼개고 안먹고 안입어도
남는 것 하나 없이 물거품처럼
이러다간 언데 쓰러질지 몰라

 

상쾌한 아침을 맞아
즐겁게 땀흘려 노동하고
뉘엿한 석양녘
동료들과 웃음을 터뜨리며 공장문을 나서
조촐한 밥상을 마주하는
평온한 저녁을 가질 수는 없는가

 

떳떳하게 노동하며
평온한 저녁을 갖고 싶은 우리의 꿈을
그 누가 짓밟는가
그 무엇이 우리를 불안케 하는가
불안 속에 살아온 지난 30년을

이제는,
평온한 저녁을 위하여
평온한 미래를 위하여
결코 평온할 수 없는
노동자의 대도를 따라
불안의 한가운데로 휘저으며
당당하게 당당하게
나아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