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 정신에 충만해서 일베를 열심히 하는 사람을 일베충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다.

 

나는 그런 사람을 일베충이라고 부르는 것에 반대한다.

 

아마 개미를 연구하는 에드워드 윌슨 교수나 그의 제자인 최재천 교수도 그런 표현을 보면 싫어할 것 같다. 곤충이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E. O. Wilson (Wikipedia)

http://en.wikipedia.org/wiki/E._O._Wilson

 

최재천(위키백과)

http://ko.wikipedia.org/wiki/%EC%B5%9C%EC%9E%AC%EC%B2%9C_(1954%EB%85%84)

 

 

 

세상 사람들의 조롱을 받고 있지만 일부심(일베 자부심)을 드러내는 다음과 같은 글이 일베에서 엄청난 히트를 쳤다.

 

당신의 글이 일베를 간다는 것.

http://www.ilbe.com/2165284513

 

[일베채널] 당신의 글이 일베를 간다는 것

http://www.youtube.com/watch?v=yegjNa7NbUI

 

당신의 글이 일베를 간다는 것(구스위키)

 

 

 

일베에 글을 올려서 히트를 치면 평범한 개인이 다른 사이트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조회수와 추천수를 맛볼 수 있다. 그리고 일베 정신에 충만한 글에는 칭찬하는 댓글이 엄청나게 많이 달린다. 한마디로 말해 관심과 칭찬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관심 받기 위해 일베를 한다”는 말이 성립할지도 모른다.

 

 

 

“관심 받기 위해 일베를 한다”는 설명이 너무 뻔하다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 것 같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런 설명을 내놓았다. 하나만 살펴보자.

 

이런 일베충을 박멸하는 것은무관심이다. 애초에 그들은 관심을 먹고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악플충과 같은 족속이다.

‘일베충’들을 박멸하는 것은 무관심이다

[김헌식의 문화비빔밥] 일베를 만든 것은 민주화와 진보적 문화 투쟁?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9839

 

 

 

하지만 자기가 쓴 글의 조회수가 높아진다고 해서, 자기가 쓴 글에 칭찬하는 댓글이 많이 달린다고 해서 돈이 나오나? 아니다. 그렇다면 짝짓기(연애, 결혼, 성교)에 도움이 되나? 아니다. 선이나 미팅 자리에서 일베에 올린 글을 자랑한다고 해서 인기가 높아질 확률은 별로 없다. 오히려 상대방이 “재수 없게 일베충이 나오다니”라는 식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훨씬 커 보인다.

 

돈이나 짝짓기의 측면에서 볼 때 대부분의 경우 일베 활동은 거의 쓸모가 없다. 오히려 방해가 된다. 예컨대 일베에서 “젖병 테러”를 해서 유명해진 어떤 협력업체 직원은 돈 벌기가 더 어려워질 것 같다.

 

코모토모 대표 "일베 젖병 파문, 협력업체 직원 맞다깊이 사죄"

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312210100184690011336&servicedate=20131220

 

 

 

인터넷에 별로 영양가 없는 글을 열심히 올리는 사람을 두고 “혼자 딸딸이 치는 것에 불과하다”라고 비아냥거릴 때가 많다.

 

그런 비아냥과는 조금 맥락이 다르긴 하지만 인터넷에서 받는 관심과 칭찬은 포르노 보면서 자위행위를 하는 것과 비슷한 면이 있다.

 

포르노 보면서 자위 행위를 하는 것은 번식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 같다. 적어도 포르노-자위에 깊이 빠져서 아주 많은 시간을 그렇게 보내는 사람은 짝짓기 활동에 방해가 된다. 그런데도 포르노는 특히 남자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자연 선택에서 중요한 것은 번식이다. 그런데 자연 선택이 만들어낸 산물인 남자가 번식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포르노를 아주 좋아한다. 얼핏 보면 이것은 뭔가 이상하다. 그리고 번식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일베 활동에 빠져 사는 것과 비슷한 면이 있다.

 

 

 

진화 심리학자들이 이런 현상을 과거 환경과 현재 환경의 불일치로 설명할 때가 많다. 우리 조상들이 진화했던 과거 사냥-채집 사회에는 현대의 포르노 동영상처럼 실제와 너무나도 유사한 이미지가 사실상 없었다. 그 때 벌거벗은 여자가 야한 자세를 취하는 모습을 보았다면 실제로 여자가 근처에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이미지에 집중하도록 하는 심리 기제가 번식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화면 속 영상과 실제 이미지 사이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이 과거에는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화면 속 영상은 그 시절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냥-채집 사회에서 진화한 남자의 성교 관련 심리 기제가 실제 여자와 포르노 속의 여자를 잘 구분하지 못하도록 생겨먹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설명에도 뭔가 이상해 보이는 것이 있다. 남자들은 관찰해 보라. 그들은 포르노 속 여자와 실제 여자를 구분할 줄 안다. 이것은 남자들이 TV 속 음식과 실제 음식을 구분할 줄 아는 것과 마찬가지다. 남자에게 음식이 나오는 TV 프로그램을 보여준다고 해도 TV 속 음식을 먹기 위해 손을 뻗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화면 속의 여자와 성교를 하기 위해 TV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런 것을 설명하기 위해 진화 심리학자가 대량 모듈성(massive modularity) 테제를 들이댈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Kurzban의 논문과 책을 추천하고 싶다.

 

진화 심리학 대박 논문: Modularity in Cognition(Barrett, Kurzban)

http://cafe.daum.net/Psychoanalyse/J3xI/67

 

Why Everyone (Else) Is a Hypocrite: Evolution and the Modular Mind, Robert Kurzban,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0.

 

뇌 속에는 온갖 모듈들이 있는데 그 중 일부는 선천적 모듈로서 의식적 지식과 별로 상관 없이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것 같다. 그 때문에 시각학을 열심히 공부해도 착시를 보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TV 속의 음식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도 군침이 나오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예컨대 발기 조절에 전문화된 선천적 심리 기제가 있다면 포르노에 나오는 여자와 성교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의식적으로 알고 있다 하더라도 발기가 될 수 있다. 발기 조절 모듈의 작동은 그 나름의 정보 처리 방식을 거치기 때문에 의식적 지식으로 몽땅 통제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어쩌면 관심이나 칭찬과 관련된 심리 기제가 진화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기제가 언어적 입력값을 받도록 생겨먹었는지도 모른다. 과거 우리 조상들이 살던 사냥-채집 사회에는 인터넷이나 TV가 없었다. 심지어 문자도 없었다. 따라서 누군가 언어로 자신을 칭찬했다면 그것은 가까이 있는 진짜 사람이 칭찬해준 것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포르노가 없던 시절에 생생한 여자 이미지가 실제 여자일 수밖에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일베에서 누군가가 나를 칭찬해 주었다면 거의 모든 경우에 그 사람은 나를 사실상 모르는 사람이며 실제 삶에서 나에게 도움을 줄 일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누군가 나를 칭찬해 주었다면 실제 삶에서도 나와 이리 저리 얽혀 있는 사람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칭찬 받기와 관련된 심리 기제는 다른 도시에 살며 자신에게 사실상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의 칭찬과 가까이 사는 사람의 칭찬을 잘 구분하지 못하도록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칭찬을 동반한 호의적인 관심을 받으면 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일까? 내 추측에는 인간이 자연 선택에 의해 그렇게 “설계”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졌던 사람이 그렇지 않았던 사람에 비해 더 잘 번식했기 때문에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지도록 진화한 것 같다.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지도록 하는 심리 기제는 왜 번식에 도움이 될까? 어쩌면 그런 심리 기제가 칭찬을 받는 일을 많이 하도록 만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칭찬을 받는 일을 많이 하면 우정 시장과 짝짓기 시장에서 인기가 높아지며 그것은 곧 번식에 도움이 된다.

 

 

 

이덕하

2014-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