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망하면 우리나라도 망할까?]

 삼성은 요즘 많은 이들에게 국가적인 상징성을 지닌 기업으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미국 등 세계시장에서 명품 반열에 오른 국산 제품 가운데 상당수가 삼성 가전제품이고 주식시장에서 시가총액도 삼성전자가 1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매출액 기준 수출액도 삼성전자가 우리나라 최고다.

 
 2008년 4월경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삼성을 세계적 대기업으로 이끌었다고 평가받는 최고경영자 이건희 전 회장의 전격적인 퇴진은 재계는 물론 보통 사람들 간에도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건희 전 회장의 퇴진 이후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술자리에선 미래 삼성의 전망에 관한 얘기가 좋은 안주거리가 되었다. 특히 후계자인 이재용 씨가 삼성 그룹을 잘 이끌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의문이 잇따랐다.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관점이 주를 이루었지만 삼성의 장기적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는 관점도 일부 있었다.

 그런 가운데 만에 하나라도 장래 삼성이 망하게 되면 우리나라 경제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고 오프라인은 물론 온라인의 삼성 관련 얘기에서 빠지지 않는 소재가 되었다. 예를 들어 포탈에서 <삼성이 망하면>이라는 식으로 검색을 하면 관련된 질문 및 답변 글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의 답변이 우리나라가 망한다는 결론으로 끝맺음하고 있다.

 

 그러나 대중적으로 널리 공인되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러한 결론이 옳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한번쯤 차근차근 꼼꼼하게 살펴볼 문제가 아니겠는가?

 

 사실 나라경제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했던 굴지의 대기업이 파산하거나 실적부진으로 외국기업에 매각되거나 하는 사건은 생각 외로 자주 일어난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외환위기 이후 현대 그룹과 대우 그룹의 몰락이라는 명백한 예가 있다. 외국에서도 수많은 대기업 파산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현대야말로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최고의 대기업이 아니었던가? 현대의 몰락 이후 삼성이 마침내 재계 1위의 그룹이 되었지만 그 전 수십 년 동안 현대는 부동의 1위였다. 우리나라의 눈부신 경제발전을 얘기할 때 현대와 고 정주영 회장은 언제나 주역을 꿰찼다.

 

 그러나 현재는 현대 그룹의 중핵이었던 현대건설이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으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대건설의 최대주주도 외환은행을 거쳐 이젠 산업은행이다. 이처럼 힘겨운 구조조정을 거치고 난 뒤 우리나라 최고의 그룹이었던 현대는 이제 대략 세 갈래로 갈기갈기 찟어져버렸다. 크게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현대아산으로 갈라져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90년대 당시 우리나라 최대 그룹인 현대의 몰락은 지금으로 치면 삼성의 몰락 이상이라고 해도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랬음에도 우리나라가 망하진 않았다. 물론 1998년에 외환위기를 겪었으니 우리나라가 한 번 망했다 다시 살아난 게 아니냐는 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외환위기 혹은 이후에 붕괴한 대기업들 만해도 셀 수 없이 많을 정도다. 대우, 현대, 기아, 삼미, 한보 등 재계 서열에서 손꼽을 만한 기업들만 해도 수두룩하다. 규모가 작은 기업들까지 따지면 세는 것조차 어렵다. 그렇다. 외환위기 당시 수많은 기업들이 파산했다. 숱한 구조조정이 잇따랐다. 수많은 실업자들이 거리를 메웠다. 도대체 외환위기는 왜 일어났고 그 결과는 그렇게 혹독했던가?

 

 현대나 대우 등 대기업들이 망해서 외환위기가 발생했는가? 그 반대다. 외환위기가 발생해서 현대를 포함한 숱한 기업들이 망했다. 기업의 줄도산이 발생한 궁극적 원인은 외환위기, 그리고 뒤따른 금융위기다. 97년 외환위기로 인해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은 외국으로부터 돈을 빌릴 수 없었다. 적지 않은 외채를 빌린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은 외환위기로 인해 더 이상 달러를 빌릴 수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만기가 된 외채의 롤오버-갚을 때가 된 외채를 다시 추가 외채로 대체-도 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은 더 이상 기업들에게 대출을 해 줄 수가 없게 되었다.

 

 나라에 돈이 돌지 않았다. 버티고 버티던 한보 그룹이 97년 초에 마침내 파산했다. 기아와 대우도 뒤를 따랐다. 주요 그룹의 부도로 인해 대출해준 주요 금융기관들은 더욱 심각한 자금부족에 시달렸다. 상당수 금융기관들도 파산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정부는 IMF로부터 수백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아야했다. 혹독한 고금리 정책과 재정긴축을 통해 수입을 억제해 국제수지를 대규모 흑자-98년도 400억 달러 흑자-로 돌렸고 텅텅 비었던 외환보유고가 다시 늘어났다.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투입해 금융기관과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힘겨운 노력 끝에 우리나라 경제는 99년도 9.5%의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98년 -6.7%로 침몰해가던 경제가 마침내 다시 살아났다.

 

 외환위기가 발생한 이유가 뭔가? 바로 외환보유고 탕진이 외환위기를 일으켰다. 95년과 96년까지 국제수지 적자가 각각 수백억 달러에 달했다. 김영삼 정권의 무리한 재정지출 증가와 통화량 증가가 경기과열을 불러 국내총공급이 국내총수요를 따라가지 못한 탓이다. 97년엔 외환보유고가 바닥을 드러냈다. 그래서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은 더 이상 달러를 빌릴 수 없었다. 이윽고 기업들에 대한 대출이 중지되었고 자금을 구하지 못하게 된 기업들이 망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인과관계를 따져보니 외환위기-외환보유고의 탕진-가 기업 줄도산의 근원임을 알 수 있다. 당시 우리나라 최고의 그룹 현대의 몰락도 외환위기 이후의 일이다. 삼성이 망한다고 우리나라가 망하진 않는다. 반대로 우리나라 경제가 망해서 삼성이 망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요즘 우리나라 기업들은 전자, 자동차 등 여러 분야에서 8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를 주름잡던 일본 기업들을 제치거나 대등하게 경쟁하는 경우가 많다. 90년대 초 일본 거품경제 붕괴 이후 20여년에 걸친 장기침체로 일본 기업들은 수익성 저하와 자금융통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서 적극적인 투자를 할 수가 없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 이는 치명적이다. 반면 삼성전자는 과감한 투자로 한 때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주름잡던 일본 업체들을 모조리 따돌리고 독보적인 1위로 부상하지 않았던가?

 

 이젠 도요타와 닌텐도 등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일본 대기업이 우리나라 대기업과 경쟁에서 열세에 놓일 정도다. 일본 자민당 정권의 잘못된 경제정책이 일본 경제를 오랜 기간 부진에 시달리게 한 덕분이다. 장기부진이 일본 기업들의 국제경쟁력 저하를 야기하기까지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잘못된 경제정책 등으로 인해 국가경제가 부진해지고 이로 인해 주요 기업들이 약화되거나 몰락한다. 국가경제는 기업들의 단순한 부분합 이상이다. 그래서 국가경제의 향방이 기업들의 향방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반면 반대의 인과관계는 좀처럼 성립하지 않는다. 부분과 전체 사이 차이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전체가 부분에 우선한다는 종합적 시야로 경제문제를 살피면 크게 잘못될 일은 없다.

 

 개인 역량보단 조직력과 작전 등이 결정적 역할을 하는 단체스포츠만 봐도 경제 문제에서 부분과 전체 사이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이 월드컵 4강에 진출한 게 단순히 뛰어난 선수 한 명 때문이었는가?

 

 모두 다 알다시피 히딩크 감독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히딩크 감독은 적절하게 선수를 배치했고 체계적 훈련을 실시했다. 작전 또한 치밀했다. 경제로 치면 히딩크 감독은 올바른 경제정책을 펼치는 경제당국인 셈이다. 기업들은 선수 정도라고 보면 된다. 불과 11명이 뛰는 축구에서조차 단순한 부분 합이 전체와 일치하진 않는다. 하물며 수천만 명의 경제활동인, 수백만 기업이 존재하는 우리나라 경제는 어떻겠는가?

 

 다시 한번 자문해보자. 삼성이 망하면 우리나라가 망할까? 아니다. 반대로 우리나라가 망하면 삼성이 망할 수도 있다. 현대가 망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망했나? 앞서 살펴봤듯이 그렇지 않았다. 우리나라가 망했기 때문에 현대도 망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가경제는 잘 돌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이 잘못된 경영 등 기업 내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경쟁에서 점차 도태되어서 몰락하는 경우를 떠올려보자. 이 경우 경쟁력을 갖춘 우리나라의 다른 기업들-LG나 SK 등-이 삼성의 경쟁력 약화를 틈타 삼성과 경쟁하는 시장에서 점유율을 늘리고 매출과 이익도 증가시킬 것이다. 아니면 신생기업이 삼성의 시장을 빼앗을 것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결국 삼성은 망하거나 인수합병되어 겨우 명맥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한 때 세계 컴퓨터 시장을 호령하던 공룡 IBM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여전히 IBM은 대기업으로 남아있지만 경쟁자인 인텔이나 마이크로소프트 등과 비교가 되지 않고 과거 IBM의 성세와 비교해도 초라하기 그지없다.

 이렇듯 나라경제가 순조로운 상황에서 대기업의 몰락은 그저 다른 대기업에 의한 순위 교체로 마무리된다. 이 경우에도 나라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거의 없다.

 

 -21세기경제학연구소 경제이슈 게시판, www.tae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