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 사이트에서 논란이 되었길래.....  2006년도에 쓴 글........ 상대방 논자의 닉은 모자이크 처리


1. 드물지 않게 각 대학교 경제학 교수들 홈페이지를 방문한다. 교수들의 강의 내용들을 슬쩍 훔쳐오기 위해서다. 자세한 내용은 필요없다. 단지 강의 내용의 목차만 있으면 충분하다. 공부야 학생이 하는 것이지 교수가 하는 것인가? 물론, 그 목차에 해당하는 내용을 확보한다는 것은 나에게 벅차지만 목차는 공부하는 순서 및 목표를 내게 알려주기 때문에 혼자서 공부하는 것보다 훨씬 더 능률이 오른다.



훔쳐오다가 슬쩍 게시판에 가본다. 교수들과 학생들 간의 대화를 보기 위해서다. 물론, '역시나'. 학점 문의 게시물이 99%. 나머지 0.9%는 학생이 발칙하게도 교수의 부당성에 항의했다가 '공부 이전에 사람이 되어라' '유교 경제학 강의'. 논쟁? 국 끓여 먹으려고 찾아도 거의 없다. 한국 대학 교육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산수를 잘하는 분은, 위에서 내가 거론한 수치를 암산하면서 '99.9%, 그럼 나머지 0.1%는 뭐야?'라는 의문을 떠올리실 것이다.


0.1%.
닳고 닳은 문답이다. 학생이 '좌파경제학'을 설명해달라고 하면 교수는 '그 쪽은 내 분야가 아니다'라는 한결같은 대답이다. 재미있다. 미국에서 '이데올로기' 가득한 경제학을 배우면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면 그 반대쪽 시점의 경제학을 배우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내가 번번히 '한국 경제학 교수 중에 제대로 된 교수 별로 없다'고 떠드는 이유가 그렇다. 그리고 이런 편향이 신자유주의의 본산인 미국보다 더 살벌한 신자유주의가 이 땅에서 펼쳐지고 있는 이유이다. 학자들이 내팽겨친 '좌파 경제학'을 누가 챙기겠는가? 이런 경제학의 편식에 대하여 경상대학교 교수이자 민주노동당 진보정치연구소 소장인 장상환 교수는 이영훈 교수와의 논쟁 중에 이렇게 지적했다.


"
학생들이 한국경제에 자부심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경제교과서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경제가 운영되는 기본 원리와 세계 여러 나라 경제를 폭넓게 이해해서 한국경제의 문제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신고전파의 주류 경제학만을 가르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마르크스, 케인즈 등 다양한 경제학자의 시각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 *1)


2.
사실, 이영훈 교수는 학벌 위주인 대한민국에서 본다면 대단한 사람이다. 미국 및 영국의 유수 대학의 경제학 박사가 전부인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서 겨우 '서울대 경제학 대학원 박사' 학위를 가지고 서울대 경제학 교수 자리를 떡 하니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2)


사실, 논증 과정이나 그 기본이 문제여서 그렇지 이영훈 교수(이하 존칭 생략. 다른 분들의 존칭도 아울러 생략)의 학문은 일관성이 있다. 오히려 이영훈의 학문에 기생하려는 우파들이 문제이고 그런 우파들과 어울리는 이영훈이 문제이다. 사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좌파 이론이다. 그리고 박정희 경제 개발 분석 역시 좌파 이론이다. 박정희 경제 개발이 최근에 장준하에 의하여 좌파 경제 개발 모델로 인식 전환된 것이 널리 알려졌을 뿐이다.


논란은 거기서부터 시작이 된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최근에 불거진 뉴라이트의 419 516 발언은 이영훈 입장에서는 아주 정당한 것이다. 아니, 그렇게 주장되어져야만 맞는다. 특히, 안병직을 구둣발로 짓이긴 419 혁명동지위원회에서도 419 '브루조아 혁명'이라는 주장을 일축하지는 않으니 말이다문제는 뉴라이트가 '보수'라는 집단이며 '좌파'를 경원시하는 집단이라는 것이다이 징글징글한 변태성. 이 징글징글한 사상적 간통이 한국에서는 너무 자주 일어난다. ( *3)


3.
이 글이 OOO님의 '우리의 근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제하의 글에 대한 반론이므로 이렇게 상당히 변죽을 울린 것은 OOO님에게 대단한 결레이다. 그러나 결례를 무릎쓰고 변죽을 장시간 울린 이유는 근대화에 이데올로기라는 양념을 치기 위해서다.


OOO님의 '우리의 근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가의 제하의 글은 비인문학도인 나에게 읽히기 쉽지 않았다. 사회학을 일반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게 하려는 시도를 하시는 OOO님은 당연히 글을 쉽게 쓰셨을 것인데도 비인문학도인 내게는 쉽게 읽혀지지 않는다. 당연히, 사회학에 일천한 탓이 첫번째이고 두번째는 우리나라 공돌이들의 숙명인 철야를 밥먹듯 하여 뇌가 녹슨데서 연유한 탓이리라! 이 공돌이의 비극~


왠만한 글은 주르륵 한번 읽으면 그 개요가 파악이 되는데 OOO님의 글은 여섯번이나 읽어서야 그 개요가 파악이 되었고 백과사전에서 용어를 찾아가면서 네번을 추가로 읽은 다음에야 이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논쟁에 관계없이, 진중권의 글 이후로 인터넷에서 비이과 계열 관련 글 중 완성도가 높은 멋있는 글을 이해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단지, 논쟁을 위해서라면 '이데올로기'를 빼버린 부분을 이야기하면 된다. 내가 이 글 처음에서 장상환 교수의 주장을 인용한 이유이다. 너무 잘써진 글이라 반드시 내 것으로 소화하겠다는 욕심은 채워졌으니 욕심을 더 내서 근대화에 이데올로기라는 양념을 살짝 쳐볼까?


4.
이영훈의 학문은 좌파 계열이다. 좌파가 거론된다는 것은 이데올로기의 개입이 필요한 것이고 그렇다면 그에 맞서는 근대화론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데올로기가 듬뿍 담긴 근대화론은 바로 미국의 경제학자 월트 로스토(본명 : Walt Whitman Rostow)의 근대화론이다. 그럼, 왜 이 이데올로기가 개입된 근대화 이론이 필요했을까? 그 것은 바로 미국의 팽창주의와 맞물려 있다.


정치적 버젼으로 냉전(cold war), 경제학적 버젼으로 '소비자 시장 확충을 위한 땅따먹기' 시대에서 미국과 소련은 치열한 경쟁을 했다. 그런데 소련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진영에 새로 편입된 미개발국가들에게 근대화론을 따로 펼칠 이유가 없었다. 왜냐하면 칼맑스의 '프롤레타리아에 의한 혁명' 자체가 근대화에 진입한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소련 진영에 편입되었다는 것은 '명목상으로'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이며(사실, 지배층의 사상이지만..) 그 것은 근대화의 완성을 의미한다.


반면에 미국의 입장에서는 전통적인, 그러니까 OOO님이 관련 글에서 명시한 근대화론을 적용하기가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미국식 민주주의는 '계몽'이라는 근대화를 위한 사전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스토는 전통적인 근대화 이론을 버리고 전근대사회에서 근대사회라는 축약형 근대화 이론을 펼쳤다. 그 이후에 수많은 학자들에 의하여 논리가 보충되고 완성된 것이다. 국내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이 냉전이 정점에 이르던 1970년대에 대두되기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데올로기가 작동되는 근대화론은 일본의 역사에 적용할 수 있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일본의 근대화 과정은 전통적인 근대화론으로는 이해되지 않는다. 로스토의 이데올로기가 개입된 근대화 이론으로서만 일본 근대화가 설명이 된다.


5.
일본의 근대화는 서구의 그 것과 같이 '계몽의 세월'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가내수공업에서 곧바로 산업사회로의 전환이 이루어진 일본의 근세사를 잠깐 짚어보자.

근세

1) 1568 - 1600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2) 1600 - 1868  
에도시대(또는 도쿠카와 시대라고 불리운다)


근대

1) 1868 - 1912  
메이지 시대
2) 1912 - 1926  
다이쇼 시대
3) 1926 - 1989  
쇼와시대


임진왜란의 주범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의 오랜 전란을 끝내고 통일을 이룬 다음 일본을 제패한 도쿠카와는 에도 시대를 연다. 이 에도 시대는 200년 가까이 일본 역사에서는 거의 유일무이하게 평화의 시대였다. 그리고 저 유명한 미국의 페리 선장의 무력 시위에 의하여 일본은 1853년 개항을 하게 되고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메이지에 의하여 1868년 메이지 유신이 시작이 된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서구 문명과 같은 '계몽의 시간'을 가질 기간이 없었다. 곧바로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갈 수 밖에 없었으며 그러한 일본의 역사는 그들의 식민지 지역에서도 동일하게 적용이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인 '점프'에 의한 기존의 근대화설이 일본에는 적용이 되지 않으며 로스토의 이데올로기가 개입된 근대화 이론이 적용이 되며 한국에서도 그런 역사적 해석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해석은 박정희 경제 개발에서도 동일하며 따라서 국내에서 우파들이 숙명적으로 이런 역사적 괴리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창하고 추종하는 무리들이 박정희의 경제 개발 모델을 추종하는 것이며 그에 역사적 사실이 더해져 한국의 우파=친일파라는 등식이 '팩트화' 된 것이다.


(
덧글 : 내가 과문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 주장은 필자의 고유 주장이며 이 주장에 허구성이 있다면 당연히 깨뜨려져서 휴지통에, 조금이나마 가치가 있다면 이 논리의 완성을 보고 싶다. 그걸OOO님에게 부탁드린다면, 너무 무리한 요구일까? 쓰레기 통에 처넣던 아니면 완성을 하건 간에 말이다.)



*1 : 장상화 교수의 논지를 파일에 첨부한다. 최근에 극우들의 주장이 '박정희 시대에 소득 불균형이 제일 적었다'는 주장을 파해한 논지가 있으니 혹시 극우들이 그런 헛된 주장을 하면 이 논지 중 관련 부분을 인용하면서 좀 가르쳐 주시라.

*2 : 서울대 경제학 교수진에 대하여는 여기를 클릭하시라. 그 화려한 학벌~~~!

http://econ.snu.ac.kr/m5/m5_1.htm


*3 : 이 부분은 주사파의 주장을 인용한 것이다.(변태성 빼고...) 주사파들의 99%는 신앙 생활을 하는 '김일성 신도'지만 1%는 그 지식 수준에 있어 결코 만만치 않다. 그들이 강준만의 '차악론'을 등에 업고, 즉 김일성도 나쁘지만 박정희는 더 나빠'라는 주장을 전제로 하면 논쟁에서 이기기가 쉽지 않다. 그만큼 그들의 지식은 상당한데 그런 부분은 주사파에게 한 수 배웠다. 그리고 기실, 그런 좌파경제학은 주사파나 NL 아니면 딱히 배울만한 곳도 없다. 모두 우편향적이라...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