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쓴 시간: 09 8 9 12 17 49 ~ 09 8 10 0 12 18

 


(
루소 참회록
집문당 교양선6 / 박순만 옮김 / 집문당)


 

UFC101게임을 보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루소가 만약 이런 게임을 보고 있다면 어떤 평가를 할까? 너무 야만적인 폭력이라고 혹독하게 비난할 것이리라. 단 한권의 책을 읽고 루소를 좋아했다. 한 권의 책으로 사람의 마음을 잡기는 어려운 법인데, 그는 에밀로 나를 사로잡아 버렸다.

 

어려서 우연히 에밀을 들었다. 친구 형이 에밀을 읽고 크게 감동했다는 얘기를 듣고서야 에밀이란 책의 존재를 알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에밀을 읽었다. 참으로 감동했다. 그때부터 루소를 존경하게 되었는데, 그의 삶이 좀 궁금해졌다. 과연 그는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알고 싶었다. 하지만 또 많은 세월이 흘렀다. 내가 조금 더 깊이 그에 대해서 알게 되기까지는∙∙∙.

 

책은 한 사람의 인생을 뒤흔들어 놓을 수 있다. 어떤 때는 한 권 책이 영혼을 흔들어 놓을 수 있고, 다른 경우에는 여러 권의 책이 서서히 어떤 사람의 정신세계에 침투하여 삶을 바꿔 놓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모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책이 인생 시기마다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이렇게 좋은 책을 읽는데 시간을 내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나만해도 오늘처럼 종합격투기 게임이 있는 날은 소중한 시간을 뺏기고 만다. 인생이 결국 시간의 연속이라고 본다면, 시간시간을 가치있게 잘 보내는 것이 인생을 의미있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듯 소중한 시간을 잠시 동안의 쾌락이나 즐거움을 쫓아 낭비하고 있으니, 한심하다 아니 할 수 없다. 더욱이 해야 할 많은 일을 산적된 상황에서는, 안타까운 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누구에게나 이런 허튼 점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에 있어서 재미와 즐거움도 당연한 권리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을 지배한 사나이 류비세프도 철저하게 시간 관리를 해서는 콘서트 관람이나 영화 감상도 자주 즐겼으니깐 말이다.

 

대학교 1학년 때 친구의 집에서 빌려 읽은 한 권의 책은 내 영혼을 흔들어 놓았다. 게다가 그 책을 완전히 이해하고 소화했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것도 상당히 수준 높은 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말이다. 자기로부터의 혁명, 그 책은 어린 내 정신을 뒤흔들어 놓았다. 내가 직접 그 책을 쓴 것은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느꼈다. 나는 그 때 크리슈나무르티의 메신저였으며 화신이었다. 그 여운은 친구를 만나서도 이어졌다. 겨울에 고향의 친구를 찾아가 밤새워가며 이야기를 했다. 지금껏 그 책만큼 내 영혼을 흔들어 놓은 책은 없는 것 같다. 그 때도 지금처럼 독후감을 썼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때의 감흥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면 지금처럼 추측을 하지 않아도 될 텐데∙∙∙. 인생이 변화함에 따라 책에 의한 큰 떨림도 어느덧 세월에 밀려 지나가고 마는 것 같다. 그렇게 크게 감동하였다면 아직도 뇌리에 명확하게 남아 있어야 할 텐데 지금은 아무런 기억도 남아 있지 않다. 기억을 남겨두는 일은 아무리 시간이 금 같다고 해도 가치 있는 일임에 틀림이 없다.

 

나에겐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 진리를 밝혀 기록으로 남겨 두는 일도 해야 하고, 자신도 깨달음의 길을 걸어 진리의 빛이 되어야만 한다. 또한 사람을 살리고, 사랑을 하는 일도 해야만 한다. 그렇기에 하루 해는 너무 짧다. 게다가 좋은 세월이 인류를 마냥 기다리고만 있지는 않다. 그러니 어찌 허송세월 할 수 있겠는가. 촌각도 허투루 보낼 수는 없다. 그런데도 재미와 즐거움을 맛보느냐 시간을 흘러보내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하다 할 수 있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정신 통일을 하여 모든 일을 이뤄야겠다.

 

루소의 에밀을 읽고, 어떻게 이렇게 훌륭한 책을 쓸 수 있을까 감탄을 했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그의 외침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모든 위대한 사상이 그 책에 다 들어 있다. 어쩌면 이상 세계를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이상을 몽상이라 비웃을지 모른다. 하지만 인간이 꿈을 꾸지 않는 한 어떤 일도 이루지 못하다는 것을 안다면, 이상 세계를 꿈꾸는 것은 비록 이루지 못할지라도 아름다운 일이다. 위대한 사상을 그리려면 인생에서 많은 고통을 겪고 어려운 삶을 살아보아야만 한다. 그래야만 그 반성으로서 혹은 통찰로서 그런 고귀한 사상을 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배경 없이는 좋은 사상 품을 수도 좋은 책을 쓸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루소에 대하여 좋은 감정을 갖고 있었다.

 

우연히 책장의 철학코너를 살펴보다가 얼마 전에 루소의 참회록을 잡고 읽기 시작했다. 눈에 띄여 갑자기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나게 된 것이다. 집에서 잠자기 전에 잠깐잠깐 읽었는데, 시간이 나면 자연스럽게 책에 손이 갔다. 그만큼 그의 삶이 궁금했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비교적 빨리 읽었다. 책을 읽고나서 그에 대해서 꽤 많이 이해할 수 있었다.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가감없이 드러내려고 했다는 점에서, 한 인간에 대해서 더 진실 되게 알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고나서, 책에서 밝힌 바와 같은 어려운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에밀과 같은 훌륭한 책을 쓸 수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교육에 관한 책을 쓴다고 해도 루소의 에밀에 다름이 없을 것이다. 조금 더 차원 높은 교육을 한다면 인간의 모든 능력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이다. 인간은 본래 위대한 능력,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갖고 태어난다. 그런 뛰어난 존재가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을 할 것이다. 나아가 우리민족 고유의 전통 사상을 고취시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서양 사상에 매몰되고 물질주의에 전도되어서 그렇지, 우리 민족의 위대한 정신세계는 한없이 높다 할 수 있다. 그것을 찾는 길이야말로 참된 인간이 되는 길이다.

 

사실 지성과 식견을 갖춘 인물로 치자면 어디 동양이라고 루소만한 인물이 없었겠는가만은 당대의 후진적인 사회.문화적 환경하에서도 인간성을 최대한 발현할 수 있는 이상적인 인간을 목표로 하였다는 측면에서 그가 가르치는 에밀은 무척 앞으로 더 오랫동안 인류의 역사가 발전적으로 지속된다고 하더라도 - 고귀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점에서 그의 저작은 참으로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삶을 장점뿐만 아니라 단점까지도 솔직하게 밝힌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하기 어려운 일이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만천하 공개하는 것이라면 좋은 점만을 드러내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루소는 자신의 인생을 자부심을 갖고 공개하고 있다.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던 행위까지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러기에 한 인간에 대해 보다 깊이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도 나중에 언제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드러내 고백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그럴 작정이다. 그러려면 남은 인생이라도 떳떳하고 아름답게 살아야 할 것이리라.

 

, 이미 오래 전에 고인이 된 루소의 삶 속으로 여향을 떠나보자. 그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섰으며,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는지를 알아보자. 또 그 많은 책들은 어떤 계기로 쓰게 되었는지 알아보자. 그리하여 한 인간에 대하여 더 잘 알아보고, 또 그러한 배경하에서 그의 책들을 다시 한번 평가해 보자. 루소의 참회록을 읽어보자.

 

(루소 참회록 집문당 교양선6 / 박순만 옮김 / 집문당)

 

<책 읽은 시간>

: 2009. 7. 1. (확실치 않음) ~

: 2009. 8. 2. ()

 

<책 읽은 계기>

우연히, 갑자기 읽게 되었다. 참 잘 읽었다.

 

이 책은 루소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책이다. 루소 본인이 자신의 삶을 가감 없이 기술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려준다고 할 수 있다. 자서전이라고 해도 우리는 작자에 관하여 조금만 알 수 있을 뿐이다. 누구나 좋은 점만을 밝히기를 원하기 때문에 미덕만을 알게 될 것이다. 따라서 자서전에서 솔직한 삶을 기대할 수는 없다.

 

어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먼저는 그 시대적 배경 속으로 들어가야 함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저자 혹은 주인공의 입장이 되어서 살아야 한다. 그래야 책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루소가 되어 살아보려고 했다.

 

루소가 살던 시대는 오늘날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때의 환경과 조건 속에서 살았더라면 나는 어떻게 살았을까를 상상해보니, 그처럼 잘 살 수 없었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어려서 잠깐 동안의 삶을 예외로 한다면, 그의 삶은 고난과 투쟁의 연속이었다고 할 수 있다. 평생 동안 건강이 나빴으며, 생계 걱정을 해야 했고, 또 종교 선택의 문제로 고민을 해야만 했다. 끝내 에밀을 발표한 후에는 박해를 받아 도피를 하고 망명을 해야만 했다. 에밀에서 루소는 자연신관을 제안한다. 기독교적 종교를 배척하는 것이다. 그러니 당대의 박해를 받았음은 쉽게 추측된다. 루소는 평생에 걸쳐 많은 저작을 썼는데 다 성공적이었다고 했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이야기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특히 그의 작가적 소신에 감동했다. 또 그러한 신념을 견지하기 위해서 박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편집없이 에밀을 출판했다는 점에서 존경해 마지 않는다. 그의 주장을 들어보자.

 

하기야 내게도 마음만 있었다면 돈벌이 방면에 뛰어들 수도 있었고, 악보를 베끼기 위해 쥐는 펜을 저술에만 열중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미 내가 얻은 명성을 유지할 자신이 있었으므로 흥미거리를 쓰려는 마음만 먹었다면, 저술로서 여유있는 생활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빵을 위해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의 천분과 재능을 죽이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272p)

 

그는 인기에 영합하여 돈을 벌려고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그런 글을 쓸 수 있었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고, 떳떳하게 글을 쓰기 위해서 생계를 위한 악보 베끼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던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오늘날의 돈을 벌기 위한 글쓰기를 반성해볼 만한 의미있는 고귀한 행동이 아닐까 싶다. 책을 내 본 입장으로써 생각해보아도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사명감을 갖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인 것이다. 진리를 추구하든지 인간성을 고양하든지 하는 가치 있는 목적을 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 그의 이야기를 더 들어 보자.

 

돈을 벌려고 드는 붓끝에서는 힘차고 위대한 작품이 나올 리가 없다. 필요와 욕망은 훌륭하기보다 빨리 되는 것을 강요하는 것이다. 성공에 대한 갈망은 나로 하여금 음모에 빠지지 않더라도 대중에게 영합하는 저속한 작품을 쓰게 할 것이다. 만일 그렇게 했다고 하면, 탁월한 작가가 될 수 있는 나는 기껏해야 3류 작가밖에는 안 됐을 것이니, 이것은 안 될 말이다. 살기 위해 고상한 사색을 한다 함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위대한 진리를 말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가지려면 먼저 성공을 도외시하여야 한다. (272p)

 

오늘날 누가 그의 주장에 흔쾌히 동의를 하겠는가. 더욱이 자본주의가 팽배해질 대로 팽배해진 상황에서 돈을 멀리하고 진실과 가치를 추구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차피 한번 주어진 인생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고, 과연 어떻게 책을 써야 하는가에 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정말 루소의 신념, 작가관을 따라야겠다고 각오를 했다.

 

나는 오로지 인류의 행복을 위해 말했다는 확신만 가지고 저술에 임했던 것이다. 만일 이러한 나의 저서가 호평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나의 저서를 토해 어떤 이득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의 손실일 뿐이다. 나는 생계를 유지해 나가기 위해 그들의 찬사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설사 나의 저서가 팔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의 직업은 먹고 살기에 위협을 받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내 저서는 잘 팔렸던 것이다. (272~273p)

 

얼마나 역설적인 이야기인가. 인기를 바라지 않고 돈을 바라지 않고 소신껏 썼기 때문에 잘 팔렸다니. 과연 오늘날에도 그와 같은 생각을 갖고 저술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나 할까? 아무리 없다고 해도 희망을 가져도 좋다. 여기 그 한 사람은 있으니깐 말이다. 나도 앞으로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만 책을 쓸 것이다. 행복, 건강, 사랑, 풍요에 관한 책을 쓰는 데 있어서는 사람들을 그러한 삶으로 이끌기 위해서 인기나 돈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작가적 신념이 있었기 때문에 분명 박해를 받을 줄 알고도 위대한 인간상을 가진 에밀을 그리려고 했고, 쓴 바를 그대로 출판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 나니 그가 더욱 존경스러워 보인다. 과연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자문도 해 본다.

 

참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이런 위대한 사상을 잉태했다는 것이다. 건강이 극히 나빴지만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고, 글쓰기를 단념하지 않았던 것이다. 질병을 앓으면서 치료를 해 본 경험이 건강에 대해서도 제대로 판단할 힘을 주었다. 누구나 건강에 대해서 자신을 할 수는 없겠지만, 의사나 전문가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살로몽 씨도 자기 약으로는 내 병을 고칠 수 없음을 알고 그 때부터 그는 쓴 약을 억지로 나에게 권하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까다로운 의사의 지시를 다 걷어치우고, 다시 술을 마시고 몸이 허락하는 한도로 건강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외출도 하고 친구도 방문했으며, 부샤아르라는 서점에도 들렀다. 학자들이 잘 가는 서점이었다.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던 봄이 가까워짐에 나는 샤르메트에 가서 읽을 책을 몇 권 준비하였다.

나는 이 행운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행운을 마음껏 누렸다. 새싹이 돋아나옴을 보았을 때의 나의 기쁨은 이루 형언할 수 없었다. 눈이 채 녹기도 전에 우리들은 그 감옥 같은 집을 버리고 꾀꼬리 첫 울음소리를 듣기 위하여 샤르메트로 이사를 했다. 그 때 이미 나는 이제는 죽지 않으리라 느껴졌다. (180p)

 

자신 뿐만 아니라 가까운 지인의 죽음에 대해서도 몹시나 안타까워했다. 건강에 관한 그의 지혜를 보여주는 점이라 할 수 있다.

 

의사의 말만 믿고 모친은 가엾은 아이에게 음식은 주지 않고 약만 써서 굶어죽은 것이다. 아마, 내 말을 들어주었던들 할아버지나 손자는 아직 살아있으련만 의사에 대한 맹신이 손자와 할아버지를 무덤으로 보냈다. 륙상부르 원수는 의사만을 믿어 중풍증으로 생기는 엄지발가락의 통증을 진통제를 발라서 통증만 멎게 하는 치료법을 쓰다가 드디어 자신의 과오로 죽고 말았다. (316p)

 

내가 에밀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점이 어떻게 공부했을까 하는 것이었다. 역시 루소는 처음부터 학자의 길을 걸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본인 스스로 공부하고 사색하여 많은 책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흥미롭게도 루소는 음악에도 조예가 무척 깊어서 음악 관련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그가 어떻게 공부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면 공부와 학문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25~28) 이미 음악을 가르치던 여제자들과의 인연이 끊어진 지 오래되었고, 오락이나 사교계의 취미도 잃고 말았으므로, 외출을 아니하던 나로서는 엄마와 살로몽 씨 이외에는 아무도 만나는 사람이라곤 없었다. 살로몽 씨는 얼마 전부터 엄마와 나의 주치의였는데, 성실하고 재치있는 사람이었다. 데카르트 철학의 신봉자였던 그는 우주의 법칙에 대해서 꽤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의 유쾌하고 유익한 이야기는 그의 처방보다도 더욱 내 병에 이로운 것 같았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다시없이 즐거웠다. 그의 옆에서 이야기를 듣노라면 앞으로 내가 배워야 할 심오한 지식을 미리 맛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을 읽기 시작하였다. 과학과 종교를 아울러 쓴 책이 나에게는 가장 좋았다. 특히 오라토리오 회나 르와알 수도원에서 나온 책들이 그러했다. 나는 이 책들을 탐독했다. 이 때 내 손에는 라미 신부의 <과학 강화>라는 책이 들어왔다. 이 책은 과학에 대한 입문서였다. 나는 이 것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읽었다. 그리하여 나는 이 책을 나의 지침으로 삼으려 결심했다. 결국 나는 몸이 그런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그런 상태였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이 조금씩 연구에 이끌려가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그날 그날을 내 생애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여기면서도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열심히 공부하였다. 사람들은 내 몸에 해롭다고 말렸지만, 오히려 이것이 내 건강에도 더 좋았었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정신적인 면에서뿐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더 좋았다고 생각된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열중하던 이 공부가 몹시 나의 흥미를 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병에 대한 생각을 잊을 수가 있었고 고통도 한결 덜한 것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병이나 고통이 나아진 것은 아니었음은 물론이다. 다만 심한 고통을 덜한 것으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차츰 쇠약과 불면과 활동에서 벗어나 조용히 사색하는 습관이 붙게 되었다. 그리하여 내 몸이 서서히 계속적으로 쇠약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단정하고 그것을 막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죽음뿐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런 생각은 생명에 대한 쓸데없는 걱정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켜주었을 뿐 아니라, 억지로 따르던 그 귀찮은 치료에서도 벗어나게 하였다. (178 ~ 180p)

 

사즉생이 아닌가. 죽기로 작정을 하면 산다는 진리가 이 경우에도 적용되었으니 참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독서는 어떻게 하였는지 보자.

 

앞에서 말했지만 나는 책을 몇권 준비해 가지고 왔었다. 나는 그 책들을 읽기는 하였지만, 나에게 이롭기보다는 너무 마구 읽었기 때문에 오히려 피로를 느끼곤 하였다. 그 때만 해도 나는 한권의 책을 보람있게 읽으려면, 이에 대한 모든 예비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그릇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실은 저자 자신들도 대체로 자기 저서에 나오는 모든 지식을 다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서는 다른 책의 내용을 인용한다는 것을 미쳐 모르고 있었다. 이렇게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책을 읽어나가다가 막히게 되면, 이 책 저 책을 마구 뒤적거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내가 연구하려는 책은 미처 10페이지도 읽어나가지 못했는데도 서고에 있는 책을 모조리 몇 차례씩이나 뒤지는 형편이었다.

이런 터무니없는 독서방법으로 인하여 나는 많은 시간을 낭비하게 되었다. 나중에는 아무것도 볼 수도 이해할 수도 없을 정도로 머리가 혼동되고 말았다. 드디어 이런 식으로 하다가는 끝없는 미궁에 빠져 버리게 될 것임을 깨달았으므로 그 직전에 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내게는 유리했던 사소한 일들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독자 여러분을 따분하게 하겠으므로 삼가기로 하겠다. 그러나 나는 되도록 흥미와 효과를 동시에 얻으려고 생활계획을 이리저리 짜던 일을 몹시 즐겁게 회상한다. 그래서 나는 속세를 등지고 항상 병에 시달리던 이 시절이 내 인생을 통하여 가장 적적하지 않고 싫증나지 않던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181p)   

 

어려운 책을 읽을 때 누구나 겪었을 법한 문제로 고민을 했다니 재미있지 않은가. 이런 글을 대하면,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성경을 읽어보려고 하다가 신약의 마태오복음서 예수그리스도의 족보를 읽다가는 그만두고 그만두고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냥 그 부분을 건너뛰고 읽어도 좋을 텐데, 누가 누구를 낳았다는 이야기가 지루해서 고 몇 장을 못 넘기고 읽다가 포기하곤 했었다. 이런 글을 먼저 읽었더라면 분명 더 쉽게 독서습관을 들일 수 있었을 텐데∙∙∙.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느냐고 물으면 루소는 소질에 잘 맞는 일을 찾으라고 조언한다. 우리의 직업 교육이 지향해야 할 원칙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일 게다. 그런데 우리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을 찾으려고 한다. 루소가 글을 쓰게 되었지만 그것은 그에게 잘 맞는 소질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을 발견한 기회를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3개월 동안은 내가 타고난 소질을 검토하게 되었다. 1년 중 가장 아름다운 계절에, 황홀하게 꾸며진 고장에서 인생의 매력을 한껏 맛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완전한 결합을 하나의 사회라고 할 수 있다면, 그 사회의 매력도 충분히 향락하였고, 또 내가 배우려고 하는 학술에 대한 즐거움도 마음껏 누렸다. 사실 나는 이때 이미 학문을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했던 것이다. (181~182p)

 

지식은 어떻게 쌓아나가고, 학문의 길을 어떻게 걸어나가면 좋을까. 자신만의 길을 찾아내려면 먼저 배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한두 시간 한담을 하고 나면, 나는 점심 때까지 책을 읽었다.

 

나는 우선 철학 책부터 읽기 시작했다. 폴 르와이얄의 논리학, 존로크의 오성론, 말브랑슈, 라이프니츠, 데카르트의 책들을 읽었다. 얼마 안 가서 나는 저자들이 서로 영원히 반대의 위치에 있음을 깨닫고, 그것을 일치시켜 보려는 꿈 같은 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 때문에 나는 많이 피로하였고, 또 많은 시간을 낭비하였다. 드디어 이 방법을 중단한 나는 한결 더 나은 다른 방법을 채택했다.

 

나는 분명히 연구에 대한 능력은 타고나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웬만큼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이 방법의 덕분이었다. 그것은 즉, 한 저자의 책을 읽을 때는 전적으로 그의 사상을 지지하여, 여기에 나 또는 다른 저자의 사상을 섞거나, 또는 논쟁을 벌이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법칙이었다. 물론 이 방법에도 결점이 없는 바는 아니었지만, 그러나 내 공부에는 많은 발전을 가져왔다. 나는 오로지 다른 사람의 사상을 연구하였을 뿐 나의 고찰이나 추론(推論)을 달지 않고 2년간을 끌고 갔다. 그랬더니 다른 사람의 힘을 빌지 않고도 나 스스로가 고찰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지식을 얻었다고 생각되었다. 여행이나 다른 일 때문에 책을 읽을 수 없을 때에는 나는 이미 읽은 것들을 생각하고, 비교하고, 판단해 보기도 하고, 때로는 스승들을 비판해 보기조차 하였다.

 

철학 다음에는 기하학의 초보를 공부하였다. 애써 되풀이하여 처음부터 새로 시작했었는데도 나의 기억은 박약했기 때문에 다시 초보부터 시작했던 것이다. 나는 라미 신부의 <기하학>을 선택했다. 이 때부터 그는 내가 좋아하는 저자의 한 사람이 되었다. 지금도 그의 책은 가끔 재미있게 읽는다. 그 다음에는 대수 공부를 했다. 이것도 라미 신부의 저서로 시작했다. 좀 발전한 뒤에는 레노 신부의 <계수학>과 그의 <입증해석학>을 공부했지만, 거의 책의 페이지를 뒤져본 데 불과했다.

 

그 다음은 라틴어의 차례였다. 이것은 가장 공부하기 힘든 학과였고, 끝내는 뚜렷한 발전도 보지 못했다. 처음에는 폴 르와이얄의 라틴어 연구법에 따라 공부했지만 별 성과가 없었다. 그 야단스러운 암기법에는 그만 기분이 나지 않아 별로 머리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나는 그 복잡한 문법의 규칙 때문에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 규칙을 외우고 있을 때는 이미 앞의 것들은 깡그리 기억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많은 어학의 지식을 필요로 하는 학문은 기억력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적합한 것이 못 된다. 나는 빈약한 내 기억을 보충하기 위하여, 처음 얼마 동안은 몹시 열성을 기울였지만, 드디어 나는 이 공부를 집어치우지 않을 수가 없었다. (183 ~ 184p)

 

이렇듯 루소는 체계적으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사색을 통하여 지식을 정리하고 종합하여 자신만의 학문의 세계를 만들어 나갔던 것이다. 치열한 공부를 통하여 다방면에 걸쳐 충분한 지식을 쌓아 놓았기에 자신만의 학문의 길을 걸을 수 있었고, 많은 저작물을 쏟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글을 쓰게 된 것은 처음에는 우연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논문에 당선된 것에 의해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점차 좋은 글을 써 나가게 되었던 것이다.

 

(36~43) 하루는 메르큐르 드 프랑스라는 잡지책을 들고 떠났는데, 그 책을 읽으며 걷다가 나는 문득 아카데미에서 모집하는 내년도 현상 논제 학문과 예술의 진보는 도덕을 타락시켰는가, 순화시켰는가?라고 쓴 대목에 시선을 집중하게 되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나는 내 눈 앞에 새로운 세계가 전개됨을 의식하게 되었고, 나는 아주 딴 사람처럼 되어 버렸다. 그 때 받은 또렷한 인상은 지금도 간직하고 있지만, 자세한 것은 말제르브 씨에게 보낸 네 통의 편지 중 한통에 자세히 기록한 후에 깡그리 잊어버리고 말았다. 이 때 일어난 일로서 똑똑히 회상할 수 있는 것은 뱅샌느에 도착하였을 때 헛소리를 할 만큼 흥분해 있었던 사실뿐이다. 디드로는 이것을 알아차렸고, 나는 그에게 그 이유를 말했다.

 나는 떡갈나무 밑에서 연필로 적어 본 <파브리시우스의 변론>이란 짧은 글을 그에게 읽어주었다. 그는 이것을 발전시켜 현상에 응모해보라고 격려해 주었다.

그러나 이 때부터 나는 돌이킬 수 없는 함정에 빠져 들어가 온갖 불행의 씨를 만들었던 것이다. 나의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나의 사상과 일치하면서 높이 고조되었다. 나는 이 논문을 작성하는 데 아주 기묘한 방법을 채택했다. 이러한 방법은 다른 저술을 할 때에도 항용 취했던 방법으로, 잠이 오지 않는 밤을 이용하여 논문 쓰는 데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나는 잠자리에서 눈을 감은 채 명상에 잠기기가 일쑤였으며 몇 번이고 되풀이하면서 문장추고에 온 신경을 쏟았다. 어느 정도 만족할 정도가 되면, 종이 위에 옮길 수 있을 때까지 기억 속에 간직해 두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리에서 일단 일어나면 이 때까지의 머리속에서 정리된 내용은 까맣게 도망가 버리고 말았다. 종이를 대하고 차분히 생각하려 해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장모인 르바쇠에르 부인을 비서로 쓰기로 했다. 전부터 그녀를 남편과 딸과 함께 내 집 근처에서 살게 했었다. 그리하여 내가 다른 하인을 두지 않아도 될 만큼 부인은 아침마다 우리집에 와서는 불을 피워주는 등의 잔일을 돌보아 주었다. 그녀가 오면 나는 지난 밤에 침대에서 생각한 것을 받아 쓰게 했다. 이것은 그 후로도 계속 채택한 방법의 하나였다. 이 덕분으로 나는 건망증의 증세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나는 고심 끝에 완성된 논문을 디드로에게 보였다. 그는 매우 만족해하면서 두어 군데 수정을 요하는 부분을 지적해 주었다. 그런데, 이 논문은 열의와 박력에 차 있었지만 논리정연한 것은 못 되었다. 도대체 내가 쓴 것 중에서 이 문장만큼 추리가 미약하고 해조가 빈약한 것은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글 쓰는 데 천재적인 소질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문장을 잘 쓴다는 것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 원고를 누구에게도 전혀 말하지 않고 발송했다. 다만 그림에게만은 예외로 하고 말이다. 그 이유는 그림이 그가 프리에즈 백작으로 들어간 후로부터 나와는 매우 절친한 사이가 되어 항상 그림자처럼 붙어 지냈기 때문이다. (255 ~ 257p)

 이듬해 1750, 현상 논문 건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그것이 디종에서 당선되었음을 알았다. 이 통지는 나에게 이 논문의 모든 사상을 재인식하게 하고, 그 사상에 새로운 힘을 불어 넣었다. 그리고 아버지와 고국과 플루탁이 나의 유년시대에 품게 한 용기와 도의 싹을 나의 마음 속에 싹트게 하였다. (258p) 이렇듯 철학적 고찰을 하고 있을 때, 테레즈는 세번째 임신을 했다. 이것은 나 자신의 의무에 대해 깊이 반성할 계기가 되었다. (259p)

 

2010 2/10 (18:50 ~ 19:06) : 1차 교정, (19:06 ~ 19:38): 2차 교정(처음부터 끝까지)

(18:38 ~ 21:38) : 윗글에 이어서 글 쓰고 정리하다.

 

엎어진 김에 쉰다고 좀 쉬어가야겠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 틀림이 없다. 이 윗부분까지는 작년 9 8일에 써 놓은 것이다. 그 때 어떤 식으로 글을 써 나가려고 기획을 했었는지 지금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어물쩡 넘어가는 것보다 솔직하게 밝히는 게 낫겠다 싶어 이실직고를 하는 것이다. 어제 행복론을 쓰기 위해 매일 글을 쓰겠다고 다짐을 하였기에 오늘 출근길에 참회록 책을 들고 나왔다. 거울삼아 그가 인류의 행복을 위하는 마음을 글을 썼다는 내용을 찾아 발췌, 인용하여 블로그에 올려 놓으려고 책을 가져온 것이다. 사실은 방금 전까지도 이렇게 독후감을 써놓았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혹시나 하고 찾아 보았더니 쓰다만 독후감이 있었던 것이다. 정말 어떻게 이렇게 까마득하게도 기억을 못하는지 신기할 정도다. 할 수 없다. 본래의 기획의도에서 벗어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약간만 덧붙이고는 빨리 독후감을 끝맺어야겠다. ^^

 

루소가 위대한 사상가이고 훌륭한 작가임에 틀림이 없지만, 옥에 티가 하나 있다. 그것은 어쩌면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비판을 넘어 비난을 받고, 심한 욕을 들어도 싼 무책임이다.  자식을 몇이나 낳아서 다 고아원에 보내버렸다는 점이다. 이것은 자신의 신념에 부합하기도 하는 일이었고, 당시의 사회적 환경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도 했지만 그는 끝내 죄책감을 벗어버리지는 못했다.

 

나는 내 손으로 어린아이들을 양육시킬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아이들을 고아원에 위탁하여, 부랑배나 사기꾼으로 만들기보다는 노동자나 농민이 되도록 하는 편이 공민으로서의 또는 어버이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나 자신이 곧 플라톤이 주장한 바 공화국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그 뒤로도 여러 차례 내 마음에 솟구치는 뉘우침은 내 잘 못을 일깨워주었다. 그러나 나의 이성은 그와 같은 경고를 내리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이들을 그 아버지의 운명으로부터 지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내가 장차 그들을 버리지 않을 수 없는 운명에 그들을 지키게 되었음을 자주 신에게 감사했다. 그리하여 세째 번 아이도 그러한 이유로 해서 두 아이와 마찬가지로 고아원에 보냈다. 그 뒤에 생긴 두 아이도 역시 그렇게 했다. 이리하여 나는 전부 다섯 아이를 가졌던 것이다. 나는 이러한 조치는 매우 잘 된 일이며 합리적인 것이라 생각했으나, 널리 자랑하지 못한 까닭은 다만 테레즈에의 염려 때문이었다. (259p)

 

나는 여기서 그녀에 대한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하겠다. 불쌍한 엄마의 결함이나 나의 결함을 숨기지 않았으니, 그녀의 과실도 덮어 둘 수는 없다. 나는 그녀의 애정이 냉각한 것을 느낀 지 오래 되었다. 그녀는 젊은 시절의 테레즈는 아니었다. 나는 항상 변함이 없었으므로 더욱 그러했다. 자연 말고는 완전무결한 것은 구할 수 없다. 어느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자식에 대한 처사가 현명한 것이었다고 생각했지만, 끊임없이 나의 마음을 괴롭혔다. <교육론>을 구상하고 있을 때에도 의무를 이행하지 못한 가책을 면치 못하였다. 후회가 막심한 나는 <에밀>의 서두에서 나의 과실을 고백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테레즈의 냉담한 태도도 이 때에 깨달았다. 그녀는 애정에서가 아니고 일종의 의무감에서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녀는 어디에 가 있거나 내가 돌봐 주기만 한다면 나와 함께 방황하기보다는 파리에 있기를 더 원하는 것 같았다. (338p)

 

오늘날의 사람들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고 비난할 것이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 때의 일을 지금의 관점에서만 보아 욕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싶다. 실수라고 단순하게 치부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이 있지만 나는 너그럽게 보아주고 싶다. 작은 단점을 꼬투리 잡아 싸잡아 비난하기에는 그의 장점이 뛰어나고 업적이 많지 않은가.

 

그의 사랑의 행적도 차근차근 더듬어 보고 싶지만, 그에게 미덕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점도 있었으니 나중에 좋은 기회를 빌어 따져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그가 써낸 책들을 자세하게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클 것인데 이 또한 다른 기회로 미루고 싶다. 다만 불후의 명작 에밀은 주마간산 격이라도 언급해 보자. 말년에 그가 사랑했던 고국을 떠나는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에밀을 원고 대로 출판했던 것은 그의 모든 잘못이나 부도덕 혹은 실수를 덮어주어도 좋을 만큼 큰 결단이었으며 용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랬기 때문에 에밀이라는 뛰어난 고전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졌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박해를 받으면 도피를 하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저려왔다. 언제나 사상의 자유를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이 자신의 의지나 신념과 배치되는 종교적 강요 혹은 구속이었으니 참으로 큰 인간적인 비애를 느낄 수 밖에 없다.

 

시공을 초월하여 책으로나마 루소를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은 내게 한없는 즐거움이다. 비록 그의 많은 저작물 중 극히 일부만을 읽어보았을 뿐이지만, 그는 내게 친구이자 스승인 셈이다. 또한 인간과 인간 역사를 함께 연구하는 탐구하는 동학이고, 진리를 찾는 도반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그가 일평생 몸바쳐 쓴 훌륭한 정신적 탐구물들을 접할 생각을 하니 설레기만 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찬사를 보내고 싶다. 이 책을 읽는 지난 여름 참으로 행복했다. 너무너무 행복했다.

 

여기선 다시 한번 말하거니와 진정한 행복이란 표현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오로지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표현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더 잘 느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참다운 행복이란 많은 사실을 모으는 데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계속되는 일정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182p)

 

이번에 다시 루소를 생각하면서 깊이 다짐한다. 그가 견지했던 작가관을 가슴 깊이 새겨두고 싶다. 그래서 하루를 시작하면서 매일매일 그의 충고를 떠올려 나 자신을 격려하고 응원해야겠다. 어려운 환경에서 글을 쓰는 일은 그만큼 힘든 일이니깐 말이다.

 

하기야 내게도 마음만 있었다면 돈벌이 방면에 뛰어들 수도 있었고, 악보를 베끼기 위해 쥐는 펜을 저술에만 열중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미 내가 얻은 명성을 유지할 자신이 있었으므로 흥미거리를 쓰려는 마음만 먹었다면, 저술로서 여유있는 생활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빵을 위해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자기자신의 천분과 재능을 죽이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돈을 벌려고 드는 붓끝에서는 힘차고 위대한 작품이 나올 리가 없다. 필요와 욕망은 훌륭하기보다 빨리 되는 것을 강요하는 것이다. 성공에 대한 갈망은 나로 하여금 음모에는 빠지지 않더라도 대중에게 영합하는 저속한 작품을 쓰게 할 것이다. 만일 그렇게 했다고 하면, 탁월한 작가가 될 수 있는 나는 기껏해야 3류 작가밖에는 안 됐을 것이니, 이것은 안 될 말이다. 살기 위해 고상한 사색을 한다 함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위대한 진리를 말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가지려면 먼저 성공을 도외시하여야 한다.

 

나는 오로지 인류의 행복을 위해 말했다는 확신만을 가지고 저술에 임했던 것이다. 만일 이러한 나의 저서가 호평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나의 저서를 통해 어떤 이득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의 손실일 뿐이다. 나는 생계를 유지해 나가기 위해 그들의 찬사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설사 나의 저서가 팔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의 직업은 먹고 살기에 위협을 받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내 저서는 잘 팔렸던 것이다. (272p)

 

 

나도 루소를 본받아 훌륭한 사상가이자 작가가 되고 싶다!

 

 

2010. 2. 10. 21:11

 

 

인류의 행복을 위하는 마음으로 살겠다고 다짐하는 각자저자

선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