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정용인 기자님의 일베 기획기사의 취재에 응해 코멘트했던 내용을 보완하여 글로 정리해 봤습니다. 이런 기사를 기획하시고 발언 기회도 주신 정 기자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일베 사이트가 우리에게 던진 숙제>

이념 대립의 근본 속성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좌우 대립에서는 상대 진영에 대한 관용을 찾아보기 어렵다. 분단체제와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배경이 여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러한 폭력성은 분단체제를 유지하는 중심세력인 보수우파 진영이 좀 더 강한 편이다.

일간베스트(이하 일베)의 등장과 세력 확장은 우리나라 보수우파 진영의 이러한 폭력성이 극대화되어 나타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집권 세력이 민주공화국의 합법성 범위 안에서 좌파 진영에 대한 폭력성을 극대화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일베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판단한다.

하지만 일베의 폭력성과 반인륜적인 인종주의 등은 보수우파 진영에게 큰 무기이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입지를 위협하는 부메랑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일베의 공격성과 인종주의는 인터넷 특유의 비현실성과 과장이라는 외피를 쓰고 있다. 즉, 진지하게 현실적인 구상과 실천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운 담론인 것이다. ‘전두환의 유일한 잘못이라면 홍어들을 멸종시키지 않은 것’이라거나 ‘홍어들을 없애는 것이 우리의 역사적 사명’이라는 식의 표현이 대표적이다. 철없는 오타쿠 청소년들의 객기라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이 지속성을 갖고 외연을 확대해가면 문제가 달라진다. 현실성 없는 감정 배설이 아니라 이 나라의 공식 담론구조의 의제로 채택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일부 보수 논객들이 공공연하게 “이 나라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라면 몇 백만 명쯤 죽어도 좋다”거나 “내전이라도 하자”는 발언을 할 수 있는 분위기도 사실 일베의 배경을 업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의사당 안에서 일베에 열중하는 모습도 이러한 위협의 현실성을 보여준다. 사실상 호남 사람들을 전부 죽여 멸종시키자는 주장이 공공연하게 담론 시장에 등장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담론을 발설하는 세력이 아닌, 그 담론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그 담론의 내용을 허구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불과 30여 년 전 광주학살의 악몽이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결코 장난일 수 없다. 아이들에게는 돌 던지기가 그냥 장난일 수 있지만 그것을 얻어맞는 개구리에게는 현실적인 학살의 위협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정말 결정적인 문제는 일베가 공격하는 대상이 결코 ‘개구리’일 수 없다는 점이다. 일베가 집중 공격하는 호남 출신은 전체 국민의 20~25%에 이른다. 관점에 따라서 이 숫자는 더 커질 수 있다. 집권 우파세력의 일부에서는 호남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지게 하자는, 일종의 역사적·사회적 멸종을 시도한다는 얘기도 들리지만 이것은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시도이다. 간단히 말해 미국이 인디안을 멸종시키듯이 호남을 멸종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얘기이다.

일베의 인종주의 담론이 점차 현실성을 갖게 되면 호남 사람들도 자위 수단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 그 결론은 불을 보듯 뻔하다. 만의 하나 일베 등에서 운운하는 것처럼 내전과 유사한 사태로 이어진다면 이 나라의 운명은 파멸로 간다. 중국과 일본 러시아 미국 등이 모두 중요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분단국가에서 그런 사태가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 우리나라 국정 운영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보수우파 진영은 좀더 현실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우리나라 보수우파들이 늘상 자랑하는 경제발전의 성과도 순식간에 모래성처럼 무너지게 될 것이다.

최근 들어 일베의 접속자가 줄어든다고 한다. 그나마 이 나라 우파들이 완전히 이성을 상실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희망적인 신호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극단적인 혐오감 등 정서적 긴장상태를 장기간 유지하기 어렵다. 정서를 유지하는 것도 일종의 노동이고 신체적인 자원을 소모하기 때문이다. 격렬한 감정일수록 지속성을 갖기 어렵다는 얘기이다. 일베의 대표 상품들은 이런 점에서 일시적인 효용을 가질 뿐 스테디셀러가 될 수 없는 구조였다. 

하지만 일베가 만들어낸 파장은 그렇게 쉽게 정리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일베가 만들어낸 담론의 피해자인 호남 출신들 그리고 인종주의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이 문제는 심각한 위협이다. 결코 쉽게 잊혀질 수 없는 사안이라는 얘기이다. 우리나라 보수우파들은 한마디로 말해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숙제를 끄집어냈다. 새끼줄인 줄 알고 밟았더니 모습을 드러낸 것은 꼬리가 밟혀 잔뜩 화가 난 호랑이였다는 괴담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작년 10월에 ‘지역차별 극복을 위한 시민행동’을 만든 것도 일베 등이 줄기차게 쏟아내는 인종주의적 담론에 대한 최소한의 법적 방어 장치를 만들자는 취지였다. 이것은 출발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보수우파들이 권력과 기득권 유지의 가장 손쉬운 방편으로 지역차별 등 인종주의적 수단을 근본적으로 포기하지 않을 경우 방어에 나서는 사람들도 점차 늘어나게 된다. 그리고 그 중에는 자기 방어를 위해 합법성의 틀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생길 수 있다. 이것은 언제든 현실화할 수 있는 심각한 위험이다.

우리나라 보수우파들은 각성해야 한다. 자신들이 지키고자 하는 기득권이 1백이라면 그 수단으로서 일베 같은 인종주의적 무기가 만드는 위협은 1천 또는 1만이 될 수도 있다. 철없는 아이가 위험한 폭탄을 갖고 불장난을 하는 꼴이다. 폭탄이 터지면 아이도 죽고 가족들도 죽고 기껏 지어놓은 집도 가루가 된다.

이것은 일베 같은 사이트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가만히 두고 시간이 가기를 기다린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양심적인 기획을 기초로 장기간에 걸쳐 대규모의 국가 자원을 투입해 해결해야 하는 숙제이다. 그 점에 대한 인식부터 새롭게 해야 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