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칸노르 님, 차칸노르 님의 특정 진영/정파에 대한 편견만 제외한다면, 아랫글 내용의 대체적인 내용은 그른 편이 아닙니다. (물론 몇 가지 사안에 대한 발언은 매우 논란스러운 것이어서 비판 받을 소지가 많다고 봅니다.)

표현의 자유와 정치인 모욕에 대하여 ― 차칸노르

왜냐면, (진영 논리나 정파적 편견을 제외한) 차칸노르 님의 윗글 요지는 “의사 표현의 자유” 혹은 “언론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을 단순 되풀이한 것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차칸노르 님의 윗글은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죠. 중고딩이 학교에서 배우는 몇몇 헌법 조문과 민주주의의 기초적 내용을 그대로 되풀이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따라서 심하게 말하면 하나마나한 말로 시간과 지면을 낭비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뭐 그렇다고 나름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긴 합니다.

그러나 저런 영양가 없는 동어반복말고, 지금 현재 벌어지고 있는 아크로에서의 특정 용어 사용 논란과 관련한 차칸노르 님의 촌평 혹은 타기팅(targeting)은 완전 빗나간 오발탄에 불과하다는 얘깁니다. 왜냐면 논란의 중심부에 있는 러셀 님, 그루터기 님, 피노키오 님, 흐르는 강물 님 등등의 논객분들 중 앞의 두 분은 (“표현의 자유” 혹은 “언론 자유”의 제한/침해 가능성에 대해 엉뚱한 우려를 표하는 듯한 차칸노르 님의 오독과는 달리) 분명히 다음과 같은 취지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① 문제의 “비열한” 용어 사용을 자제하자. 
② 그런 비열한 용어를 쓰고도 아무 문제 없다고 강변하는 것은 파렴치한이나 할 짓이다. (더불어 도덕적, 윤리적, 인륜적으로는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척하면서도 갖은 단서조항을 내세우며 끝내는 비열한 용어 사용 행위를 쉴드치는 것 또한 파렴치한 짓이다). 
③ 그런 파렴치한 짓들은 서로 비판해서 건전한 토론/논쟁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④ 하지만 그런 비열한 용어를 굳이 부득부득 쓰겠다는 사람은 말릴 수도 없고 말리지도 않겠다. 
⑤ 즉 기본적 언론의 자유에 대해서는 뭐라 할 수도 없고, 뭐라 하지도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⑥ 하지만 그런 비열한 용어를 의도적으로 계속 구사함으로써 논쟁 상대방을 비아냥대는 행태는 비판 받아 마땅한 비겁하고 파렴치한 짓이다. 
⑦ 우리가 위와 같은 문제점들을 인식한다면, 양식을 갖춘 인간으로서 우리는 문제의 비열한 용어 사용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대략 러셀 님과 그루터기 님의 주장은 위와 같다는 것입니다. 다소 길게 요약한 것 같은데요. 요컨대, 두 분의 발언에는 기본적인 헌법적 가치(개인적 의사 표현의 자유) 혹은 언론 자유 보장에 대한 규제/제약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즉 두 분의 핵심 요지는 아무리 비판과 논쟁의 장이라지만, 우리가 기본적 인간의 도리는 지켜나가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한국에서 아크로는 찾아보기 어려운 귀중한 토론과 논쟁의 장인데 좋은 방향으로 지켜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허나 이런 제안마저 규제나 제약으로 여긴다면 말리지 않겠다, 비열한 용어를 계속 쓰겠다는 사람은 마음껏 그 자유를 누려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차칸노르 님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니 뭐니, “자유의 보장”이니 뭐니 하면서, 혼자 거창한 내용을 가지고 엉뚱한 데로 빠지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문제의 용어 사용 행위는 거의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표현의 자유 혹은 언론 자유에 해당하므로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는 식으로 (러셀 님과 그루터기 님 주장에 대한) 반대 논리를 전개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한 논점 일탈의 오류이자 오독이고 왜곡이죠. 즉 차칸노르 님 자신의 부당한 논리를 그럴듯하게 꾸며내기 위한 아전인수식 꿰맞추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차칸노르 님의 아전인수식 오독과 왜곡에 대해 논쟁 당사자인 러셀 님은 수차례에 걸친 비판적 부연 설명으로 자신의 진의를 누구나 알아듣기 쉽게 제시하고 거듭거듭 호소하다시피 했죠. 즉 문제의 비열한 용어들은 인간의 양식상 입에 올리기에도 귀로 듣기에도 이건 아니다 싶지 않은가? 허나 굳이 쓰길 고집한다면 아무도 말릴 도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행위를 부끄럽게 여기지 못하고 오히려 도덕적/윤리적/인륜적으로 당당한 것처럼 강변하는 짓은 인간의 탈을 쓰고 할 짓이 전혀 아니지 않겠는가. 대략 이런 것이 러셀 님의 전언이고 진의라는 것이죠. 하지만 차칸노르 님은 쇠귀에 경 읽기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집요하고도 완고하게 뜬금없는 표현의 자유니 언론 자유 수호니 하는 엉뚱타령만 계속 읊어댈 뿐이라는 겁니다. 실로 쓴웃음을 웃지 않을 수 없는 지독한 부조리극의 한 장면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차칸노르 님의 윗글 논리 전개에서 더 나쁜 점은 오독과 왜곡 위에 “로맨스”니 “불륜”이니 운운하면서 불순하기까지 한 진영 논리와 정파적 편견까지 덧칠해 놓았다는 점입니다. 당사자들의 본의와 진실을 왜곡하는 차칸노르 님의 그러한 정치적 덧칠 행위는, 그것이 의도적이든 아니든, 혹은 단순한 독해 오류든 아니든, 닝구 진영(유사 닝구pseudo-runnings를 포함한 진영)과 친노 진영의 극렬한 반목과 갈등을 부추기는 듯한 이간질 행위로 해석될 수도 있기에, 발언 당사자 차칸노르 님뿐만 아니라 독자분들까지 특히 주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차칸노르 님의 발언에 주의해온 분들이라면, 아무도 차칸노르 님 진영이 닝구 진영에 정치적으로 호의적인 진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차칸노르 님은 대부분의 닝구 진영 논객들과 마찬가지로 친노 진영에 극렬한 증오를 표출해왔죠. 즉 두 진영과는 구별되는 일종의 제3자적 정체성을 노출해온 차칸노르 님이 닝구 진영과 친노 진영의 싸움판에 뛰어들어, 위 논란의 핵심을 오독 혹은 왜곡한 상태에서 괴이쩍은 훈수를 두고 있는 형국이란 얘깁니다. 여기서 차칸노르 님의 제3자적 정체성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독자분들께서 충분히 짐작하시리라 봅니다. 즉 차칸노르 님은 사실 왜곡(혹은 오독)과 더불어 의혹을 살 만한 경솔한 정치 행위를 노정했다는 것입니다.

사족으로 덧붙인다면, 러셀 님과 그루터기 님의 (일부) 주장에 내가 동의한다고 해서, 그 문제 제기 방법론까지 동의한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특히 그루터기 님은 어법과 문제 제기 방법에서 심각한 잘못을 저질렀다고 판단합니다. 이 점은 비판합니다. 그러나 위에 요약한 핵심적 주장 내용은 적극 동의하고 지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논객분들의 진영과 정파, 논제의 유형과 종류를 가리지 않고 최대한 객관적/중립적/합리적/이성적으로 공정하게 대하고 대화하겠다는 것이 내 기본 철학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길이 아니다” 혹은 하늘이 무너져도 “이건 아니다” 싶으면 강력 비판을 하거나 아예 말 섞는 것 자체를 끊기도 합니다...

요컨대 차칸노르 님은, 첫째 지난번 자유주의 경제 체제에 대한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의 도덕철학적/정치철학적 비판 논제를 가지고 디즈레일리 님과 논쟁을 벌일 때 저질렀던 상대방 주장 오독 혹은 왜곡 오류를 이번 특정 용어 사용 논란건에서도 예의 똑같이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둘째, 의심 받을 수도 있는 경솔한 정치 행위, 즉 문제의 양 진영 간 극심한 반목과 갈등을 부추길 수도 있는 경솔하고도 부적절한 정치적 발언을 예의 오독과 왜곡에 기반해 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