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헌트.jpg

 

어제는 혼자 집을 지켰다. 식구들은 처형네 식구들과 모두 스키장에 간 것 같다. 달그락 달그락, 소리를 내며 혼자 해먹는 음식은 맛이 있다. 불을 다 끄고, 식탁에 작은 불 하나만 켜두고 앉아 마시는 술은 더 맛있다. 영화나 음악회에 나는 혼자 간다. 설사 내연의 여인이 생긴다하더라고 영화는 혼자 갈거다. 헤헤.. 집에선 영화를 잘 보지 않는 편인데 식구들과 같이 보면 집중이 잘 안되기 때문이다. 혹 중간에 이상한 장면이나 잔혹한 장면이 나오면 좀 민망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제 저녁에 우연히 <더 헌터, Jagten>에 홀딱 빠져 밤새는 줄 모르고 보았다. 이 영화를 본 한국 관람객이 모두 3만명 정도라니 아쉽고 놀랍다

 

이 영화는 덴마크의 한 시골 유치원에서 일어난 일에 관한 것이다. 실화에 기초한 것인지가 밝혀져 있지 않지만 아마도 소재는 실화가 아닐까 싶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외로움을 잘 타는 어떤 여자 꼬마아이가 자기를 돌봐준 선생님, 그리고 아빠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신고를 한 것이다. 이혼 후 쓸쓸함을 겪고 있는 주인공과 꼬마소녀는 이런 면에서는 같은 처지이기도 하지만, 꼬마의 오빠가 보여준 포르노 사진과 이 주인공 선생에 대한 애착에 대한 약간의 실망이 이런 어처구니 없는 거짓말을 만들어 내게 된다.  한번 던진 이야기에 주위 사람들을 살을 붙이고 뼈를 덧대어 하나의 사실로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있어서는 안되는 것에 대한 중오는 그 희생양을 만들기에 모두가 합심을 하도록 불을 지른다.  

 

순박한 덴마크 시골 사람들의 기본 믿음은 "그런 나이의 꼬마 아이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라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한국에서, 특히 우리 동네에서 일 년만 살았다면 이런 생각은 할 수 없을 것이지만. 한국은 초등학생이 다른 왕따 친구의 항문에 연필을 넣어 괴롭히는 동네다. 유치원 원장도 아이의 말을 믿고, 그 유아 성폭행 전문가라는 사람도 아이의 말이 맞는다고 한다. 게다가 "이런 사람은 다른 아이들까지 성폭행을 했을 것이니 더 조사해보라"고 조언을 한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자신도 그런 경험이 있다고 말을 한다. 소문은 진실이 되어간다. 주인공과 친한 친구들도 하나둘 멀리하고 심지어는 다시 유치원에 온 주인공을 다른 선생님이 때려서 밀어낸다. 마트에 물건을 사라간 주인공을 모든 사람들이 모욕을 하고 쫓아낸다. 그러다 어떤 날은 떡이 되도록 맞고 나오기도 한다.

 

그 동네 사람들의 신앙은 <아이들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것이고 이 명제에 기초하여 모든 사실을 해석해나가기 시작한다. 사실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한데 영화에서 보여주는 동네는 이상적인 동네 그 자체이다. 모든 사람들끼리 친족이상으로 친하고 공동체의 유대가 가장 확실하게 유지되고 있다. 이런 공동체적 유대가 잘못된 믿음에 기초할 때 그것이 품어내는 폭력과 야만이 어떤 것인지 영화는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히틀러 시절이 떠올랐다. 덴마크 말이 독일 말과 유사한 면도 있어서이지만, 순박한(어떻게 보면 멍청한) 사람들이 하나의 신념에 몰빵할 때가 가장 야만적인 일이 일어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탈레반이나 인종청소에 가담한 극우 기독세력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는 디 이상의 분해를 허용하지 않는 믿음은 <종북세력 타도>와 <전라도 괴롭히기>가 아닐까 싶다.

 

<전라도>와 <종북>에 관하여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이 영화를 꼭 권하고 싶다. <종북>과 <수꼴>을 퉁치자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종북> <홍어>가 <수꼴>과 <고담대구>와 대치될 수 없는 것은 전자는 현실적인 손실을 끼치는 기저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종북은 국가법으로 처벌을 받으며 전라도 낙인은 현실에서 음으로 양으로 손해를 본다. 그 정도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수꼴>과 <고담대구>나 <경상도 문댕이>는 욕이 되지만 <종북>과 <전라도>는 낙인이 되기 때문에 이를 등치하는 것은 문제를 보는 올바른 의식이 아니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그 성추행에 대한 조사만으로 유치원에서 쫒겨난다. 그리고 마트에서 빵 하나도 제대로 사지 못하는 불가촉천민이 되었다. 우습게도 그 유치원 아이들이 하나같이 증언을 한 <그 아저씨의 지하실에서 성추행을 당했다>라는 말이 경찰에서는 부인된다. 왜냐하면 그 주인공의 집에는 지하실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작화증이 있기 때문에 없는 사실도 한번 상상 속에서 만들어지면 그것을 현실로 믿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어른들도 워낙 크고 작은 거짓말을 하고 아이들도 이에 대항하기 때문에 이런 주장에 쉽게 동조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경찰에서 무혐의로 풀려난 주인공에게 마을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서 괴롭힌다. 집안에 돌을 던지고, 주인공이 아끼는 개를 죽이기까지 한다.

 

영화에서 한 친구는 주인공을 도와주는데, 그것이 주인공은 결백을 확신해서인지 아니면 "그런 짓을 했지만 그래도 불쌍한 내 친구이기 때문에"인지를 불명확하다. 더 이상의 이야기는 스포일링이 될 수 있어서 그만하고자 한다. 내가 이렇게 홀딱 빠져서 본 영화는 최근에 없었든 것 같다. TV가 아니라 모든 불을 다 끄고 7인치 넥서스 패드로 이이폰을 끼고 보았는데 몰입도는 TV나 영화보다 나은 것 같다. 이렇게 답답하고 불편한 영화는 아마 또 없을 것이다. 이전 금태섭이 쓴 <확신의 함정>이라는 책이 기억난다. 모든 사실에 대하여 의심을 하라는 지극히 영양가없는 주장으로 이 영화가 요약되면 곤란하다. 홀로코스트도 의심하고 달착륙도 의심하는 이런 정신나간 회의주의를 말하고자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믿음, 특히 집단적 믿음이나 신앙을 더 하위단위로 분해해서(resolution), 그 요체가 무엇인지를 인식하고 그것에 대하여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나는 이 영화를 읽었다. 영화에서 배우의 연기가 좋다 이런 불구경 식의 평은 이 영화에 대한 예의가 아닌것 같지만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 총과 자동차가 날아다니는 헐리우드 영화에는 백만명이 들고 이런 영화는 10만이 넘지 못하는지 통탄스럽다.

 

영화의 무대인 덴마크에는 일주일 정도 있어본 기억이 난다. 10년 전쯤. 영화에 나온 그대로 평화롭고 아름답다. 동네마다 서 있는 엄청 커다란 나무들이 가장 기억난다. 이 영화에서도 아름다운 덴마크 시골 모습이 잘 나타나있다. 누구보다 선량하고 성실하고 공동체에 충실한 homogenous한 사람들이 손쉬움 믿음을 선택할 때 지옥의 문은 활짝 열려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기분같으면 모든 종교단체,

군대,  종북세력과의 싸움에 날밤을 새는 박근혜 정부 고관들, 이 같이 "간편한" 믿음으로 뭉쳐진 모든 형제자매들에게 

이 영화가 그나마 작은 치료제가 되었으면 한다.  호환, 마마, 깡패,  독사, 날강도보다 더 무서운 것은 

순박한 사람들이 아무런 근거없는 사실을 확신할 때가 아닌가 싶다.    무서운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