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기독교인입니다.

 

 

글에서 '기독교'는 개신교와 가톨릭을 모두 지칭합니다. 그러나 한국 개신교의 관점에 더 가까우리라 봅니다.


[1-구약 폐기론을 왜 받아들일 수 없나
]

 

일반인의 시각에선, 현대인의 감각으로 보면 상당히 비윤리적이며 논지에서 신약과 충돌하는 것으로 보이는 구약을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은 합리적인데 왜 기독교계가 이것을 받아들이진 못한다 해도 긍정적인 검토마저 하지 않느냐란 물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기독교계의 합리성을 이루는 전제는 이렇습니다.

 

 

1. 인간은 가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존귀합니다. 농담이 아니고 기독교는 인간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종교가 아니고 신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종교입니다. 주위에서 기독교인들에게 목사나 전도사에게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냐고 물어보십시오. 그럼 ‘예’라고 답할 겁니다. 그럼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냐 신을 사랑하는 것이냐고 물어보시면 일단 대답을 회피하면서 -하나님(또는 예수)은 인간을 사랑하신다-고 답하겠으나 다시 분명하게 물으면 신본주의를 부정하진 않을 것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신의 권위>인간의 존엄성]

 

 

이를 신본주의라 부릅니다.

 

 

2. 기독교계에 의하면 바이블은 각 66권[가톨릭 바이블은 신구약 중간사 포함]이 저자와 시대가 다 다르나 단절된 책의 모음집이 아니며 일관된 무엇(성령이라고 흔히 부릅니다)의 영향에 의해 일관된 체계로 쓰여 진 책입니다. 그래서 신성한 책입니다.

 

 

이제 현대의 기독교계가 이해하는 구약-신약을 거칠게 훑어 보겠습니다.

 

창세기 인간 창조와 인류의 타락을 [도입]으로 모세와의 계약(율법)을 [전개]로 유대족의 영욕을 [발단]으로 하여 [본론]인 로마령 갈릴리의 나자렛 유대 목수인 예수의 출현에 이르기까지 서술하고 수난으로 [위기]를 맞고 [절정]으로서 그리스도로서 부활해 승천함을 기록하고 [결말]에 사도들이 복음을 세계에 전파하다를, [부록]으로 초기 공동체 편지모음을, [속편 광고]로 - 긴장타라. 그리스도께서 심판하러 다시 오신다. 그게 언제일지 모르나 바로 내일일 수도 있어!

 

 

이런 스토리입니다.

 

 

신에 의해 창조된 인간은 원래 신보다 하찮은 존재인데다 원죄를 짓고 타락했으며 구약에서 창조주께서 인간을 어떤 식으로 가지고 놀든 잘못이 아닙니다. 오히려 죄 많고 하찮은 인간을 사랑하시어 인간의 타락을 보고 홍수로 쓸어 버리려다 그만두셨고 계속해서 인류의 장자인 유대민족을 중심으로 인류를 갱생시키려고 했으나 계속해서 엇나간 유대인들을 계속해서 용서하셨으며 최후론 직접 자신(예수, 삼위일체)이 지상에 내려오셔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이하 생략)

 

 

 

정리하자면 구약에서 신이 인간에게 어떤 불합리한 요구를 하고 현대적 관점에서 인권을 짓밟는 사악한 일을 해도 그건 잘못이 아닙니다. 아이가 자신이 만든 실험용 개미집을 어떻게 가지고 놀면서 개미를 실험하든 그 소유주 아이에게 죄를 묻지 않는 것과 비슷합니다. 마찬가지로 이런 전능하고 크고 아름다운 신이 죄 많고 하찮은 인류를 계속해서 용서해 왔고 결국 인류의 원죄를 대속하기 위해 직접 지상에 내려와 말 못할 끔찍한 고통을 받은 것에 눈물을 흘리면서 감격하는 것에 기독교인으로 가는 길이 있습니다.

 

이것이 종종 언급되는 '구약을 완성하는 신약'이고 덕분에 신실한 기독인은 구약과 신약의 차이에서 그다지 큰 갈등을 느끼지 않습니다. 구약의 신을 받아들이는 인상이 무서우면 무서울수록 신약에서 받는 감동(그쪽 용어론 은혜)이 증폭되기 때문입니다.

 

 

또, 이런 세계관이기 때문에 인간의 선함과 바름과 깨달음만으로 인간이 구원되는 걸 기독교계의 주류가 인정하지 않는(속되게 말하면 아무리 인간으로서 착하고 올바르게 살아도 천국에 못 가고 지옥갑니다) 것입니다. 오직 예수! 인간에겐 그럴 능력도 존엄도 없습니다.

 

 

고로 기독교계의 합리적 관점에서 볼 때 구약을 폐지하라는 건 인정할 수 없는 요구입니다. 교회가 무너집니다. 

 

 

[2-구약의 부작용]

 

위계가 확실한 가톨릭은 말할 것이 없고 개신교는 만인제사장 이론을 내세우나 속세의 제사장은 목사 및 장로입니다. 대개의 종교적 집단에서 확인할 수 있듯 숭배 당하는 대상을 신성화하면 할수록 숭배대상의 뜻을 해석하는 그 아래 사제의 권위가 따라서 높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설사 평신도나 진보목회자가 구약론을 약화하거나 폐기시키려는 파격적인 뜻이 있다 해도 구약이 신의 권위를 절대적으로 만들기에 상층부는 거부 운동을 펼 것입니다.

 

안타깝지만 기독교의 하나님은 오로지 사랑과 평화만이 아닌 질투·파괴·정복·학살·복수·전쟁·가부장· 기복신앙·권위주의·민족·율법 신 등등의 속성 역시 갖고 있고 헬레니즘 문화와 만나 보편주의를 획득하고 그리스도를 매개로 약자의 종교로 거듭난 신약 이전의 구약은 특히 이런 모습을 잘 반영합니다.

 

구약은 신약의 근거이고 흥미로운 기록이자 기독교의 성격을 풍부하게 만드는 원천이지만, 동시에 역사 속에서 기독교가 세속적 성공과 승리를 추구하거나 사제의 권위를 강화하거나 선교를 통해 식민지 수탈을 돕거나 군목 등등의 전쟁사제 동원을 통해 사람을 죽여야 하는 병사들의 양심의 가책을 덜어주는데에 쓰였습니다. 최근엔 미 패권주의나 나찌에게 탄압받은 유대민족이 중동에서 역으로 나찌 짓을 하는 걸 옹호하는데도 쓰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시대착오적인 말을 자주 하는 특정 목사님들 특히 강남을 위시한 대형교회의 주임목사들이 성경의 어떤 구절을 근거로 그 논리를 정당화하는지 유심히 보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