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한미FTA의 대안


 쓰는 저도 지겨웠던[...] '한미FTA를 바라보는 눈'의 마지막편입니다. '대안 없는 비판'으로 끝내고 싶지 않아서, 나름대로의 대안을 모색하면서 글을 끝맺으려 합니다. 한미FTA가 '장기적으로 한국 사회가 어떤 사회로 나아갈 것이냐'하는 것과도 깊은 관련이 있는 문제이며, 미국식 사회로 가자는 기획이 아닌가…이까지는 부족한대로 이야기가 된 것 같습니다.

 처음에 이 글을 시작하며 이야기했던 개방의 문제로 다시 돌아가면, 저는 개방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개방이냐'는 중요한 문제이며,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맞는 형태의 개방을 모색해야 한다고 봅니다. 장기적으로 어떤 모델을 추구해야 되느냐 하는 문제는 쉽게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신정완 교수의 이 말은 경청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전략)…이에 북유럽모델을 좋아하지 않는 학자나 언론 등은 북유럽모델은 인구규모가 1,000만도 안 되는 작은 사회들에서 발전한 모델이라는 점에서 원천적으로 다른 환경에서 발전한 것이기 때문에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곤 한다. 그렇다면 인구규모가 3억 정도이고 세계 유일 패권국인데다 수많은 인종으로 구성된 이민국가인 미국에서 발전한 미국식 모델은 한국과는 더욱 차이가 큰 조건에서 발전한 경제발전모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높고 사회구성원의 인종적‧문화적 동질성이 강하며 산업화를 비교적 늦게 경험한 북유럽 국가들이 적어도 미국보다는 한국과 기초여건이 유사한 나라들이라 볼 수도 있다.

                                                                                                                                   -<한국형 개방전략> 412p 중에서


 일단 미국이 선진국인 것은 사실이지만, 촘스키가 '내부의 3세계화'라 말했던 부분, 즉 빈부격차나 의료복지의 문제 같은 것들을 볼 때 미국이 이상적인 모델인지도 의심스럽고, 설령 그렇다고 해도 미국식 모델을 그대로 이식한다고 미국과 같이 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습니다. 

 그래서 한국 사회가 앞으로 어떤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냐에 대한 구체적인 모델을 세우고, 그에 맞는 개방 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 봅니다. 미국식에서도 좋은 점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무조건 미국식으로 가야 한다는 식으로 반대편의 목소리를 무시하면서 추진한다면 그건 이데올로기에 불과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생각하는 대안 가운데 하나는 동아시아 경제통합입니다. 물론 경제통합이 꼭 FTA의 형태를 띨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구체적인 내용이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죠. 추진 대상만 놓고 보면 동아시아 국가들, 예를 들어 일본이나 중국과 경제통합을 추진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동아시아 금융 허브니 하는 구상은 노무현 정부도 가지고 있던 생각이고, 미국과의 협정보다는 동아시아 경제통합이 더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라고 봅니다. 경제적 효과도 이쪽이 더 클 수 있고요.
 

그렇다면 지역무역협정은 과연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것인가? 이를 둘러싸고 학계는 아직도 해묵은 논란을 벌이고 있으나 명쾌한 결론은 내지 못한 상태다. 시프와 윈터스는 전세계의 지역무역협정을 실증적으로 분석한 결과 지역무역협정이 투자(특히 외국인투자)를 유치하고 경제성장을 촉진한다는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Schiff and Winters, 2003) 다만 개발도상국이 인접한 거대선진국과 지역무역협정을 체결하고 이와 병행해 국내 거시경제 및 환율정책을 건실하게 운용하며 투명하고 지속적인 구조개혁을 추진할 경우에, 지역무역협정이 "다소나마"(mildly)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결론 내리고 있다. 지역무역협정의 체결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기 위해 주요 지역무역협정의 1인당 국내총생산 성장률을 비교해본 국내의 연구는, 지역무역협정 체결이 1인당 국내총생산의 증가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신관호 외 2003) 지역무역협정 중 협정 체결 후 1인당 국내총생산 성장률이 높아진 경우는 아세안자유무역협정(AFTA)과 유럽연합으로, 북미자유무역협정과 메르코수르는 오히려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                                                                                                                                     -<한국형 개방전략> 27p 중에서


 사실 이런 부분을 봐도 ‘한미FTA를 통해 장밋빛 미래가 열린다’는 식의 주장은 프로파간다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은 협정의 내용을 따져봐야 경제성장에 도움이 될지 안 될지를 알 수 있으며, 설령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도 정부에서 홍보했던 대로 GDP가 6%씩 증가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 식이라면 한미FTA하고 나서 EU, 중국, 일본이랑 다 FTA를 맺으면 한 20% 성장할 겁니다. 다른 거 안 하고 FTA만 맺어도 한국 경제 걱정 없겠네요. 정말 필요한 것은 과장된 낙관이나 우려가 아니라 한미FTA가 우리에게 미칠 영향에 대한 정확하고 객관적인 분석이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하튼 ‘인접한 거대선진국’과의 지역무역협정이 그나마 도움이 된다면, 인접한 경제권인 일본이나 중국과의 경제통합이 미국과의 FTA보다는 경제적 효과가 클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일본과 중국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자면, 일본과 FTA를 추진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일본과의 FTA에 대해서는 연구가 많이 됐고, 국민감정 때문에라도 일방적으로 불리한 협상은 안 할 거라고 봅니다.
 

일본과의 경우에는 협상 개시 전 민간공동연구, 한‧일비즈니스포럼, 산‧관‧학 공동연구 등을 거쳐 총 5년여의 공동연구가 진행되었는데, 미국과의 FTA에 대해서는 공동연구는 물론 전문가들에 의한 독자연구도 거의 진행되지 않은 채 협상 개시가 선언되었다. 게다가 상대는 세계 최강의 교섭렵을 가진 미국이기에 협상에서 얼마나 국익을 관철할 수 있을지가 우려의 대상이 되었다. 

                                                                                                                                   -<한국형 개방전략> 327p 중에서



정태인 씨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시는군요.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060328150149&section=02
(이 기사를 가르쳐주신 흐르는 강물 님께 감사드립니다. 좀 길지만 읽어볼만한 내용이니 일독을 권합니다.)

정 : 이 부분이 제가 제일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에요. 제가 행담도 사건 때까지, FTA를 담당하고 있을 때까지, 그러니까 작년 5월까지만 해도 문제는 한일 FTA였거든요. 또 제가 그만 둔 후에도 9월까지도 한미 FTA 얘기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준비가 돼 있지 않습니다. 정부에서는 오랫동안 연구했다고 하지만, 그러면서 제시한 게 한미 FTA에 관한 연구보고서 3권입니다. 물론 다른 연구까지 치면 10여 권 되지만요.
그런데 일본의 경우 쓸 만한 것만 추려도 25권이 있어요.
제가 대통령의 지시로 우리 산업구조의 발전방향을 먼저 정의하고 한일 FTA가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고, 그리고 전략을 짠 것까지, 그 최종판은 아직 대통령께 보고도 안 됐다고 듣고 있는데 그것까지 합하면 26권인 셈이죠. 일반 보고서까지 합치면 한일 FTA는 100권이 넘습니다.
그래도 준비가 많이 되고 한일 간의 역사문제도 있어서 우리와 상당히 대등하게 얘기할 수 있는 일본, 더구나 우리와 산업구조가 비슷해서 농업 쪽에서는 오히려 우리가 유리한 일본과의 FTA는 중단하고, 준비도 안 된 미국하고 갑자기 한다는 건 쇼크요법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과의 FTA, (혹은 꼭 FTA가 아니더라도) 경제 통합에 대한 연구도 동시에 병행해야 된다고 봅니다. 개방의 수준은 낮은 수준, 혹은 중간 수준에서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볼 때, 처음에 높은 수준으로 개방을 하면 나중에 하는 국가들도 높은 수준의 개방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한미FTA가 그런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의 협상을 생각한다면, 낮은 수준의 개방에서 높은 수준의 개방으로 차츰 옮겨가는 것이 좋은 방법일 거라 생각합니다.

 미국과의 FTA가 정말 대세라 꼭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이런 과정을 통해 장기적으로 동아시아 경제권 vs 미국과 같은 구도를 만들어서 FTA에 나서는 것이 협상력을 높여서 더 많은 것을 미국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정 불리하거나 민감하다 싶은 의제들은 FTA에서 협상하지 말고 WTO에서 협상해서, 더 많은 개발도상국들과 힘을 합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약자들의 연대’라고나 할까요. 

 마지막으로 두 가지를 제안합니다. 첫째는 한미FTA 반대측에서 이야기하고, 민주노동당이 발의했지만 흐지부지된 ‘통상절차법’입니다. 둘째는 ‘정책평가제’입니다. 둘 다 제가 독창적으로 생각한 건 아니고요.[...]

 ‘통상절차법’은 헌법에 조약의 체결‧비준에 관한 국회동의권이 명시되어 있지만 그에 관한 하위법률이 없어서 실제로는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조약을 추진하는 모습을 보여 왔는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 국회가 행정부를 견제하면서 절차의 투명성을 담보할 수 있게 법률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옆동네의 천이 님이 쓰신 글이 읽어볼만합니다.

프레시안 보도: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60815091747&section=01
천이님 포스팅:http://www.skepticalleft.com/bbs/board.php?bo_table=sympo_2&wr_id=7

 국회가 어느 정도의 권한을 가져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을 수 있지만, ‘통상절차법’ 자체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한미FTA가 그렇듯 통상조약이 국가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책이라면, 그리고 앞으로 수많은 조약을 체결해야 한다면, 헌법에 보장된 국회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갈수록 ‘통상절차법’의 필요성이 커질 거라 봅니다. 정말 개방이 무조건적인 대세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데 더 신경을 써야 할 겁니다.

 ‘정책평가제’는 박상표 씨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 본 건데요. 
 

영국 정부는 광우병 사태에 직면하여 <광우병 백서>를 발간함으로써 정부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에 대해서 낱낱이 다 기록했거든요. 우리는 사실 과거 청산을 제대로 한 적이 한 번도 없지 않습니까? 광주학살로 집권한 사람이 여전히 전직 대통령이랍시고 버젓이 행세하고 있잖아요. IMF를 초래한 사람들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았고요.
 
모든 게 책임을 지지 않는 방식으로 가다 보니까, 그래서 나온 것이 정책실명제 같은 건데 유명무실해지고 있어요. 정부의 잘못에 대해서 특히 공권력의 잘못에 대해서 사법적으로 명확하게 처리하는 전범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프랑스는 나치에 협력한 사람들을 끝까지 추적하여 처벌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최근에 광우병과 관련해서는 1980년대에 사람의 시체에서 추출한 성장 호르몬 주사를 맞고 iCJD(의인성 CJD)에 감염되어서 죽은 프랑스 어린이들이 1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 그런 위험을 알고도 그 정책을 집행했던 프랑스 보건복지부의 고위 공무원들, 과학자들이 간접 살인 협의로 기소되어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사례들처럼 지금 광우병과 관련해서도 이런 잘못된 협상을 하고, 잘못된 정책을 결정한 사람들에 대해서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에 법정에서 간접살인죄를 물을 수 있는 사법적 정의가 살아남아 있어야 하는데요.

                                                                                                                    -<아! 대한민국, 저들의 공화국> 98p 중에서


 잘못된 정책들에 대해 사법적 책임까지 물을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지만, 그게 지금 당장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고 장기적으로 추구해야 할 모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먼저 시행되어야 할 것이 ‘정책평가제’라고 생각합니다. 말 그대로 이제까지의 정책을 평가해서 좋은 정책은 계승‧발전하고, 나쁜 정책은 문제점을 개선함으로써 더 좋은 정책들을 만들어낼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을 확립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정책에 대한 기록들부터 제대로 이뤄져야 하겠죠. 박상표 씨가 위의 이야기를 하면서 회의에서 누가 어떤 발언을 했는지도 제대로 기록이 안 돼 있다고 하던데, 일단은 그런 기록들이 제대로 남아있고 그에 바탕한 냉정한 평가가 이뤄진다면 ‘정책평가제’도 하나의 시스템으로 구축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해봅니다.

 이로써 쓸데없이[...] 길었던 '한미FTA를 바라보는 눈'의 끝을 맺습니다. 어차피 경제학에 대해 그다지 아는 것도 없고, 쓰고 보니까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이 새삼 느껴지지만 일단은 끝입니다. 나중에 '투자자-국가 제소제'에 대해서 글을 쓰면(그러기 위해서는 투자 분야 전반을 살펴봐야겠지만), 제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그럭저럭 다 한 것 같습니다. 아쉬움도 조금 남지만요. 마지막으로 이데올로기나 프로파간다를 넘어서 진정으로 '국익'에 도움이 되는, 그것이 단순히 국가 지배계급의 이익에 그치지 않는 협정이 이뤄지길 기대해 봅니다.

<<  지금까지의 연재글

>> 한미 FTA를 바라보는 눈(1) : 개방 안하면 뒤쳐진다? / 절차가 민주적이었는가?
>> 한미 FTA를 바라보는 눈(2) :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은 역사의 사실을 무시하는 사람들?
>> 한미 FTA를 바라보는 눈(3) :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 '국익'에 도움이 되는가?
>> 한미 FTA를 바라보는 눈(4) :
한미 FTA는 한국 경제의 체질을 바꿀 것인가?-한미FTA의 특수성
>> 한미 FTA를 바라보는 눈(5) : 한미 FTA는 잘한 협상인가

[참고] 노무현 정부와 한미FTA(스프링노트)

나는 역사에 밀착해서 살아왔다. 역사는 목동의 피리소리에 맞추서 춤추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부상자의 신음소리와 싸움하는 소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