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초적인 푸틴을 조롱하고 푸틴에게 조종받는 메드베데프를 조롱하기 위해 러시아의 한 화가가 그 둘을 크로스드레싱시킨 그림을 그렸었다. 자유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정치인에 대한 모욕, 조롱은 표현의 자유로 기본적 인권으로서 보장된다. 러시아같은 나라는 당연히 압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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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라는 사이트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노알라'와 '운지'가 논란이 됐다. 친노 깨어있는 시민들은 '쥐박이'는 괜찮지만 '노알라'는 안된다는자기모순적인 태도를 보였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자유를 내가 탄압하면 착한 탄압, 남이 탄압하면 나쁜 탄압"  

* 참고 : ‘쥐박이’라는 단어까지 금지어로 설정한 건 좀 지나친 것 같습니다.-노하우 운영자 (http://bit.ly/19MEjYx)

영국의 유명한 팝 가수 조지 마이클은 슛 더 독 (Shoot the dog)이라는 싱글에서 하우디 푸들(howdy poodle)이라는 노래를 발표하면서 조지 워커 부시를 맹종하는 블레어 총리를 푸들에 비유하고 마이클이 총리 부인을 유혹해서 간음하는 내용을 담았다.  당연히 아무 문제 없다.   

정치인이 살아있건 죽어있건 상관 없이 시민들은 정치인을 모욕할 자유가 있다. 노직류의 자유주의를 받아들인 대처 전 수상이 사망하자 영국의 사민주의자들은 "개잡년 잘 죽었다"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대처를 부관참시 하는 화형식을 대대적으로 거행했다. 아무 문제 없다.

친노 깨시들은 '노알라'와 '운지'라는 표현에 분노하는 동조자들을 보면서 "아직 우리 사회가 건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하지만 수구꼴통보다 못한 친노 깨시들의 착각이다. 세상이 어떻게 진보해왔는지 표현의 자유를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흘렸는지 그들은 모른다.

자유주의 국가에서 정치적 입장이 다른 이들의 정치인이나 정치집단에 대한 정치적 조롱이나 모욕은 감수해야한다. 이것은 시민인 일 개인에 대한 조롱, 모욕이나 토론장에서의 구체적인 토론 상대방에 대한 조롱, 모욕과는 다르게 평가된다. 사회적 명예와 정치적 명예는 구별된다.    

표현의 자유 중에서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가장 고도로 보호된다. 일반인에 대한 모욕은 자연인 그 자체에 대한 모욕이지만 정치인에 대한 모욕은 정치인의 자연인 그 자체가 아니라 정치인의 정치적 입장, 정견에 대한 거부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르게 평가된다. 

다만, 표현의 자유는 무제한이 아닌 것인데 '펭귄'이나 '쩔뚜기' 같은 표현은 장애인을 차별하는 가치관이 담겨있고, '홍어'라는 표현은 인종차별적 가치관이 담겨있고, '김치년'은 성차별적 가치관이 담겨 있어서  그러한 정치적 표현들은 표현의 자유의 보장 범위 밖이다.

'운지'라는 표현은 '펭귄' '쩔뚜기' '홍어' '김치년' 등의 표현과는 다르다. '펭귄' '쩔뚜기' '홍어' '김치년' 등은 헌법에 반하는 가치가 들어있다. '운지'는 고인에 대해서는 과오를 덮어주는 관습에 반하는 것이어서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반헌법적인 것이 아니라고 보기에 허용된다고 본다.        

'노알라'는 친노 지지자들의 광신적이고 배타적이며 자기당착적인 태도를 비판하기 위해서 노무현을 '알라'에 비유해서 알라를 코알라에 환유시켜 '노알라'로 표현한 것이다. 여기에는 반헌법적 가치관이 없다.  '쥐박이'와 '닭근혜'가 허용돼야 하듯이 '노알라'도 당연히 허용돼야 한다. 

개인적으로 문재인을 '문제인'으로, 깨어있는  시민을 '몽유병 환자'라고 지칭하며 특정 정치인과 정치집단을  모욕한 기억이 있는데 물론 그런 정치적 표현으로서 특정 정치인이나 정치집단에 대한 모욕을 할 때 그 집단으로 부터 구별의 불이익을 받는 것은 감수하면서 모욕했다. 

정치적 입장이 다른 이들의 정치인, 정치집단에 대한 정치적 조롱이나 모욕에 대해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이라면 당연히 감수해야한다. 그런 조롱이나 모욕을 감수하지 못하고 그 표현에 분노한다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부끄러운줄 알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