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자팀에 의해 메인게시판으로 이동되었습니다. 본글의 문제제기를 받아 수준급의 댓글과 자료가 달렸습니다.


 서울 양천구의 목동이라는 지명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대부분 살기좋고 쾌적한 아파트촌, 강남과 함께 불패의 아파트 신화를 자랑하는 곳, 서울의 성공한 중산층들이 집단으로 모여 사는 곳, 한나라당이 점령한 난공불락의 아성 등등을 생각하실테고, 저는 과거의 극좌파답게 지난 80년대 전두환정권 당시 무허가 빈민촌 철거민 투쟁의 성지를 떠올리지요.

 지난 주 업무때문에 그 목동 거리를 걷게 되었습니다. 한채에 10억원이 넘는다는 아파트들이 숲을 이룬 주택가와 잘 정리된 도로와 조용한 공원들이 어우러져 한눈에도 주거환경이 우월해 보였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목동은, 더 이상 거친 투쟁구호들이 난무하던 소시적 유인물속의 그 목동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서울은 아름답도다는 탄성이 절로 나오는 그런 동네였지요. 

산뜻한 블록으로 덮힌 인도를 걸으면서 저는 뜬금없이 '진보란 무엇인가'라는 고민에 빠져 사색하는 개똥철학자가 되었습니다. 80년대 당시에 스스로 진보주의자임을 자부했던 나는, 당연히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이 치열했던 목동의 철거민 투쟁을 멀리서나마 응원하면서, 우리사회의 기득권 보수들을 향해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민중생존권 쟁취'라는 구호 아래 당대의 내로라하는 진보인사들과 단체들이 집결했고, 정부 역시 판자촌 철거 작업에 사활을 건게 아닌가 할 정도로 집요했습니다. 결국 목동의 판자촌은 말끔하게 정리되고, 그 자리에 아파트들이 하나 둘 지어졌지요.

그런데 제 의문은 이런 것입니다.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무지막지한 철거작업에 어린아이가 담벼락에 깔려 숨지는 천인공노할 일이 벌어졌어도, 집을 잃은 철거민들이 갈 곳 없는 떠돌이 신세가 되었어도, 그래도 목동 그 자체로는 진보를 한게 아닌가? 하는 것이지요. 과거의 목동과 현재의 목동을 단순 비교해봐도, 답은 뻔한 것이죠. 더러운 비닐 지붕아래 헐벗은 아이들이 진흙탕길에서 뛰어놀던 빈민촌에서 현재의 1급 주거지역으로 탈바꿈한 것은 누가 뭐라해도 진보한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러면, 죽기를 각오하고 철거 반대 투쟁에 나섰던 당시의 진보주의자들은 무엇이고, 기득권 수호의 화신 같았던 경찰과 공무원과 폭력배들은 무엇이었을까요? 과연 진보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저는 아직 좌파의 감성을 갖고 사는 진보주의자이므로, 당연히 인간 사회는 어떤 방향성을 향해 끊임없이 진화하는 존재임을 믿습니다. 그 방향성이란 보다 자유로운, 보다 평등한, 보다 풍요로운, 보다 인간의 존엄성이 높아지는 그런 것이라고 믿습니다. 조선시대와 현대를 비교해도, 현대 사회는 당시보다 훨씬 더 자유로워졌고, 훨씬 더 평등해졌으며, 훨씬 더 풍요가 넘치고, 훨씬 인간의 존엄성이 높은 사회입니다.  때문에 저는 진보의 이미지를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축으로, 자유와 평등과 풍요 3가지가 DNA의 이중나선과 같이, 삼중나선처럼 꼬여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맺으면서 발전해가는 어떤 모습입니다.

 때문에, 자유 평등 풍요 인권이라는 각각의 진보적 요소에 어떤 절대적인 점수를 매길 수가 있다면, 저는 어떤 정책이나 현상이 진보적이냐 아니면 반동적이냐라는 구분이 가능하리라고 믿습니다. 마치 김연아선수의 피겨스케이팅처럼, 예술 기술 표현등의 각 요소별 점수를 합산하여 전체 점수를 매기는 것처럼 말이지요. 가령 어떤 정책이 평등 요소의 점수가 +10점이라 하더라도, 자유 요소 -10점,  풍요 요소 -5점, 인권 요소 0점이라면 전체 점수는 -5점으로써 결국 그 정책은 반동적인 것이 된다라는 식입니다.

다시 목동으로 돌아와서, 저는 목동의 아파트 재개발 정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점수를 매겼습니다. 자유 +10점, 평등 -15점, 풍요 +30점, 인권 -10점. 합계 +15점. 그러므로 진보. 물론 이것은 꼴리는대로, 내맘대로 점수이므로 심판 마음입니다. 자유와 풍요보다는 평등과 인권에 더 큰 가중치를 주시는 분들도 있겠고, 그 반대도 있겠지요.

그래도 어쨌든, 목동의 아파트촌을 둘러보면서, 왠지 당시의 진보주의자들이 패배한 것 같아서 기분이 씁쓸하기는 했습니다. 아무래도 저 역시 당파성을 어찌하지 못하는 평범한 필부 맞습니다. 

그리고 내친 김에 재미삼아 최근 몇년간 이슈가 되었던 정책, 혹은 몇가지 관심사들에 대해 점수를 매겨보았습니다.

1.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 개발
자유 0점, 평등 0점, 풍요 +15점, 인권 -5점. 합계 +10점. 어쨌든 안하는것 보다는 훨씬 나으니 진보가 맞음. 저는 2002년 서울시장 선거때, 김민석 후보는 이명박후보의 청계천 개발 공약에 '무조건 반대'의 구태의연한 토론을 하기보다, 비록 선점을 당했지만 이명박 안보다 더 발전된 공약으로 붙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아직도 큽니다.

2. 박정희
자유 -20점, 평등 +5점, 풍요 +40점, 인권 -10점.  합계 +15점.  결과적으로 진보.

3. 북한
자유 -30점, 평등 +20점, 풍요 -30점, 인권 -30점. 합계 -70점. 최악.

4. 스탈린 시대
자유 -30점, 평등 +20점. 풍요 +20점. 인권 -30점. 합계 -20점. 결과적으로 반동.

5. 노무현 대통령의 수도 이전 혹은 세종시 공약
자유 -10점, 평등 +20점, 풍요 +10점, 인권 0점. 합계 +20점. 결과적으로 진보가 될 가능성 높음.

업무를 마치고 목동을 떠나면서, 지금쯤 30대 후반이 되어 있을 당시의 그 판자촌 꼬마들은 어디서 뭐하고 살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어디선가 근사한 아파트 장만를 꿈꾸면서 열심히 생활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대를 이은 도시빈민의 굴레를 벗지못하고 힘겹게 살고 있을까요? 어쨌든, 84년 목동의 철거민 투쟁은 이후 87년 6월에 폭발하는 에너지의 일부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입주권 혹은 딱지라는 아이디어를 만드는 계기가 되어 오늘날 뉴타운 열풍의 씨앗이 되기도 하고, 그 덕에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에 일조를 하기도 하였으니, 이래 저래 오늘의 역사에 미친 그 흔적이 작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84년 목동의 철거민 투쟁이 뭔가 궁금하신 분은 이리로
http://blog.daum.net/kdemo0610/12?srchid=BR1http%3A%2F%2Fblog.daum.net%2Fkdemo0610%2F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