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정사게에 아주 잘 어울리는 글이라고 봅니다만, 운영진이 이에 동의하지 않아 다른 곳으로 옮긴다 하더라도 불만은 없습니다.)
 
이하는 책 내용의 요약과 설명을 포함하는 서평이라기보단 그 책과 관련해 떠오르는 이런저런 잡생각 중 두어가지를 간추려 적어두는 글입니다. 따라서 독자에게 아주 불친철한 글이죠. 뭐, 그래도 예의상 조금은 아즈마 히로키의 논지에 관해 언급은 해두겠습니다만, 기본적으론 마치 저와 마찬가지로 이미 책을 읽어본 사람들 상정한 글이라는 점을 미리 밝혀둡니다. 

 아즈마 히로키의 저 책은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제시된 '일반의지'이란 개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업이긴 한데, 그러나 이건 표면에 드러난 포장에 불과합니다. 루소 사상의 재해석은 기껏해야 부차적 관심일 뿐입니다. 아즈마 히로키 본인이 밝히다시피, 저건 학술적 업적을 남기기 위해 쓴 책이 아닙니다. 그 책에서 일반의지의 재해석에 관련된 내용은 싸그리 다 빼어 버려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마저 들 정도니까.

 아즈마 히로키가 진짜 하고싶은 얘긴 따로 있고,  그걸 중심으로 얘기 좀 하겠습니다.

 아즈마 히로키가 우선 전제로 깔고 나가는 건 (무슨 이유에서인지) 우리가 익숙하게 여기는 전통적인 대의제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하기 어려운 시대로 들어섰다는 겁니다. 적어도 그런 시대로 이제 나아가고 있다는 거죠.

  한국의 예를 들어, 양당제로 대표되는 정치제도, 그 양당이 좌/우파에 입각한 정책과 이념을 내세우고 정당별로 후보를 선출해 입후보하면 유권자가 이를 선택해 국민의 뜻을 '대의'시킨다, 그리고 이 국민의 의사를 대의하는 대통령, 국회의원들은 행정부와 의회에서 토론과 설득, 정치적 흥정 및 여론동원전, 숙의 등의 과정을 거쳐 정치적 "합의"를 생산해내고 이 합의를 기반으로 여러 정치/군사/외교/경제 정책을 실행해 국가를 꾸려나간다... 

 아즈마 히로키가 주장하는 바는 우선 이런 정치 시스템이 더이상 제대로 작동할 수 없는 시대로 들어섰거나 적어도 한창 그런 와중에 있다는 겁니다. 그 이유가 뭔가? 사회의 가치가 지나치게 다원화되어서 다당제 (한국의 경우 다당제)로 대표되는 소수의 정책-이념 선택지로는 사람들이 요구하는 바를 만족시킬 수가 없다는 거죠. 정보과잉도 그 이유로 듭니다. 직업정치인은 물론이거니와 일반국민들도 접하는 정보의 양, 그리고 그 출처가 과도(?)하게 다원화된 나머지 전통적인 좌-우 대립구도라는 단순하다면 단순한 정치적 진영정리가 더이상 안된다는 거죠. 그러다보니 부동층이랄까, 일본식으로 말하면 무당파로 대표되는 사람들의 비중이 점차 늘어나고, 또 이런 사람들은 기존 정당에 정치적 관심과 헌신을 가질래야 가지기 어렵게 되고, 결국 정치적 무관심 층의 비중이 점점 늘어나면서 '국민의 의사'를 선거를 통해 선출된 정치인들이 '대의'해나간다는, 대의민주주의 제도의 정당성 기반 자체가 뿌리에서부터 차츰차츰 썩어들어나가고 있다는 거죠.

 장황하게 말했지만, 간단히 말하면 (이런 저런 이유로) 세상이 너무 복잡해지다보니 소수의 정당, 소수의 이념-정책기조로 정치적 진영을 정리할 수 밖에 없는 기존의 대의민주주의 제도로는, "국민"을 대의한다는 대의민주주의 이념 자체가 노골적으로 허구화되어 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안철수' 현상을 떠올리는 분들도 있으리라 봅니다. 적어도 전 그랬습니다. 

 세상이 너무 복잡해졌고, 정보량이 지나치게 많아졌고, 그러다보니 사람들의 가치도 너무 다원화되어 (뒤집어 말하면 유권자들 간에 암암리에 당연시하는 가치의 공유가 과거에 비해 점점 약화, 희박화되어 가는) 좌-우파 구도라는 단순명쾌하다면 단순명쾌한 진영구도로는 국민을 대의한다는 것 자체가 현실성을 상실해 가고 있다... 뭐 이런 얘깁니다. 

 그래서 아즈마 히로키가 대안으로 꺼내놓는 것이 <소통없는> 정치, <정치주체들의 이성적 숙의, 토론>과정이 없는 정치라는 겁니다.
 
 언론, 거리 집회, 국회, 대통령의 대국민 기자회견 등 기존의 소통과 숙의-토론 과정을 빠져버리면 (아즈마 히로키가 믿는 바에 따르면 이런 건 어차피 요즘 시대엔 잘 되지도 않을 거니까), 그 대신 다른 무언가가 이를 대체해야겠죠. 

 그 다른 무언가가 뭐냐면, 정보기술을 응용한 데이터베이스 정치에요. 

 좀 구체적인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의료보험제도를 개혁한다든지 철도 공기업을 개혁한다든지 할 때, 국회의원, 대통령, 정당, 관료 및 시민단체 등 전통적인 정치활동 주체들 간의 '토론', '협상', '타협' 이런 건 가능한한 축소해버리고, 의료라면 의료, 철도라면 철도 등을 포함한 대중교통에 관해 쌓인 '빅 데이터'를 엔지니어들이 분석해 <공학적 해결>들을 제시하고 한편으론 소셜 미디어 등에 쌓인 유권자들의 '정서'를 분석해 (요즘 기업들이 마케팅 전략 차원에서 흔히 도입하는 sentimental analysis를 국가 정책에도 도입하자는 거죠) 적절한 정책을 산출해 내자는 겁니다.

 아즈마 히로키는 이게 현실성을 띄고 있다는 생각하는 게,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는 이런 사회/경제적 빅데이터들이 그 양과 질적인 면에서 급격하게 증가할 뿐만 아니라 그 분석기술도 걸맞춰 발전할 거라고 보는 거죠.

 여기까지 놓고 보면, 기존에 이념과 정책과 토론과 여론전이 수행해왔던 역할을 '정보공학'이란 공학적 방식으로 대체해버리자는 주장이기도 합니다. 

 정치-국가경영의 공학화랄까...

 아즈마 히로키는 예를 들어 인터넷 서점 기업인 아마존에서 이미 그 단초를 보고 있습니다. 아마존 같은데 들어가면 고객이 좋아하고 관심을 가질만한 책들을, 기존에 쌓인 데이터베이스와 기계학습같은 분석기술을 이용해 인공지능적으로 '자동맞춤추천'해주죠.
 
 아즈마 히로키가 추측하기엔 앞으로 정보화가 가속화되다보면 정부의 역할이란 교육, 환경, 경제 분야 면에서 유권자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스레 흘려낸 빅데이터를 축적하고 이를 분석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쪽으로 바뀌어 나갈 것이고, 기존에 이런 성격의 정책결정에 관여해왔던 정치주체들의 역할은 점점 축소되면서 그 자리를 <엔지니어>들과 <인공지능>이 메꿔나갈 거라는 겁니다. 

 대략 100에서 200년 뒤에는 세상이 그렇게 바뀌어 있을 거라는 게 아즈마의 '추세 예측'. 

 과연 아즈마 히로키의 대담한(?) 추측대로 정치/국가경영의 대다수 중요부분이 공학화되어 버릴 지는 미지수죠. 가봐야 알겠죠. 
 그런데 좀 황당무계하기까지 느껴지는 구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어필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기존 대의제 민주주의 제도의 기반 자체가 붕괴되고 있다는 현실진단 자체는 제법 그럴싸하게 들린다는 겁니다.
 또 이런 생각도 들죠. 만약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 국가가 민주화 과정을 생략한 채 아즈마 히로키가 예측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그 모습은 어떻게 될까? 실제로 아즈마 히로키는 인터뷰에선가 이런 말을 합니다. 자신이 이 책에서 제시하는 개혁 방향은 어디까지나 자유민주주의, 또 인권이라는 관념이 충분히 녹아든 사회에서나 바람직하며 그렇지 않은 사회라면, 전체주의 국가운영 기술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통적인 대의제 민주주의 제도의 유효기간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다해가고 있으며 만성적 기능부전에서 헤어날 길이 없는 것같다는 불안감을 희미하게나마 느끼는 저같은 사람에겐, 아즈마 히로키의 이 책은 여러모로 '마음에 걸리는' 책입니다. 

 한편으론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엔지니어들에 의한 정치의 '정보공학'화라는 비전. 골치 아픈 정치 (적어도 우리가 아는 정치), 이념-노선 갈등 따윈 다 없애버리고 엔지니어들한테 다 떠념겨서 데이터의 축적과 분석을 통한 공학적 해결로 대신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속 편할까, 이런 생각 들죠.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론, 아즈마 히로키가 사태를 과장하고 있다, 혹은 일본 특유의 사태를 안일하게 일반화하고 있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 의심이 강하는 드는 장면도 곳곳에 있는데, 이 얘긴 다음에... 하죠. 

 여기서 멈추면 쓰다가 만 글이 되는 건 저도 압니다만, 갑자기 힘이 빠져서...  


 참고할만한 글 
 아즈마 히로키 <일반의지 2.0> 역자 현지 인터뷰 
 경향신문 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