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러셀 님과 습관의힘 님 핵심 주장을 강력 지지합니다.

러셀 님과 습관의힘 님 주장은 요컨대, 특정 용어(ㅇㅈ, ㅉㄸㅇ 따위)를 의도적이고도 집요하게 구사하는 행태는 도덕적 · 윤리적 · 인륜적 측면에서 강력 비판 받아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런 비열한 용어들로 논쟁 상대방을 조롱하고 비아냥대는 짓들을 하면서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변명하고 위장하는 행위는 (다시 말해 그런 행태를 보이는 논객들이 도덕적 · 윤리적 · 인륜적 정당성까지 확보하려 드는 것은) 인간의 양식으로 판단컨대 강력하게 비판 받아 마땅한 파렴치한 짓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실을 인지한다면, 좀 더 나은 토론/논쟁 문화를 가꿔나가기 위해 그런 비열한 용어들은 쓰지 않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하는 일종의 호소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러셀 님과 습관의힘 님의 일관된 주장은 위와 같은 전언을 담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굳이 문제의 용어들을 구사하겠다면, 그 자유를 얼마든지 누려라, 말릴 수도 없고 말리지도 않겠다, 허나 그에 대한 변명/합리화를 하면서 인간 양심까지 속이려 든다면 그것은 정말 파렴치한 짓이라는 것입니다.

양심의 자유란,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비열한 특정 용어 사용 행위와 관련해 말하자면, 행위 당사자가 자신의 판단에 따라 선행이든 악행이든, 떳떳한 행위든 비겁한 행위든, 정직하고 진실한 글쓰기든 위선적이고 교활한 글쓰기든, 다시 말해 그 어떤 행위/언행/글쓰기든 아무것이나 마음대로 선택해서 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합니다. 이것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인간 고유의 자유입니다. 아무도 그런 양심의 자유를 억압하거나 금지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특정 용어 사용 행위를 아주 비열하고도 저열한 반도덕/반윤리/반인륜적 행위로 보는 비판자라 할지라도, 문제의 특정 용어 사용을 부득부득 고집하는 사람의 자유 그 자체는 결코 억압하거나 제한할 수가 없습니다.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보다 더 본원적인 인간 자유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아무도 억압과 제한과 금지를 운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비판은 근본적으로 억압, 제한, 금지가 결코 아닙니다. 즉 우리는 그런 특정 용어(ㅇㅈ, ㅉㄸㅇ 따위)를 나쁜 의도로 구사하는 사람들을 인간의 양식에 호소해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양심의 무한 자유를 빙자하여 비열한 언행을 일삼는 자를 비판하는 것과, 비열한 언행자라 할지라도 그가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자유 그 자체를 억압하고 금지하는 것은 분명히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올바른 비판은 근본적으로 억압과 제한과 금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건대, 비판은 단지 (상대방의 인간적 양식에 호소해 저런 자유의 악용/오용/남용 따위에 대해 한번 재고해주면 좋지 않겠느냐 하는) 일종의 의사소통적 대화의 요청입니다. 즉 비판은 (논쟁 당사자들 모두 공감할 수 있는 그 어떤 목적지로 함께 가기 위한) 대화의 요청이라는 것이죠. 이런 대화의 요청을 억압과 제한, 금지와 규제 움직임으로 침소봉대하고 (차칸노르 님처럼) 표현의 자유 수호 운운하는 것은 난센스(nonsense), 호들갑, 허튼소리에 불과할 뿐이라는 겁니다. 

왜 그런지 좀 더 분석적으로 부연 설명하죠. 즉 러셀 님과 습관의힘 님의 위와 같은 제안과 주장을 비판하는 논객분들은 위 두 가지 사항을 (의도적이든 아니든) 구별하지 못한/않는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양심의 자유 논제도덕/윤리/인륜적 비판 논제를 별개의 문제로 구별하지 못하고/않고 완전 혼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훨씬 더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자유 논제로써 개별적이고 특수한 비판 논제를 은폐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fallacy of suppressed evidence). 

즉 러셀 님과 습관의힘 님은 분명히 두 논제를 다른 것으로 구분했으며, 그 각각에 대한 기본적 견해도 분명하게 밝혔다는 것입니다. 위에 요약해놓은 대로 각각의 논제는 그 번짓수가 분명히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론자와 비난자들은 두 가지 다른 논제를 하나의 단일 논제로 얼렁뚱땅 뭉뚱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논란의 핵심인 도덕/윤리/인륜적 비판 논제를 번짓수가 명백히 다른 양심의 자유 혹은 “의사 표현의 자유”라는 논제로 바꿔치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런 오류는 일종의 “논제 바꿔치기 오류”(≒ red herring fallacy)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고기 냄새를 피워 사냥개를 엉뚱한 곳으로 유인하듯이) 논쟁 상대방과 지켜보는 독자분들을 (자신한테 유리한 논쟁의 구도로) 오도하는/오도하겠다는 유인 논법입니다. 저런 그릇된 논법을 구사하는 논객분들은 명백히 러셀 님과 습관의힘 님의 진의를 논제 바꿔치기를 통해 왜곡하거나 곡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그런 바꿔치기가 의도성이 있는 것이라면 아주 비열한 것입니다. 반면 의도성이 아닌 단순 논리적 오류에 기인한 것이라면, 해당 논객은 기초적 중고딩 논리학에 ‘무지한’ 논객이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유형의 논객도 아니면서 러셀 님과 습관의힘 님의 핵심 주장을 계속 억지 논박하는 논객분(들)도 있는데, 그 논객분(들)은 종잡을 수 없는 횡설수설로 가는 곳마다 좌충우돌을 일삼는 일종의 논쟁중독자(argu-holics)라고 볼 수밖에 없겠습니다. 알콜중독자가 그러하듯이 저런 유형의 논쟁중독자는 자기가 한 소리가 뭔 소리인지 자기자신도 모른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자기자신도 모르는 논쟁중독자의 횡설수설을 그 누군들 알 수 있겠습니까. 제멋에 겨워 맘껏 떠들도록 걍 놔두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요컨대 이들 세 유형의 왜곡/곡해와, 그에 기반한 억설을 강변하는 예의 세 유형의 논객분들은 거의 전적으로 그르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분들한테 지성인/지식인/양식인의 정도를 찾으라고 강력 비판합니다. 반면에 이번 특정 용어 사용 행위 논란과 관련해서 러셀 님과 습관의힘 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장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따라서 나는 두 분의 일관된 핵심 주장을 강력 지지합니다. 두 분의 진의를 마음으로 성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