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스켑렙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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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아이덴티티라는 게 속인성과 속지성 두가지를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특정인을 말할 때 이렇게 말했다죠. '누구의 아들이냐' '어디 사람이냐' 이 말이야말로 속인성과 속지성을 상징합니다. 전자는 속인성, 후자는 속지성 이렇게요.
 
그럼 호남향우회는 속인성일까요? 속지성일까요?
 
솔직히 제주도(그것도 읍면단위)나 충청도 조치원이나 강원도 지역까지 향우회가 있는 것 보고 놀랐습니다. 물론 외국에도 있고요. 수도권이나 영남 공업도시야 그렇다 치더라도 그만큼 호남인들이 역대 영남정권에서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여러 면에서 차별을 받아왔고, 먹고 살기 위해서 이주해서도 그만큼 원주민들의 눈치를 많이 봐야 했기에 그만큼 많이 뭉치지 않았을까.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영남은 물론 충청이나 강원 등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그렇게 향우회에 관심 있는 사람은 관심 갖겠지만 그렇게 심할 정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호남인들은 향우회가 삶의 일부이죠.
 
그만큼 차별을 받고 사니까 믿을 사람은 우리 고향출신이다 그런 모습에서 동네마다 풀뿌리 향우회가 생겨났습니다. 동네마다 호남향우회가 생겼다는것은 그만큼 아주 많은 이들이 고향을 떠났다는 것이고 지독한 차별을 또한 받았다는 겁니다.
 
마치 유대인들이 고향을 떠나 뿔뿔이 흩어지면서 여러 타국에 살면서 그쪽 국민들에게 차별받으면서 게토에 모여 살아서 유대인 교회를 세우면서 자기네들만의 아이덴티티를 지켜나간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호남향우회가 풀뿌리 조직으로써 회사원 등은 별로 없고 세탁소 주인 같은 소규모 자영업자나 공장노동자나 막노동이나 윤락녀 같은 소위 3D업종의 인물들이 주를 이룬다는 거죠. 관료들 등이 주를 이룬 향우회가 따로 있긴 하지만 이들 향우회하고든 좀 다르죠.
 
호남향우회는 전남,전북 따지지 않고 호남인이면 형님 아우 그런 식으로 대하죠. 그 밖에 목포향우회,순천향우회,재인천광주일고동창회,강진동창회,벌교읍동창회 이런 식으로 밑으로 나가기도 하고.
 
물론 이들이 정치적 욕구가 강한 건 사실이었습니다. 워낙 당하고 살았고 자기 고향 사람들이 영남 정권 군바리들한테 무지막지하게 학살된 것을 알면서 '이렇게 당하지 않으려면 우리가 정권을 잡아야겠다'라는 욕망이 있었죠.  이들이 김대중과 민주당에 전폭적인 지지를 했죠. 죽어도 투표는 했으니까. 이건 생존권 욕구이지 정권 권력 욕구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정권교체 이후 간부들 중에 권력 맛을 보니까 권력에 취한 이들도 있긴 했지만.
 
하지만 앞으로 50년 후의 호남향우회는 지금 규모의 10분의 1로 줄겁니다. 아니, 어쩌면 20분의 1로 줄려나.
 
우선 호남에서 올라올 사람이 줄었습니다.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다 올라왔고 나머지는 죽을 날이 얼마 안남은 노인네들. 그분들마저 가시면 텅텅 비는거죠. 어차피 농업 시스템 자체가 변하겠지만.
 
물론 광주나 전주에서 취업 안된다고 상경하는 애들도 있지만 그건 요새 다른 지역도 별 차이 없죠. 예전과는 좀 다른 양상이라고 보면 됩니다. 영남마저도 수도권을 바라보고 있는 판국에.
 
그렇다면 수도권의 많고 많은 호남인들은?
 
여기서 다시 속인성과 속지성 이야기를 끄집어내렵니다.
 
상경 1세대 당사자들은 호남에 대한 속인성,속지성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더구나 차별까지 받으니 그 성향은 더 강해질것이고 하지만 2세부터는 달라집니다. 워낙 차별을 받고 살다 보니 1세대는 자신들이나 자녀들에게 호남색을 가급적 덜 내보내려 하고 현재 사는 곳이 수도권이다 보니까 호남 아이덴티티가 점점 사라지고 수도권 아이덴티티로 대체됩니다. 1.5세대나 2세대는 속인성으로는 호남 속인성이 조금은 있습니다. 하지만 속지성은 (1.5세대와 2세대가 여기서 차이가 있긴 하지만) 완전히 수도권이므로 수도권화되고 호남 사투리를 안 쓰게 됩니다. 3세대부터는 완전히 수도권 사람입니다. 이제 호남과는 관계가 사실상 끊어집니다. 어쩌다 제사를 지내러 내려갈 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요새는 선산도 납골당으로 모신다 하고 심지어는 수도권이나 충청도로 이장한다고 하고(DJ가 그랬음) 심지어는 제사고 나발이고 필요없다고 하니까 결국은 호남하고의 연은 완전히 끊어지는 거죠. 쉽게 말해서 고조할아버지는 완전한 호남인이었지만 할아버지는 호남에서 서울로 이주하여 현손은 완전한 서울사람이 된 거죠.
 
광수생각의 만화가 박광수의 할아버지는 전남 순천 사람으로 지금도 묘가 거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박광수는 자기 할아버지 묘도 안갔다고 하네요. 호남인 2~3세로써 완전한 서울 사람이 되었고 성향도 민주당 지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은근히 보수성을 지니고 있으니까. 속지성은 완전한 수도권이죠.
 
그럼 속인성은? 유대인들(혹은 집시 등도)이 타국에서 차별받으면서 살면서도 자신들만의 아이덴티티를 수백년 수천년까지 이어오는 것은 유대교 신앙이나 게토로 상징되는 속인주의 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건 인종문제에서는 확실히 드러납니다. 적어도 피부색 같은 경우는 확실히 드러나기 때문에 흑인들은 몇 대를 이어와도 흑인 속인성을 드러낼수밖에 없습니다. 킹 목사의 조상은 몇대에 아프리카에서 왔을까요? 피부색이 아니여도 비교적 민족적 속인성이 강하면 충분히 민족적 속인성을 지킬수 있을 겁니다. 물론 혼혈도 있으니까 그런 면에선 속인성이 약화될수는 있죠. 근데 체로키 핏줄이라고 자랑하는 걸 보면 어느 정도 속인성이 남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미 1300년 동안 한반도가 단일한 국가(고려 중기까지는 백제 부흥 운동이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굳어졌죠)로 완전히 굳어져 버린 상황이므로 지역성 속인성을 2~3대까지는 기대하기는 무리입니다. 이미 1세대나 2~3세대든 한국인 전체적으로(영남이든 호남이든) 한국인 아이덴티티가 기본으로 (도킨스의 입장이라면 밈이) 장착되어 있지 호남인 아이덴티티가 장착되어 있는게 아닙니다. 더구나 호남이 못사는 지역이기도 하고. 뭐...영남이라고 해서 속인성이 2~3대까지 계속 지속되지는 않지만요. 그냥 할아버지 고향에 땅 보러 가면 모를까.
 
사실 맨몽으로 올라온 분들이 고향에 땅이 얼마나 있을 것이며 그나마 호남에 있는 농민들도 다른 지역보다 농업현실이 워낙 열악해서 빚만 지고 있는 실정이라(호남지역 농업소득 최하, 농가부채는 최상) 수도권이나 광주,전주 등의 도시인들한테 팔리거나 농지은행에 맞기는 실정인데.
 
어차피 농업 시스템이 FTA나 DDA를 겪으면서 기존의 중소농 시스템에서 대농장 시스템으로 바뀌기 때문에 기존의 농민들은 부유하거나 특성화된 극소수를 제외하곤 도시로 흘러가겠죠. 어쩌면 그렇게 되면 호남의 인구는 바뀔 겁니다.
 
소수의 농업관리인들이 자동차로 출근하고 기존의 마을은 물론 면단위 조직도 거의 사라지고 군 단위의 읍 중심으로 기계화,자동화된 대농장 시스템으로 가겠죠.
 
아마 새로운 호남개발정책이 나올 것이고 중국(왜 중국은 서울,부산에 이어 하필이면 광주에 영사사무소를 세웠을까?) 화교들의 투자가 있어서 외국인들의 유입이나 타지인들의 유입하겠죠. 어쩌면 그들이 새로운 호남인이 될것이고 그들이 정착하면 그들에게 호남인 아이덴티티가 주입되겠죠. 제가 보기엔 결혼이주자들이나 2세들은 그들의 소득.생활상 계속 농촌에 남아 있지 못하고 그들 역시 광주나 수도권, 혹은 이주자들의 고국으로 갈 가능성이 높네요.
 
어차피 그때가 되면 이미 고향의 개념이라던가 지역주의의 개념은 지금과 달라질 겁니다. 수도권과 일부 대도시만 남을 것이고 중소도시나 군소재지에 약간의 상주인구는 있을겁니다. 그리고 인구 이동은 대이농이 아닌 도시간 헤게모니 싸움이 될겁니다.
 
그때가 되면 조갑제 같은 꼴통은 거의 사라지겠죠. 남긴 하겠지만 별로 큰 영향력은 없을 겁니다. 한때는 대한민국 그 자체였던 반공이데올로기는 미친 노인네의 황당한 소리로 들릴 겁니다. 전라도 저주하는 또라이들도 그때쯤엔 사라질 겁니다. 이제 수도권패권 빼고는 지역성이라곤 없기 때문에 특별히 호남을 대놓고 욕할 이유가 없을 것 같음. 무너지고 있는 영남의 발악이라면 모를까.
 
2060년경의 호남향우회는 예전과 같은 호남향우회가 아닐겁니다. 못살고 차별받은 사람들이 뭉치기 위해 모인 곳이 아닌 그저 어렸을 때 호남에서 학교 다니다가 직장이 서울이라 올라왔는데 호남에서 학교다닌 사람들끼리 그냥 사교로 모이는 모임이 되겠죠. 그대신 규모는 엄청나게 적어지겠고. 지금의 호남향우회 멤버들은 모두 죽고 그 자녀들은 모두 수도권사람들로 살고 있고.
 
그때쯤이면 저도 할아버지가 되었겠죠. 제 손주들은 광주에 살던 서울에 살던 부산에 살던 그렇게 지역주의 때문에 피해를 볼 일이 없을 겁니다. 광주에 살면 광주사람 되고 서울에 살면 서울사람 되고 부산에 살면 부산사람 되는 그런 식으로 가겠죠. 그때쯤이면 현대 호남인들이 당했던 박해와 해소를 담은 책을 한번 쓸랍니다. 역사는 남겨 놓아야죠. 어쩌면 그것은 고향이나 지방이 사라지고(워낙 대한민국이 좁기도 하거니와) 노마드와 글로벌(혼혈인의 활약)의 세상일겁니다.

(2008년 10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