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헌법상 표현의 자유에 직접적인 대사인적 효력이 있는가?

우리헌법 21조

언론 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해서는 안된다. 언론 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때에는 이에 대한 피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현행 헌법상 사인간에도 직접 적용되는 규정이라고 보는 설과 부정하는 설이 있다

21조 규정은 표현의 자유가 국가로부터 침해받는 것 외에 사인으로부터 침해받은 경우를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명예나 권리가 언론 출판에 의해 침해받은 경우를 상정하고 있다. 따라서 표현의 자유 자체가 직접적을 대사인적인 효력은 갖는다고 주장하기 힘들다.

즉 헌법21조를 근거로 사인이 나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직접 주장할 수 없고 오히려 꺼꾸로 사인의 표현이 나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했다고 주장할 수 있을 뿐이다.

참고로 바이마르 헌법에서는 근로자의 단결권과 의사표현의 자유에 직접적인 대사인적 효력을 인정한 바 있다. 그러나 현재 독일기본법은 단결권에만 인정하고 있다.

헌법21조 자체로만 본다면 헌법이 직접 표현의 자유의 대사인적 효력을 인정한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남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을 문제시하고 있다. 즉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설정하고 있을 뿐이다. 보통 그래서 개별적인 헌법유보의 한 형태로 본다. 실제로는 형법적 규정에 의해 저 헌법적 규정이 실현된다.

2. 그렇다면 헌법21조의 표현의 자유가 간접적으로 대사인적 효력을 가진다고 볼 수 있는가?

참고로 기본권의 대사인적 효력인 인정될때 비로서 기본권 충돌이 가능하다.

보통 헌법적으로는 기본권의 성질상 간접적 대사인효가 인정되기 어려운 것을 제외하고는 기본권의 대사인효를 인정한다. 따라서 기본권의 충돌이 표현의 자유상호간에도 인정될 수 있다. 다만 기본권 충돌이 국가와 연결된 삼각관계라면 기본권의 대사인효는 사인간의 직접적인 다툼에서 사법부를 매개하면서 이루어진다. 암튼 기본권의 충돌은 기본권의 대사인효를 전제해야 가능하다. 기본권의 대국가적효력만으로는 기본권의 대사인효가 인정될 수 없다.

여기서 간접적인 대사인적 효력을 갖는다는 건 주관적 사권이 아닌 객관적 가치질서로서 즉 다른 법질서에 의해 표현의 자유가 대사인적 효력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주관적 공권은 기본권의 대국가적 효력상 당연히 인정된다]

보통 민법상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 규정이 간접적용의 근거조항으로 원용된다.(독일민법의 영향을 받아 우리 민법에도 동일한 규정이 있다.) 민법 103조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 규정은 통상임금산정과 관련된 판례에 나왔던 신의칙과 비슷한 일반규정이다. 보통 이러한 간접적 효력은 법관의 재량성을 상당히 넓혀준다. 그런데 이런 재량성을 주는 이유는 구체적 타당성을 넓히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염두해 두자. 그런데 헌법상 간접적 대사인적 효력을 주장하는 학설은 바로 이러한 법관의 재량성을 헌법에 기속시키는 의의가 있다고 한다.

이해를 돕기위해 Luth(u위에 꼼마 두개가 있다.)라는 유명한 판결을 가지고 설명해 보자.

나찌시대에 유대인박해영화를 제작하였던 harlan이 나중에 "영원한 여인"이라는 영화를 만들자 Luth라는 사람이 Harlan 감독은 반유대주의로 그가 만든 영화를 보지 말것은 신문을 통해 관객에게 호소한다. 이러한 보이코트 선동행위에 대해 함부르크 상급법원은 이러한 보이코트 선동은 독일민법 826조의 선량한 풍속에 반하는 행위라고 하여 Luth에게 영화를 보지말라고 권고하는 행위를 하지 말라고 명한다.

이에 Luth는 자신의 언론의 자유가 침해되었다고 연방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였고, 연방헌재는 간접효력설에 입각해서 보이코트 선동은 독일기본법의 표현의 자유에 근거한 것이므로 보이코트 선동을 내용으로 하는 표현은 독일민법 826조의 선량한 풍속에 위반되지 않고 헌법상 정당하다고 하여 당해 법원의 판결을 취소한다. 

저 사안에서 harlan의 기본권을 우선 확정해야 한다.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자신의 사상을 나타낸다면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예술의 자유가 걸쳐 있다. 보통 이 경우 다른 기본권을 표현의 자유에 흡수해서 판단하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를 기본권의 경합이라고 한다. 그리고 luth의 기본권 역시 표현의 자유이다. 양자 모두 정치적 영역에 걸친 표현에 해당된다.

그런데 여기서 독일연방헌재는 luth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판결의 취지를 일베라는 사이트에 대입해보자.

일베라는 사이트가 문제가 있다고 보고 그 일베라는 사이트는 인종비하사이트이므로 가지 말라고 한 것이나 남양유업은 대리점을 부당하게 착취하는 영업을 하므로 그런 회사의 우유는 먹어서는 안된다고 말한 것과 매우 닮아있다.

운지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표현의 자유이긴 한되(저속한 표현이라고 하자. 판례는 저속한 표현도 표현의 자유에 포함시킨다. 음란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그러한 표현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것 역시 표현의 자유에 해당된다.

결국 지금 아크로 사이트에서 벌어지는 것은 기본권 충돌의 문제이고 이 경우 해결방법으로는 다양한 학설이 제기되고 있는 것을 보듯 그 해결에 있어서 딱히 정해진 것은 없다. 다만 모두 표현의 자유로 보장된다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 우리 헌법질서에서 운지라는 표현이 헌법21조상 문제가 될 수 있는 건 사실이다. 즉 헌법 21조는 사생활의 자유를 표현의 자유보다 우선시 하는 듯한 느낌까지 준다. 다만 일반적으로 정치인과 같은 공적인물에 대해서는 그들의 사생활의 자유(21조의 명예나 권리가 여기에 해당)와  표현의 자유를 거의 동등하게 보는 것 같다.(사실 요즘 추세는 공적인물의 경우 아주 극단적인 비하나 반인륜적 표현같은 아주 예외적 사유가 아닌한 표현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느낌도 있다. 왜냐하면 정치적 자유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다만 이것은 노무현의 유가족과 운지라는 표현을 한 사람과의 관계이지 운지라는 표현을 한 사람과 운지라는 표현을 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의 관계가 아니다.

결국 지금 벌어지는 운지라는 용어를 써왔던 사람도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이고 운지라는 용어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이다.  이 경우 헌법적으로 해결되기 위한 일반적 원칙은 이익형량의 원칙이지만 반드시 그것만이 절대 유일한 원칙은 아니다 오히려 요즈음은 규범조화적 해석을 하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이 경우 운지라는 표현이 가지는 사회적 문제성 심각성 반인륜성 인종차별적 요소등등 다 따져보되 되도록이면 양자가 모두 실현되는 방안을 먼저 고려한다는 것이다.

일단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