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을 모두 읽진 못하고 드문드문 읽었던 편이라, 그마저도 다 읽지 못하고 제목만 중심으로 읽었던 편이라, 논점 이탈될 수도 있는 글입니다. 감안하고 봐 주시길...

우선 이상한 아저씨들이 너무 많은 동네라는 느낌입니다. 이 아크로라는데가. 간단한 문제인데 뭔 전쟁을 이렇게 요상하게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논쟁의 초점은 운지라는 단어가 일부 사람들에게 불편하다는 것이죠.

왜 불편한지 물을 때, 그 이유를 대서 타당하면 수긍하고, 타당하지 않으면 수긍하지 않으면 되고, 타당성의 여부자체도 잘 판가름이 나지 않으면, 운지를 계속 쓰든지 말든지, 쓰면 쓰는대로 안 쓰면 안 쓰는대로 그러려니 하고 서로 혐오를 하든지 존중을 하든지 그렇게 끝날 문제 아닌가요?

그런데 여기에 도덕적 정당성이니, 합법성이니 뭐니 하는 것까지 따라붙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아마 논쟁참여자분들 자신의 신념에 대한 스스로의 불신임이든지, 아니면 상대논리를 결정적으로 논파할 능력의 부족이든지 여튼 그렇게 보입니다.


불편한 이유에 대한 제 분석은 대충 이렇습니다.

단어가 주는 의미와 상관없이 이 단어의 주 유통지가 일베라는 이유일 수도 있고, 투신자살을 뜻하는 여러 표현중에 왜 하필 운지라는 단어가 생명력을 얻을 수 있었는가 하는 문제로 들어가 볼 수도 있고, 이도저도 아니면 타인의 죽음을 잘 거론하지 않는 문화, 특히 공인의 죽음에 대한 표현이 자살, 타살, 의문사, 서거, 운명 등등의 직접 죽음을 뜻하는 단어 외에 쓰인 적이 없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기인한 낯선 불편함 일수도 있습니다.

위 세 가지 요인 중에 하나일수도, 복합돼 있을 수도, 아니면 다른 요인이 있을수도 있지만, 논의를 단순화하기 위해 위 세 가지로 좁혀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보다 먼저 주체가 되는 노무현대통령과 그 팬덤(이라고 하겠습니다)과의 관계를 먼저 살피지 않으면 앙코없는 찐빵 될 가능성이 있어 간단하게 짚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부산재야시절이 있었죠. 그리고 민주당에서 꼬마민주당에서 또 새정치국민회의시절인가요 뭐 여튼 그런 야당시절, 그리고 전두환 청문회가 그 중간 어디쯤에 있을것이고, 다음은 민주당 대통령후보 노사모, 대통령 되고 탄핵전과 후, 그리고 퇴임후 봉하마을, 그리고 서거...

대충 생각나는데로 써봤는데, 틀리면 바로 잡아주시고 여튼 이런 행적을 옮겨온 이유는 각 시기마다 팬덤들의 성격이 약간씩 다르다는 말씀과 그리고 현재 노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분들은 봉하마을시절이나 서거후에 생성됐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죠. 제 개인적인 경우를 말씀드린다면 대통령시절이 가장 의미깊은 때였다고 봅니다. 조선 오백년 성리학적인 권위주의를 청산하는 고고성을 울렸다 한마디로 그렇게 평가합니다. 이런 인터넷상을 막론한 대중민주주의의 첫발인 셈이죠. 많이 비판받는 정책적인 실패나 뭐 그런건 아예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같은 관료구조에서 진보성향의 어떤 대통령이든 한계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죠.
 

어쨌든 운지라는 단어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른바 저를 포함한 노빠의 입장에서 본다면 십자가위의 예수나 부엉이바위의 노무현이나 자신의 신념을 위해 죽음을 택했다는 면에서 다를게 없습니다. 누군가 어떻게 정치인을 종교지도자에 비교하냐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종교가 주는 사회적인 역할이라는 것에 비해 정치가 하는 사회적인 역할이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뭐 개인적인 영역으로 들어가면 종교가 한 개인의 존재전부를 규정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건 말 그대로 개인적인 문제입니다. 사생활은 사생활일뿐이죠.
  

이런 전제를 깔고 들어 갔을때, 운지라는 단어는 위 세 가지 모든 면에서 다 혐오스런 단업니다. 일베라는 사이트의 성격은 다 아실테니 넘어가고, 투신자살을 비유하는 단어는 예를 들어 번지점프나, 다이빙 등이 더 잘 어울리죠. 실제로 서거초기에 노번지라는 용어도 사용됐던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용어들을 물리치고 왜 운지가 채택됐느냐는 것이 관건인데요. 운지천광고는 아시겠지만 나는 자연인이다라고 외치면서 바위사이를 뛰어다니는 내용입니다. 광고만 봤을 때는 투신이라는 내용을 유추해내기가 쉽지 않은거죠. 그런데도 왜 여러 경합하는 용어들 중에 운지가 살아남았을까요. 어느 댓글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노대통령 유서에 삶도 죽음도 자연의 한 조각 이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두말 할 필요 없이 유서의 내용을 조롱한거죠. 부정할 분도 있을줄 압니다. 그러면 이렇게 반문해볼까요. 역대 투신한 누구에게 운지라는 단어를 붙였는지, 역사적 인물 중에 없다면 사회면 가십기사에 나온 일반인에게서도 그렇게 표현한 경우가 있었는지 물어봅니다. 그리고 유서정도 조롱한다고 뭐가 대수냐고 말씀하시는 분 있다면 다시 물어보죠. 공인의 유서를, 아니면 사인의 유서라도 그 내용을 조롱하는 것을 본적 있는가요.
   

마지막으로 우리 문화가 죽음에 대한 언급을 일종의 터부시하는 전통에 서 있다는 점인데요. 인정하신다면 그게 공인이 됐건 사인이 됐건 죽음을 조롱하는 것은 전통적인 가치면에서 위배된다고 할 수 있죠. 그렇지만 공인은 특히 일국의 대통령까지 지낸 공인중의 공인은 사인과 기준이 다르지 않느냐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인의 죽음에 대한 언급은 터부시되더라도, 공인, 특히 정치인에 대한 공격은 생사를 구별할 필요가 없다는 논지죠. 그런 분에게 한마디만 여쭐까요. 그렇게 공과 사가 분명한 우리사회에서 공적인 업무수행과 전혀 관계없는 결혼생활, 애정생활, 가족관계는 왜 그렇게 엄격할까요. 설마 공사구분의 기준이 그때마다 다른 것은 아닐테고.
  

아크로라는곳을 아주 가끔 들여다보다가, 최근에 집중적으로 댓글을 달게 됐군요.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운지라는 용어는 노무현대통령의 서거를 일종의 정치적 신념을 위한 희생으로 생각하시는 노빠들에게 감정적인 충격을 주고, 또 죽음과 그 유서에 대한 공격이라는 것으로 문화적인 충격까지 줬다고 할 수 있겠군요. 그래서 혐오스러운 겁니다. 이런 분석이 어느 정도의 객관성을 얻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분명한것은 전통 노빠임을 자처하는 저의 의식에 대한 확실한 분석인것은 틀림없습니다.
  

모두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이 내용에 수긍하시면 어 그렇네, 아니면 아니 택도 없네, 이도저도 아니면 쓸데없는 소리네, 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반론을 하거나 하지 말거나 그거 없이 계속 운지를 쓰든지, 안 쓰든지 하면 결론 날 이야깁니다. 운지를 써야되네 말아야되네 하는 논란은 제 입장에서는 택도 없는 소리고, 마찬가지로 운지를 쓰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해야 되네 말아야 되네, 그 사람을 어떻게 규정짓네 아니네 하는 것도 택도 없는 소립니다. 각자가 알아서 생각하고 표현하고 싶으면 느끼는 대로 표현하면 되는것이죠. 여기에 뭔 도덕성이, 합법성이 나옵니까. 그럴 여지가 전혀 없는 사안 아닙니까. 제가 잘못 알고 있는 지 모르지만 어쨌든 지금 상황은 굉장히 소모적으로 보이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