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만 하면 정치가 나아지나 ?

 글쓴이:훼드라
 출처:politizen.org 
 
지난 7월 17일 제헌절 김형오 국회의장은 경축사에서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특히 김의장은 지금의 시기가 아니면 그 이후 수년간은 시기상으로 봤을때 개헌을 공론화 하기가 힘들다며 내년 6월 이전까지 개헌작업을 마무리하자고, 구체적인 시기까지 못을 박기까지 했다. 허나 미디어법 관련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태라서 인지 정작 김의장의 제안에 대한 여야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그러나 개헌논의를 목적으로 지난해 국회내에서 발족된 ‘ 미래한국 헌법연구회 ’의 경우 어느덧 참여한 국회의원 수가 186명까지 늘어 이미 헌법개정을 위한 의결정족수에 다가가고 있고, 무엇보다 학계에선 5년단임제의 대통령 중심제하에서 역대 대통령이 모두 실패했던 점등을 들어 4년 중임제나 연임제 개헌이 바람직하다는 논의가 수년전부터 지속되어오고 있어 사실 개헌의 필요성과 그 공감대는 우리사회 지식인 계층에 어느정도 형성이 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지금 당장 개헌논의가 본격화되긴 어렵더라도 이에대한 논의가 공론화될 가능성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있다.


개헌을 주장하는 정치권이나 학계의 요지는 대략 이러하다. 5년 단임제하에서 역대 대통령의 말년이 모두 좋지 않았고, 특히 단임이란 점에서 재선에 도전할 필요가 없는 대통령의 독선적인 국정운영이 거듭되고, 그로인해 여야가 첨예하게 국회에서 대립 정치혼란이 거듭되어 왔다는 점 등이다. 특히 미국식 정치제도를 선호하는 학자들중 상당수는 4년 중임 혹은 연임제를 가장 바람직한 대안으로 내놓고 있고, 일부 보수적인 인사들중엔 내각제 개헌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어차피 개헌논의가 지금의 정치권이나 지식인 그룹의 분위기를 감안할 때 언제든지 다시 공론화 될 가능성이 있음을 감안한다면 아무래도 그전에 한번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과연 역대 대통령의 실패한 근본원인이 그리고 여야의 첨예한 대립과 정치혼란이 그 근본적인 문제가 모두 5년단임을 골자로 한 현행헌법 때문인가 ? 현 9차 개정 헌법은 1987년 여야합의로 만들어진 무엇보다도 민주화운동의 결실로 이루어진 값진 헌법이다. 그 이전까지의 개헌이 대개는 집권자의 정권연장이나 혹은 쿠데타로 집권한 세력이 그들만의 시대를 새로 열기위해 딘행한 개헌이었던 점과 비교하면 분명한 차이가 있다.


5년단임제의 문제점중 흔히 그리고 가장 많이 거론되는 문제가 국회의원 임기가 4년이라 대선과 총선이 겹치는 주기가 20년만에 한번씩 돌아오고, 따라서 그 외에는 대개 대통령 임기 중반에 총선이 치러지게 되어 만약 여소야대가 될 경우 국정을 효율적으로 운영할수 없다는 점을 든다.


그러나 1987년 이후 지난 20여년을 돌이켜보자. 과연 여소야대 때문에 정국혼란이 오고 여야가 첨예한 대립으로 치달았던가. 돌이켜보면 오히려 여소야대 정국때는 대개 쟁점법안들이 여야의 합의로 처리되었다. 4당체제였던 노태우 정권 후반기가 그랬고, DJ 시절에도 여소야대땐 여야합의가 불가피했다. 오히려 국민이 만들어준 여소야대 정국을 대통령이 임의적으로 바꾸려 했을때 혼란이 왔음을 알 수 있다.


노태우 정부는 3당합당으로 거대여당을 출범시켰지만, 이후 여당의 힘으로 인한 날치기 와 야당의 극렬저지가 거듭되었고, 김영삼 정부 역시 과반수에 조금 못미치는 의석을 획득한 15대 총선 당시의 여당이 무리하게 무소속과 야당의원을 끌어들이고, 그 의석으로 97년 노동법등을 날치기 했을때 정치혼란이 왔다. DJ 정권 초창기에도 한나라당 의원들을 국민회의와 자민련등으로 빼가려 하자 한나라당이 ‘ 야당파괴 결사저지 ’ 투쟁까지 벌이며 극렬저항했다. 노무현 정권당시 과반수의 열린우리당이 국가보안법이나 사학법 개정을 강행하려 했을때도 역시 야당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혔던 것이며 지금의 미디어법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문제의 핵심은 다수의 여당이 무조건 숫자로 밀어붙이려 하고, 야당은 그에 반발 결사저지하려 했을때 정치혼란이 온 것이지, 여소야대땐 오히려 여야가 대화와 타협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만 했기에 정치가 안정적이었다.


5년 단임제에선 대통령이 임기가 단 한번이기 때문에 재선을 염려할 필요가 없어 독선적인 국정운영이 계속되게 되고, 특히 그러한 가운데 대통령 한사람에게 권력이 모두 집중되기 때문에 그 결말이 좋지 않았다는 지적 역시 일리있는 주장이긴 하나 이 문제 역시 문제를 모두 5년 단임의 대통령 중심제 탓으로 돌릴일인지도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87년 개헌 이후 역대 대통령이 말년에 국정운영에 난맥상이 거듭되었던 것은 대개 자녀등 친인척이나 측근비리가 발생 대통령의 위상이 땅에 떨어졌던 것이 근본 원인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경우엔 임기중엔 3당합당으로 여당대표가 된 김영삼과의 갈등이 거듭되다 탈당을 한 것이지만, 임기후 대통령 비자금 문제와 5.18 특별법 등으로 인해 감옥에 갔다.


확실히 역대 대통령들이 모두 친인척이나 측근비리 등으로 비극적 결말을 맞은데는 그 원인이 대통령 한 사람에게 권한이 집중된 대통령 중심제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봉건영주제였던 유럽과는 달리 천년이상 절대왕정의 왕조국가가 이어져 내려왔던 민족이라서인지 대통령을 왕과 동일시하는 정서가 있다. 오죽하면 이웃집 누가 변을 당해도 대통령 탓을 한다는 우스개까지 있을까. 특히 대통령의 친인척이나 측근들에게 어떤 이권이나 청탁을 바라고 사람이 몰리는 것 역시 대통령을 그 옛날 왕처럼 전지전능한 존재쯤으로 생각하는 정서와 무관치 않다.


그렇다면 과연 4년 중임제나 의원내각제로 개헌을 한다고 이런 폐단들이 사라질까. 일단 4년 중임제는 대통령이 한번 더 재선에 도전할수 있다는 점에서 그 대통령의 치적을 선거로 평가할수 있다는 이점이 있기는 한다. 그러나 제도가 대통령 중심제인건 마찬가지다. 4년중임제라고 해서 5년단임제처럼 대통령 한 사람에게 쏠리는 권력이 분산된다는 보장은 없다.


4년 중임이나 연임이 될 경우, 일단 대선과 총선을 치르는 시기가 엇비슷해지고 지방선거의 경우 대통령,국회의원 임기의 중간지점인 2년차 정도에 시기가 정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일단 초반 2년정도 정치안정을 가져올수 있을거란 기대는 해볼수 있다. 그러나 만약 2년차 지방선거에서 결과가 좋지않아 재선 가능성이 적어진 현직 대통령의 경우 사실상 이때부터 차기대선을 위해 올인하지 않을거란 보장이 없다. 무엇보다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도전할 경우 그래도 어느정도는 잦아지는 분위기였던 관권선거 시비가 다시 부활하지 않을거란 보장이 있는가 ?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도전할때의 관권선거 시비는 심지어 미국에서조차 종종 발생한다. 그나마 우리의 경우 지난 20년 대선이 있는해엔 대개 자의였든 타의였든간에 대통령이 당적을 이탈 형식적으로나마 관권선거 시비를 줄이려는 노력이라도 해왔다. 허나 4년 중임이나 연임의 대통령이 되면 또다시 관권선거 시비가 생길 우려가 가장 크다.


흔히 우리나라 정치권의 문제점을 말할 때 이야기 되는것이 여야의 극한적인 대립, 보스중심의 패거리 정치, 지역할거정치등이다. 헌데 이런 문제들의 모든 근본적인 책임이 과연 5년 단임의 대통령 중심제에 있다고 단언할수 있는것들인가 ?


보스중심의 정치의 문제의 핵심은 사실 공천제도이다. 특히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국회의원의 공천권은 여당은 대통령에게 그리고 야당은 역시 강력한 카리스마를 쥐고있는 당 대표들에게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여야의 당 총재는 그야말로 국회의원으로부터 원외 지구당 위원장까지의 생사여탈권을 한손에 쥔 절대권력자가 된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공천제도의 폐단을 없애자는 취지에서 90년대부터 이야기 되어온것이 미국식 상향식 공천제다.


특히 노무현 정권하에선 그 지지세력을 중심으로 특히 방송매체들이 앞다투어 고비용 저효율 정치 타파와 그리고 상향식 공천제와 의회중심 정치제도를 골자로 한 정치개혁을 소리높여 외쳤다. 그러나 막상 도입된 상향식 공천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부작용이 나타났고 의회중심 정치는 실상 내막을 파헤쳐보면 기존의 당총재가 당대표로 원내총무는 원내대표로 명칭만 바뀐것 밖에 되지 않았다. 특히 18대 총선의 경우 각 당이 대선을 치르고 난뒤 얼마 지나지 않아 총선을 치러야 했기 때문에 상향식 공천을 할 시간이 없어 결국 하향식 공천이 부활한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사실 지금은 말많고 탈많은 그리고 실상 우리나라 후진(後進), 부패(腐敗) 정치의 핵심이 되어버린 공천제도이지만 의정 초창기인 1950년대엔 그 많던 군소정당,시민사회단체들을 정리하는 기능을 해주기도 했던게 공천제도다. 1954년 3대 총선때 자유당과 민주국민당이 처음 도입한 공천제도는 그러나 50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당 총재가 전권을 쥐고 공천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결국 보스중심의 패거리정치, 밀실공천과 야합, 공천헌금 과정에서의 말썽등 온갖 문제를 낳아 결국 ‘ 하향식 공천 ’ 이란 수식어까지 만들어내며 퇴출대상이 되고 말았다.


지역할거정치는 역시 각자의 지역에서 막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3김에게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고 봐야할것이나, 현재에는 3김이 모두 정계를 떠난뒤임에도 불구하고 주요정당이 3김이 남겨놓은 지역기반을 그대로 유산으로 물려받은 결과가 되었다.


개헌 이야기가 나온김에 1987년에 개정된 9차 헌법을 다시한번 쭉 살펴보았다. 헌데 막상 헌법을 읽어본 필자는 좀 뜻밖의 느낌을 받았다. ‘ 이런 좋은 헌법을 만들어 놓았는데, 대체 어쩌다 정치는 온통 이모양이 되었는가 ’ 하는. 우리가 흔히 지금의 헌법을 ‘ 제왕적 대통령제 ’란 비난을 하기도 하지만, 헌법상엔 3권이 명백히 분리되어 있다. 국회의원의 청렴의무(46조) 조항도 있다. 한마디로 지금까지 우리나라 정치가 후진적이고 부패가 만연하며 여야대립이 극심했던것은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 전반이 지난 20여년동안 헌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문제가 생긴것이지 헌법 그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게 아니다.


가령 사법부의 독립은 그동안 헌법에 명시된대로 제대로 지켜졌는지, 또는 국회는 지금까지 헌법을 비롯한 국회법등에 명시된 국회의 기능과 국회의원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했는지 여부만 따져보아도 결국 지금까지 우리나라 정치가 잘못되어오고 역대 대통령이 모두 실패한 대통령이 되었던것은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권과 사회각계가 헌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그런 문제들이 생겼던 것이지 헌법이 잘못되어 정치가 잘못된 것이 아님을 금방 알 수 있다.


특히 4년중임제로 개헌할 경우 생길수 있는 또다른 문제를 생각해본다면, 이럴 경우 대통령 선거와 총선을 동시에 치르거나 엇비슷한 시기에 치를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여대야소 정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방선거의 경우를 보면 4대선거를 동시에 치르니까 가령 광역단체장에 어느 당 소속 후보가 당선이 되면 기초단체,광역의회 심지어 기초의회까지 그 당 소속 후보들이 싹쓸이를 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대선과 총선도 동시에 치르거나 엇비슷한 시기에 치르면 비슷한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실제 5년 단임제 하에서 대선과 총선을 비슷한 시기에 치른 경우를 보면 13대 총선때야 3김의 정치적 영향력과 지방 장악력이 워낙 막강할때라 여소야대가 되긴 했지만 18대 총선의 경우 한나라당이 무난히 과반수를 뛰어넘었다. 더욱이 18대 총선의 경우 대선을 치르고 넉달만에 총선을 치르기 때문에 각 정당이 시일이 촉박해 그나마 17대때 자리잡았던 상향식 공천을 하지도 못했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우리나라 정치권의 극한 대립은 대개 여당의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기와 야당의 실력저지로인해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4년중임제가 5년단임제보다 정치혼란만 더 가중시키면 가중시켰지 정치안정을 가져올것이란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일부 보수성향의 인사들중엔 특히 서유럽 선진국중 상당수가 내각책임제를 하고 있음을 사례로 들며 내각제를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허나 그러잖아도 여야의 극심한 대립이 가장 큰 정치적 문제인 우리 현실에서 내각제가 될 경우 내각총사퇴와 의회해산의 악순환이 거듭되지 않을거라고 어찌 장담할 수 있는가.


역대 대통령이 특히 5년 단임제 개헌 이후에는 모두 임기 말년을 잘 마무리하지 못했고, 무엇보다 대통령 친인척과 측근 비리의 수난을 겪은것은 확실히 대통령 중심제의 폐단이란 주장이 설득력 있다. 허나 5년단임제가 아닌 4년 중임제나 내각제를 한다고 해서 대통령이나 혹은 총리의 측근,친인척 비리가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것도 아니지 않는가.


결국 우리나라 정치가 여전히 후진적이고 특히 여야대립이 극심하고 의회보담은 정당중심의 정치시스템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으며, 지역갈등이 여전한것은 우리가 헌법을 제대로 운용하지 못한대서 비롯된 것이지 헌법이 잘못된것은 아니다. 물론 그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아울러 결국 그 근본원인을 헌법의 문제라 말할수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4년중임제나 의원내각제가 당장 지금보다 더 나은 정치문화를 낳을수 있을거란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결국 우리나라 정치의 이와같은 고질적 병폐들은 정치문화와 특히 정당시스템 더 나아가 우리사회의 심각한 좌우갈등이 그 원인이 어디있는것인지를 세밀히 분석 그런것들을 고쳐나가는데서 논의가 되어야 하는 문제지 지금 당장 5년단임제를 다른 정치제도로 바꾼다고해서 우리나라 정치가 나아지는것은 아니다.


여하튼 지금의 돌아가는 사회분위기론 정치권 전반과 특히 학자와 시민단체 지도부등 지식인 사회에 개헌에 대한 공감대가 상당히 형성되어 있는것만은 틀림없다. 따라서 언젠가는 개헌의 공론화가 불가피하고 어쩌면 막을수 없는 대세가 될수도 있겠다는 예상도 해보지만 개헌이 만능도 아니고 그것이 지금의 후진적인 정치문화와 정당구조 그리고 여야간의 극한대립을 고치는데 그리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필부(匹夫)의 우견(愚見)도 한번쯤은 귀담아 들어주셨으면 하는 바램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