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정치적 自我 그것이 문제다!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장)

 

여의도에 사무실이 있다 보니 정당의 유력자들과 종종 스치듯 만난다. 설 직전 한 정당의 유력 인물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1시간 가량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 여운이 길고 씁쓸하다. 방문한 사람이야 나름대로의 성취감과 여유를 깔고, 2의 도약을 위해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서 얘기 좀 듣겠다는 자세였기에 논쟁할 이유도 없고, 논쟁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덕담과 선거전망과 전략을 담담히 주고 받는 과정에서 정당의 영혼이랄까 안목이 느껴져서 걱정스럽고 씁쓸했다.  진보개혁 동네에서 새롭게 뭔가를 해 보겠다고 하는 데가 이러니 대한민국의 국운이, 또 진보 동네의 운이 이것 밖에 안되나 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영국 노동당의 18년 야인 생활이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내 나이를 포함해서 우리 세대의 나이에 10, 15살을 더해보니 한숨이 나왔다.

 

‘30society’ 줄기 세포 하나라도

이 얘기는 좀 있다 하기로 하고, 담담하게 주고 받은 대화를 소개하자. 사회디자인연구소와 좀 거리가 있는 사람을 만나면 약방에 감초 격인 질문이 있다.

 

“연구소 어떻게 유지하냐? 돈 꽤 들 텐데…… (당신 포함 상근자들은) 뭐 먹고 사냐? 올해 출마하냐? 연구소 뭐 할거냐?  지방선거 어떻게 될 것 같나?“

 

하도 질문을 많이 받다 보니 답변이 간단하다.

 

“출마 안 한다. (상근자 중에는) 할 사람도 없다. 연구소 고유 사업(컨텐츠 생산 및 지식인, 전문가 네트워킹 사업, 한마디로 30society 사업)을 잘 해보려고 한다. 국민배심제를 통한 연합정치운동을 해보려고 한다. 지방선거? 솔직히 3~5%짜리 들이 10~15%쯤 너끈히 된다고 생각하니 잘 될 것 같지가 않다. 진보개혁이 공멸해도 (2012년에 쓸) 자신의 정치적 자산은 많이 생긴다고 생각하니 연합정치가 잘 되겠냐? 한나라당이 두 개로 쪼개지면 몰라도…… 그런데 쪼개질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얘기를 좀 더 나누면 이런 얘기도 하게 된다.

 

2010년에 연합정치 성과가 생기면, 그러니까 정치적 지하수 개발에 성공하고, 몇 군데나마 연합을 통해서 승리를 일구면, 이를 기반으로 2012년 대회전을 위해 연합정치를 넘어, 통합정치 운동을 하고 싶다. 주요 정당들이 정파가 되어 한 두 개의 큰 당에서 경쟁하는 그런 구도……”

 

이쯤 얘기하면, 연합정치든 통합정치든 그 주체는 5당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로부터 “(어느 당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이) 꿈도 야무지네하는, 마음속의 비아냥을 듣는다. 그런데 지방선거 이후부터 2012년까지 상황에 대해서 관심 있는 사람은 별로 본 적이 없다.  2010년에 목표한 대로 성과를 올리면 2012년 까지는 너무 쉽게 가기 때문이다.

 

연구소 근황을 묻는, 풍찬노숙을 좀 해 본 방문객들이 제일 궁금해 하는 것은 사실 연구소의 중장기 생존 여부다. 나이 사십 중반이 넘도록 (무늬만 연구소가 아니라) 진짜 연구소를 해보지도 않았고, 지식과 지혜를 팔아서 먹고 사는 컨설팅 업을 해 보지 않은 조직가 출신들은 대체로 연구소의 가치를 모른다. 생존에 지극히 회의적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사회디자인연구소가 버티고 있는 것이 미스터리 인 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내 얘기도 이젠 녹음기 틀 듯 나온다.  

 

“개척교회가 다 뻔하죠. 헌금 액수가 얼마 안되니 목회 하는 사람들이 재주껏 생계비를 벌어야죠. 다행히 요즈음은 지방선거철이고, 메니페스토(공직선거법 60 4) 때문에 정책마켓이 조금은 형성되어 이전 보다야 한결 낫습니다.”

 

기독교 배경이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설명하면 고개를 끄덕인다. 2000년 전 사도 바울도 그물 짜는 기술로 밥벌이 하면서 터키지방과 그리스 지방을 전도여행 했고, 지금도 밥벌이 노동을 하는 가난한 목회자들이 수도 없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연구소 후원자들에게 괜히 미안하다. 사실 이 바닥을 아는 사람들은, 무슨 권력도, 유력 정치인도 뒤에 없고, 그렇다고 정파적 배경도, 종교적 배경도 없고, 또 큰 손도 없는 연구소가 오로지 참신하고 괜찮은 생각으로 소액 다수 후원금으로 사무실을 유지,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회디자인연구소 후원금은 정치인 후원금의 100배의 가치가 있고, 종교를 배경으로 하는 단체의 후원금의 10배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큰 이슈를 잘게 쪼개서 시민운동을 전개하지 못하여 빠르게 성장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있지만……

 

30society 사업에 대한 질문도 빠지지 않는다. 여기에 대한 답변도 이젠 녹음기 틀 듯 나온다.

 

“과거 30년을 돌아보고, 미래 30년을 전망하며, 한국 사회가 아직 해법 자체를 갖고 있지 못한 30개의 주요 agenda 1년이고 2년이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해법을 내는 30인의 (선수)위원회 30개 만들기죠. 제가 어디서 무얼 하든 평생의 중심사업이 아닐까 합니다. 올해는 2~3개만 해도, 아니 줄기세포 하나만 형성해도 만족합니다

 

여운이 길었던 이유

 

여운이 길고 씁쓸했던 결정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짧은 대화이긴 하지만(이것은 소개하지 않으려 한다), 연합과 통합에 대한 방어적, 부정적 정서와 문화가 저류에 예상외로 세차게 흐르는 것이 감지됐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이를 걱정하기는커녕 활용하려는 듯한 지도부의 생각도 느껴졌고, 또 당의 구조상 결정적인 시기에도 못 먹어도 고를 부르는 저변을 컨트롤 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노무현의 정신과 방법 실종 사태 내지위대한 정신의 기근 사태에 대한 문제의식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정당이라는 존재가 정치인 팬클럽도 아니요, 어떤 모순.부조리에 항의하는 촛불 시위대나 화염병을 든 돌격대가 아니라, 거대한 규모의 재정과 공무원과 법, 제도, 정책 입안.집행권을 맡겨달라고 호소하는 존재가 맞다면 마땅히 지적으로, 문화적(영적)으로 선진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 정당원이 되려면 가방끈이 길고, 책 많이 읽고, 투쟁 경력이 화려하고, 인품이 고상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가방끈과 인품이 어떻든 버스 운전사는 운전을 잘해야 하고, 의사는 병을 잘 고쳐야 하고, 상담센터 직원은 친절해야 하듯이, 정당과 당원들은 사회와 역사가 자신들에게 요구하는 어떤 (지도적) 역량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단적으로 정당의 강령, 정책과 그 배경에 대해서, 또 국민들이 느끼는 다양한 고통과 그 원인과 해결책에 대해서 소상히 설명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마치 고졸 카센터 수리공이 고장 수리하러 온 고명한 교수 고객(운전자)에게  고장 원인 등을 소상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하듯이......그런데 기존 정당들이 말도 못하게 후지다면서 새로이 만들어지는 진보개혁 정당들조차도  이게 팬클럽인지, 촛불 시위대인지, 분노와 미안함과 정치적 소외감을 나누며 서로 위로하는 동호회인지, 국가운영권을 맡겨달라고 하는 정당인지 알 수가 없다.

요컨대 서로 덕담하며 근황과 전망을 담담히 주고 받았지만, 대화의 여운이 길고 씁쓸한 것은 전반적으로 정당의 본령이 무엇인지 당원들이 의식하는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연합정치의 필요성 조차도 잘 모르는 어린 '정치적 개성파(막가파)' 층도 꽤 두터운 것 같기도 하고, 중.상층(백전노장층?)에서는 센 놈에게 행여나 먹히지 않을까 두려워한다는 느낌이 뚜렷했기 때문이다. 한편 약자의 보호 본능인지 다른 당에 대한 근거 없는 폄하, 자당에 대한 근거 없는 자부심, 한마디로 유아독존, 선민의식, 전투적 편협성이 세차게 흐르는 것 같았다.  노무현과 진보개혁의 동반 좌절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즉자적 분노와 증오심을 에너지원으로 하여, 촛불 들고 당장 이명박 끌어내리자고 외치다가 지금은 그 행방을 알 수 없는적지 않은 촛불 대중의 심리가 느껴졌다. 노무현을 팔지만 노무현의 지적, 영적 유산은 어디에 뒀는지 알 수 없고, 진보를 팔지만 꽤 길고 풍부한 정치적 실험을 한 한반도 진보개혁 운동에 대한 깊은 성찰이 보이지 않았다.

 

역사의 희미한 윤곽선을 보다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산의 능선을 보는 눈으로, 역사의 희미한 능선(윤곽)을 바라보면 당대의 가장 선진적인 세력이 정치사회 혁명을 주도하면 그 나라는 수십 수백 년에 걸쳐서 융성 발전하였다. (결과론적인 해석인지, 내가 일본사에 과문해서인지 모르지만) 일본의 메이지 유신과 근대화를 주도하던 세력은 당대 일본의 가장 선진적인 세력이었다. 그들과 역사의 주도권을 놓고 다투던, 막부 및 봉건영주(번주) 세력과 비교하면 확실히 그렇다. 사츠마 번(薩摩藩)과 죠슈번(長州藩)의 개명된 하급 사무라이들은 당시 일본에서, 가장 부유한 세력이 아니었지만,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 알았고, 서양 문물 수용에도 적극적이었다. 물론 배움에도 적극적이었다. 사무라이 기풍이 몸에 배여 있어서인지 모르지만 강대한 열강의 힘 앞에 후퇴하거나 구부릴 줄 알았다. 물론 대의를 위해 자기를 던질 줄도 알았고 또 대담했다. 일본이 청나라, 러시아를 물리치고, 조선을 병합하고, 근대화를 완수하여 제국주의 열강으로 등극하는 과정은 살펴보면 메이지 유신 주도세력의 탁월한 전략적 선택과 리더십에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들이 비록 당대 일본의 최 선진세력이었다 할지라도 몇 번의 큰 승리에 기고만장해져서(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결국 군국주의로 치닫고,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도발하여 패망했지만……

 

 

서구의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을 일으킨 부르주아지(중소상공업자)도 당대의 최 선진세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상대는 왕권과 대토지와 농업에 기반을 둔 왕족, 귀족세력이었으니까! 러시아 혁명사를 복기 해 보니, 당시 러시아혁명을 주도한 지식인과 대도시 공장 노동자 세력은 최선진 세력이라고는 말할 수는 없어도 당시 짜르체제와 대토지 소유에 기반을 둔 귀족 세력과 대다수 농노들에 비하면 상당히 선진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랬기에 한때 나마 미국과 자웅을 겨루던 초강대국이 되었지 않았나 싶다. 중국 혁명을 주도한 세력 역시 당대의 최선진 세력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난 30~40년간 중국을 개혁, 개방으로 이끈 세력(공산당 우파라고 봐야 하나?)은 중국에서 가장 선진적인 세력이라고 봐도 그리 틀리지 않을 것 같다.

 

북한과 남한의 지난 60여 년의 역사도 그 주도 세력의 안목과 지배적 문화(정신)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쪽은 자력갱생에 기초한 사회주의를, 다른 한쪽은 (분단과 좌파.민족 세력의 떡수와 미국의 세계전략에 의해) 왜곡, 변질, 교정되긴 했지만 어쨌든 민주주의, 공화주의, 시장경제, 개방체제를 뿌리내리게 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큰 틀에서 한국은 인류가 축적한 당대 최고 수준의 지식과 지혜 흡수하면서 굴러왔고, 북한은 그렇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는 말이다.

 

역사를 거시적으로 보면 동서양 주요국의 현대사는 세계사의 흐름을 탄, 지적으로 문화적으로 선진적인 정치사회 세력(계급, 계층)이 주도한 것은 확실한 것 같다.  또 역사를 거시적으로 보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경우는 국가의 기본 질서를 잡아나가는 큰 사회변혁(혁명)기가 아닌가 한다. 미시적으로 보면 얼마든지 역진하는 경우가 있으니까…… 나는 지금 한국 사회는 큰 사회 변혁기 내지 정책 패러다임 교체기라고 생각한다. 진보와 보수의 주류 정책 패러다임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가 한국의 최선진 세력인가?

이런 시각으로 한국 사회를 조망할 때, 지적, 문화적(영적)으로 최선진 세력이 누구일까? 그들의 정치적 안목과 요구를 어떤 정치사회 세력이 잘 반영하고 있을까? 분명한 것은 고용안정, 민영화 반대, 신자유주의 반대를 외치는 조직노동 세력일 것 같지는 않다. 농민 세력도 아니다. 실업자, 영세자영업자도 아니다. 물론 대학생도 아니다. 나는 1970~80년대 학생운동의 힘의 상당 부분은 이들이 당시 지적으로, 문화적으로 가장 선진적인 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혹시 재벌?

물론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때는 이들도 대학생, 군인, 공무원만큼 선진적인 세력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확실히 아니다. 이들은 독과점, 불공정거래, 분식회계, 회사 재산 빼돌리기, 경영권 세습 등을 통해서 가치생산 생태계를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들은 서구의 대토지 소유 귀족이나 일본의 막부나 영주(번주)와 비슷하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도대체 서구의 부르주아지, 일본의 개명된 사무라이 세력, 중국의 공산당 같은 존재들은 누구일까? 한국의 거대한 3비층(비경제활동인구, 비임금근로자, 비정규직)과 청년 실업자 등 압도적 다수를 자유롭고 억울하지 않고, 풍요롭게 만들어주고, 또 따뜻하게 감싸줄 수 있는 그런 이념과 정책과 문화와 경륜을 가진 존재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한마디로 이 시대 한국의 물질적 문화적 생산력을 선도할 수 있는 존재들은 누구일까?

 

그런데 한국 사회 자체가 게임규칙이 불합리하고, 문화적으로 천박해서 집단 전체적으로 건강한 세력은 거의 없을 것 같다. 너나 할 것 없이 기회만 있으면 부동산 불로소득과 각종 자릿세를 추구하고, 사교육 등을 통해서 개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유적 본질에 주목한다면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건강한 기업가/중소기업가 그룹, 재벌과 기업을 실질적으로 떠받치는 지식근로자(화이트 칼라) 그룹-이들이 하급사무라이 세력과 가장 닮지 않았나 생각된다- 전문가 그룹 등이 아닐까 한다. 나는 이들이 곧바로 정치 주체가 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들의 안목과 요구를 받아 안는 정치 세력이 한국 사회의 미래를 주도하는 것이 압도적 다수에게 좋은 최선진적인 세력이 아닐까 한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자유롭고, 정의롭고, 풍요롭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원한다. 공정한 경쟁을 중시하고, 기여, 부담, 의무와 권리, 이익, 혜택이 균형 잡힌 공평한 사회를 원한다. 그런 점에서 불로소득과 정치적, 경제적 자릿세(지대)에 대단히 비판적이다. 개방에도 적극적이고 경쟁력 담론을 터부시 하지 않고, 역동성을 담보하는 유연안정 사회를 옹호한다. 또한 도전의지가 충만한 사람들이 벤처중소기업 하러 앞다퉈 나서는 진취적인 사회를 옹호한다. 공공부문 개혁에도 환호하고, 토건족의 재정 약탈과 재벌대기업의 중소기업 약탈에도 거부감이 심하다. 한마디로 김대중, 노무현의 합리적 핵심에도 깊이 공감하고, 이명박의 합리적 핵심에도 공감한다

또한 대한민국은 탈권위, 분권과 자율, 대화와 타협, 도덕적 신뢰, 공무원에 대한 전폭적 신뢰로 끌어갈 수 없는, 기본 질서 자체가 아직은 제대로 잡히지 않은 나라는 것도 안다. 따라서 국가경영은 도덕성과 실력(노하우와 세력)이 있는 세력이 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거 결과와 여론 조사를 종합해 보면 이들은 스윙 보트(swing voter)이다. 노무현을 찍었다가, 이명박을 찍었고, 지금은 엉거주춤한 상태이다.  민주당에도 한나라당에도 선뜻 마음을 주지 않는다. 대체로 아직은 한나라당에 더 높은 점수를 주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실체를 알길 없는 신자유주의 반대를 정체성으로 삼기도 하고, 자유주의 세력도 아닌 존재들에게 자유주의 딱지를 못 붙여 안달하고, 부자 VS 빈자, 자유주의 VS 사민주의/국가주의, 영남 VS 호남, 수도권 VS 지방이라는 지극히 불리한 대립구도를 만들려고 하는 진보개혁 세력의 닭 짓에 비추어 보면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다.  나는 역사적으로 큰 사회변혁(혁명)기를 거친 어떤 선진국에서 부자 VS 빈자의 대립구도를 세웠는지 알수 없다. 서구? 일본? 미국? 다 아닌 것 같다. 물론 무식하고 시대착오적인 혁명가들이 설쳐댄 남미 등 후진국이라면 몰라도......

 

나는 미국 민주당은 지역 기반도 있지만, 산업기반도 있다고 알고 있다. 산업기반이 있다면 부자기반이 있다는 얘기다. 즉 미국 공화당이 주로 석유산업, 군수산업, 항공산업, 농업 등을 기반으로 한다면, 미국 민주당은 IT, 영상문화 산업 등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특히 미국 민주당은 지식인 사회(대학 교수 등)의 지지가 절대적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흑인 등 취약계층과 노조의 지지도 받고 있다고 알고 있다.(물론 이 노조는 한국의 노조와 달리 소득수준이 평균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 진보개혁 세력은 지역 기반은 있지만, 산업기반은 없다. 쌍용차 노조의 공장점거 사태에 대해서 쌍용차 노조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이를 진보의 정체성처럼 생각한다), 그 바깥에서 현실적 해결책을 호소하는 수많은 협력업체와 사무기술직과 평택 주민의 눈물과 한숨을 외면해서는 산업기반이 생길 리가 없다. 한국사회의 물질적 문화적 생산력을 주도하는 벤처.중소기업의 지지도 받기 힘들다. 한국 진보개혁은 대학생들의 지지는 많이 받지만, 지식인 사회와 화이트 칼라와 세상사를 웬만큼 아는 40대 남성의 지지는 별로 받지 못하고 있다. 이래서는 한국 진보개혁 세력의 미래는 없다.

 

약한 자아의 문제

 

가만히 보면 한국은 진보도 보수도 자아가 약해서 인지, 그 정체성을 반대(Anti these)를 통해서 형성해 온 것 같다. 한 쪽은 반공(반미친북좌파), 반김정일이고 다른 하나는 반제(, 미 제국주의), 반독재(탈권위주의), 반신자유주의다. 이는 근본적으로 방어적 심리의 발로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아가 약하면 대체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근본주의로 경도된다. 하지만 자아가 강하면 유연해지고 통합적 리더십을 발휘하려고 한다. 경영 능력을 중시한다.

 

생각해 보니 진보개혁 세력은 물론이고, 노전대통령 조차도 반칙, 특권을 밥 먹듯 하는 주류 사회에 대한 분노, 증오, 경멸이 심해서인지, 포용하고, 통합하려고 하기 보다는 단절을 통해서(탈 권위, 권력기관에 대한 간섭 배제, 공무원에 대한 부당한 간섭배제 등) 정치적,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려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역사와 대화하는 지사적 리더십이었다고나 할까? 암만 봐도 당근과 채찍, 정치적 거래, 마키아벨리즘 등을 통해서 자신의 의중을 관철하는 (국가경영) 선수적 풍모는 그리 중시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는 이명박과 보수세력도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물론 조중동은 훨씬 심하다. 그런 점에서 한국 사회의 정치사회 리더십의 심리 상태는 아직 정상 상태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내가 연구소를 방문한 한 정당의 유력자를 통해서 확인 한 것도 바로 이것이다. 5+4의 정치 협상이 난항을 겪는 이유도 비슷하다. 정치적 자아가 약한 존재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 사회의 정치적 주도권을 쥐는 관건은 정치 리더십이나 정치세력이 먼저 정치적 정상 심리를 회복하는 것이 아닐까? 무엇 무엇을 반대하고 단절하는 방어적 행위를 통해서 정치적,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려는 것이 아니라, 국가경영 실력(컨텐츠, 선수층, 조직문화, 물질적 문화적 생산력을 체현, 선도하는 계층 기반 등)과 긴 호흡과 포용적 리더십을 기반으로, 연합 정치와 통합 정치를 통해서 결국에는 내가 먹는다는 확신을 가지는 것이 관건이라는 말이다. 진보도 보수도 약한 정치적 자아가 문제라는 것이다.아니 그것을 강하게 만드는 정치.조직 노선 혁신을 하지 않아서 문제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