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 아크로를 위하여 선데이서울을 능가하는 새끈한 이야기로 주말을 시작해볼까요?


오입(誤入)과 불륜(不倫)은 남녀 간의 부적절한 관계를 의미하지만 불륜이 성평등의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면 오입은 다분히 마초적인 관점에서 표현된 단어이죠. 왜냐하면 네이버 사전에 의하면 오입과 불륜은 각각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있으니까요.


오입(誤入) : 아내가 아닌 여자와 성관계를 가지는 일
불륜(불륜) :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서 벗어난 데가 있음


그러면 남편이 아닌 남자와 성관계를 가지는 일은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요? 사사오입은 분명히 아니겠고.... 피오입(被誤入)? 

그러나 '피'는 수동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데 기술하려는 사건은 여성이 주도적으로 일으킨 것이 확실해 보이니 피오입이라는 표현도 적당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40대 중반의 여성이 20대 초반의 남성을 꼬셔 성관계를 가지고 현금 6백만원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뭐, 정확한 한자는 한자의 달인인 자연님이 댓글로 달아주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고..... 편의상 '오입사건'으로 명명, 사건 개요를 설명드리겠습니다.

 
이 오입사건의 결과, 이명박은 현대건설의 사장이 되었고.......... 그리고 대통령까지 했으니 이 정도면 대한민국 현대사를 바꾼 참 대단히 요란한 오입이라고 해도 무방할겁니다.

 

 
우선, 사건의 개요를 보도한 1975년 2월 6일자 경향신문 기사를 발췌합니다.
입001-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든 오입.png


위 기사를 클릭하면 상기 빨간색 박스처럼 '언론사 요청에 의해 일부 내용이 삭제되었습니다'라고 나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요? 순간, 이명박 정권의 언론통제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상기 기록된 동일일자 동아일보에는 관련기사가 없었습니다. 삭제되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역시, 이명박 정권의 언론통제의 결과인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언제일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과연 언제.......... 누구에 의하여 한 언론사에서는 해당 인물의 실명을 모자이크 처리하고 다른 언론사에서는 해당 기사를 아예 없앴을까요?

 
우선 이해를 돕기 위하여 사건의 전후를 동블로그에서 발췌 인용합니다.
가장 궁금한 건 당시 사장이 누구일까 란 것이었다. 1975년 현대건설 사장이라면 정주영이 아닐까 싶어 찾아봤더니, 그건 아니고 금 이명박 대통령은 76년인가 77년에 현대건설 사장이 되었고 해서 75년에 현대건설 사장에 대한 기사를 찾아보니, 국내사장으로 조성근씨라는 인물이 보인다.(이후 인용자 추가 : 그리고 그 사건으로 여성은 자살을 했고 태진아는 미국으로 도피하였으며 이명박이 사장이 되었다)

 
저 블로그의 글은 2012년 6월 1일 작성된 글입니다. 그렇다면 경향신문과 동아일보의 기사관련 수정 및 삭제는 2012년 6월 1일 이후에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의 사건이 떠올려집니다. 바로 이 사건이 인구에 회자된 사건이 된 태진아/이루 부자와 작사가 최희진씨 간의 공방(이하 태-최 공방)입니다. 그 공방이 있으면서 이 사건이 인터넷에서 널리 퍼지게 된 것입니다.

 
태-최 공방에서 이 사건이 어떻게 거론되었는지를 인용합니다.
최씨가 “자신을 한번만 더 ‘정신적 곤란’ 등의 표현으로 매도하면 조성현 ‘성적변태’로 초강수를 두겠다”고 태진아 측에 경고한 상태기 때문.
 
이번 사건이 터지면서 인터넷에서는 태진아의 과거 사건까지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는 상태다. 당시 21세이던 태진아와 47세 김모씨와의
간통사건이 다시 들춰졌기 때문. 1975년 2월 경향신문 따르면 김씨와 태진아씨는 20차례 불륜 관계를 맺고 현금 6백만원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출처는 여기를 클릭)

이 보도는 2010년 9월 7일에 된 것입니다. 그런데 기사 중 '1975년 2월 경향신문 따르면'이라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를 쓴 기자가 경향신문 기사를 직접 보았을까요? 보았다면 제가 최초에 빨간색 박스한 부분을 역시 보았을까요?


사건을 시간별로 나열해 보겠습니다.

 
2010년 9월 7일 태-최 공방에서 1975년 사건이 인구에 회자
2012년 6월 1일 관련 블로그에서는 1975년 사건 기사가 모자이크되었다는 언급이 없었음
2014년 오늘(1월 9일) 1975년 사건 기사가 모자이크 되어 있음

 
물론, 저의 과민반응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2013년 2월, 그러니까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작성된 블로그 글에는 '기사의 인용과 함께' 태진아의 당시 사진이 올라와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요?
 

 
국정원이 특정 후보에 영향을 미칠 사건의 기사를 모자이크 내지는 삭제하라고 지시를 내렸던걸까요? 2012년 6월에 작성된 블로그 글의 주인공은 모자이크를 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해당 블로그의 관련 글에는 동아일보의 기사 캡쳐 그림도 올라와 있었고 화면에 보이지 않는 이뉴는 그 블로그의 원소스인 다른 블로그가 비회원은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과연, 어떤 이유 때문에 해당 기사가 모자이크 처리되었을까요? 2010년에 관련 사건이 인구에 회자되자 사건 당사자의 가족이 언론사에 요청하여 이루어진 것일까요? 2012년 6월 1일 작성된 블로그 글의 원소스는 2012년 6월 1일 이전에 작성된 것이고 2012년 6월 1일 해당 블로그 글에 의하면 멀쩡히 존재하던 기사였습니다.


도대체 2012년 6월 이후에 무슨 일이 발생한 것일까요? 제 추적과정에 문제가 있거나 빠진 부분이 있나요? 무엇보다도 왜 관련 기사가 모자이크 처리되었고 삭제되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해당 가족이 요청했다? 2010년에 인구에 회자되었는데 2년 후인 2012년에?



확실한 것은, 이명박은 천운을 타고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명박을 국민개갞끼라고 비난하지만 천운 타고난 것은 솔직히 부럽습니다. 오입까지 그를 도우니 말입니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