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친구들과 하던 놀이들중에 '시장에 가면'이라는 게 있었다. 둥글게 앉아서 자기 손바닥과 옆사람 손바닥을 번갈아 치면서 두박자의 리듬을 만들고, 거기에 맞춰 시장에 가면~을 다 같이 복창한 후에, 한사람씩 돌아가면서 '콩나물도 있고', '운동화도 있고' 하면서 시장에서 살 수 있는 각종 물건들을 하나씩 말하는 놀이였다. 

다른 사람이 이미 말한 것은 다시 써먹어서는 안되었으므로 몇 바퀴를 도는 동안에 생각할 것이 다 떨어질 무렵이면 순발력이 부족한 사람이 박자에 맞게 물건 이름을 대지 못해서 벌칙을 받게 되는 간단한 것이었지만 막상 덤비고보면 만만하게 볼 게임은 아니었다. 실제로 난 그 놀이에서 잘 해내기 위해서 시장에 갈 기회가 생기면 물건 가판대를 꼼꼼히 살피고 모르는 이름은 적어두기까지 했었으니까.

이 입으로 하는 시장놀이를 하다보면, 시작하고 시간이 좀 흐른 후에는 알고있는 모든 것을 다 써먹은 후에 쥐어짠 상상력이 만들어낸 기발한 것들이 많이 튀어나왔다. 그러다보니 대충 자기가 만들어내서 아무거나 둘러대고는 그런걸 정말 파는 걸 봤다고 박박 우기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황당하게 '동생'이나 '어금니'같은 것도 그런 <시장에서 살 수 있는 물건들> 중에 끼어있곤 했다.

요즘 아이들은 이 놀이를 하는지 모르겠다. 만일 한다면.. 그 아이들이 생각하는 '시장'은 어디일까, 궁금하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상품'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이 아는 시장에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엔, 어쩌면 억지가 아니라도 '동생'도 '어금니'도 끼어있을 것 같다.





과거에는 돈으로 살 수 없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상품으로 거래되는 세상이다보니 요즘은 눈에 보이는 상품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품들이 더욱 가치가 높고 그런 것들 중에는 '칭찬', 심지어는 '욕'도 끼게 되었나보다. 잠시 '시장'에서 관심을 끊었다가 문득 들여다보니 이제는 <시장에가면> 놀이를 한다면 수백바퀴를 돌아도 시장에서 살 수 있는 물건들을 대는 일은 궁해질 것 같지않다.

한나라당 때문에 댓글알바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이 박혀 있었던 터에 온라인마켓의 상품평들이 대부분 그런 알바들에 의해 올라온다는 말을 듣고 난 후로는 용어도 생소한 바이럴마케팅,이라는 것에 대해서 내가 가진 생각은 온통 부정적인 것 일색이었다.

그런데, 비고님이 플래닛에 올렸던 한겨레신문의 기사를 계기로 직접 그 사업을 하신다는 백수광부님의 글, 이어서 포스팅된 북극곡님의 얘기를 듣다가 보니 문득, 제대로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어느만큼 가까이에 있는 것인지 알아두면 좋겠다 싶기도 했지만 무조건 나쁘게 볼 것만은 아니라고 항변하시는 제이크님이 하시는 사업이라니 궁금증이 더해진 탓도 있다. (이 분이 오래전에 스켈렙의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린 글들을 무척 좋아했는데 연재하다가 다 못 들은 얘기들이 많은차에 다시 오셔서 무척이나 반갑더라능..ㅋ)

비고님이 소개해주신 기사에 달린 댓글들은 무척이나 살벌했다. 영혼을 팔아먹는 쓰레기라는둥.. 십수년전에, 다단계에 빠져서 본인은 물론 일가, 친구들까지 모조리 막심한 손해를 보게했던 친구에 대해서 그 친구에게 빚까지 내면서 '후원'을 했던 다른 친구가 하던 원망의 소리들이 다 모여 있는 듯 했다. (그런데 , 사회이슈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네티즌의 특성을 이용해먹는 것으로 '블랙마케팅'이라는 말도 있는 모양이다. )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서 내가 누군가와 주고받는 커뮤니케이션이 입소문이라면 우리는 해당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그리고 이런 얘기들을 아크로의 채팅방이나 개인의 블로그에서 댓글로 주고받는다면 그런 '미디어'들 역시 그런 기업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런데 누군가가 이런 우리끼리의대화를 의식적으로 계획하고 촉발시킨 다음에 전파시킬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그것은 마케팅이 된다. 사실 우리의 '말' 혹은 '대화'라는 것은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전파기구(미디어)이고 실제로 의견을 주고받음으로서 발생하는 평가는 자연스럽게 어떤 브랜드나 상품의 광고효과를 가지거나 정반대로 죽이는 역할도 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생각해보니 이것을 잘 이용하려는 마케터나 사업가들이 생기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사실 아이디어라는 것들이 들어보면 별 게 아닌데 처음 떠올리기가 별 것인 경우가 대부분이니 이상할 것도 아니긴 하다..-_-)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이걸 가지고 사업을 하는 이들이 다 성공하는 것도 아닌 모양이다. 백수광부님의 전언에 따르면 규모나 수익면에서 회사별로 천차만별인 모양인데.. 사람들 사이에 어떤 메시지를 많이 퍼뜨리는 것에는 성공하더라도, 그런 성공이 구체적인 사업성과로 이어지는 것은 쉽지 않은 듯 하다. 어떤 제품광고를 위해서 제작한 광고게임이 빅히트를 친 경우에도 정작 그 제품은 전혀 팔리지 않는 일도 흔하다고 한다(실례로, 버거킹의 subservient chicken광고는 '올해의 광고게임'에 선정되기까지 했지만 정작 그 판매량엔 별 도움이 안되었다).

이런저런 내용들을 돌아다니면서 대충 배우고 생각해보니, 어쩌면 내가 걱정하던 것과는 달리, 그리고 백수광부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이런 입소문을 이용한 바이럴마케팅이 반드시 사악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싶어진다. 단지 소비자들 사이에 더 효과적으로 마케팅 메시지를 주입하기 위해서 벌이는 노력의 일환으로 받아들인다면 부자연스러울 일도 전혀 없다. 그것이 정직하기만 하다면 말이다. 좀 순진한 생각인지 모르지만, 아무래도 입소문이 성공적이고 자연스럽게 퍼지게 하기 위해서 누가 머리를 잘 쓰는가,에 관한 경쟁에서 성공의 비결이 있다면 정직일 듯 하다.

바이럴 마케팅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가 핫메일(hotmail)이라고 한다. 이 서비스는 시작한 지 1년 반만에 850만의 이용자를 확보했는데 이런 성공의 비결이 바이럴마케팅이었다. 내가 핫메일로 누군가에게 메일을 보내면 화면의 아래에 'get your free email at hotmail'이라는 문구가 함께 보이는데 이런식으로 핫메일을 사용하는 행위 자체가 마케팅의 역할을 하게 되는 셈이다. 여기에는 과다포장이나 사기가 들어갈 틈이 없다. 자연스럽게 '사실'을 유포하는 것에 불과하다. 핫메일은 공짜로 쓰는 계정이 틀림없으니까 말이다.




암튼.. 성공적인 바이럴 마케팅 덕분에 사람들 사이에 어떤 메시지가 광범위하게 퍼질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개인적 욕심으로는.. (실제로 자신의 밥줄일 경우 따지는 자체가 배부른 소리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입소문을 이용해서 광고를 하려는 마케터라면 그 수단과 방법을 고민하기 전에 자신이 광고하려는 대상이, 그 안에 입소문이 날 만한 요소, 즉 많은 이들이 알아야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으면 좋겠다.

길거리에서건 안방에서건 늘 강요하듯이 들이대는 광고의 압박에서 해방되기 위해서 티비나 잡지를 멀리하는 나지만 그런 홍보들의 다양한 촉수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불가능하다보니 '상인들'에게 요구하기엔 어쩌면 좀 과다할 수도 있는 것을 기대하게 된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귀를 막고 있는 소비자들에게 또 하나의 끼어들기 메시지를 억지로 주입하고 있더라도 그것이 그런 민폐를 끼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자신들이 대신해서 홍보하는 기업이나 인물이 스스로 소비자가 되었을 때에도 거리낌없이 선택하고 싶은 대상인지를 수익계산 이전에 먼저 생각해보길 바란다면..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너무 고지식한 바램일까?

오래 전에 봐서 지금은 줄거리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영화 'Thanks for smoking'을 다시 한 번 봐야겠다. 그 때는 재미반 짜증반이었는데 어쩌면 새롭게 보일만한 것을 발견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