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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수첩>에 대한 무죄 판결 소식에 나도 모르게 환호를 내질렀던 것도 벌써 보름이 넘었다.  애초에 기소하기 성립하기 어렵다고 보았던 사안을 검사를 바꿔 가며 기어코 기소하고, 개인의 이메일을 뒤져서 그 내밀한 대화 속에서 범행 의도를 끄집어냈던 장하디 장한 대한민국 검찰에게는 안 된 결과이지만, 그리고 5월 8일이 되려면 아직 멀었건만 밑도 끝도 없이 앞뒤 분간도 없이 나타나시는 ‘어버이연합’ 분들의 노기야 밤하늘의 은하수를 가르겠지만, 대략 두 해 동안 가장 유쾌 통쾌 상쾌한 순간 가운데 하나였음은 부인할 수 없겠다.


  무죄 판결은 찬반을 망라하여 온 나라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며칠 동안 뉴스의 중심은 단연 <PD수첩>이었다. 잘된 판결이라는 여론이 60%에 육박했지만 입만 열면 법치를 부르짖던 분들은 신영철 대법관을 의연히 지켜내던 왕년의 소신을 싹 뒤집고 정치적 성향의 판사는 시민운동이나 하라는 등의 막말을 퍼부어 댔다. 어찌 되었든,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판결에 망연한 검찰이나 그에 맞서던 제작진이나 고심 끝에 무죄 판결을 내린 판사나 힘겹기는 했어도 외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 일생에 이런 초미의 관심의 대상이 될 일이 어디 그리 흔하겠는가.


세상 이치가 공평한 것만은 아니어서 재물이든, 연애든 되는 사람은 척척 손에 붙고 불처럼 일어나지만 안 되는 집안은 하는 일마다 자빠지고 쪽박만 깨뜨리게 되는데 이걸 학문적 용어로는 ‘빈익빈부익부’라고 부른다.  <PD수첩> 무죄 판결의 후폭풍을 지켜보면서 나는 ‘관심’의 영역에도 이 현상이 적용된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뜨겁다 못해 화상을 입을 듯한 관심의 세례를 받고 있는 <PD수첩>에 반해, 목이 찢어져라 외치고 몸을 던져서 호소해도 시릴 정도로 차가운 무관심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숱하였기 때문이다.


벌써 7년이 지났다.  2003년 한 노동조합의 위원장이 무려 129일 동안 수십 미터 상공의 크레인에 올라가 농성을 벌이던 끝에 목을 매어 세상을 떠난 지도. 그 해는 매미라는 이름의 전설적인 태풍이 부산 앞바다를 휩쓸고 지나간 해였다. 15층 높이의 선상 호텔이 맥없이 쓰러지던 그 무지막지한 태풍에 휘말려 180도로 휘청휘청 돌아가는 크레인 위에서 한진중공업 노동조합 김주익 위원장은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를 비롯한 노조 간부들에게는 7억 4천만 원의 가압류가 걸려 있었고, 김 위원장이 소유했던 5천만 원짜리 낡은 연립주택에까지도 법원은 가압류를 인정했다.  당시 해당기업의 21년 근속 노동자의 기본급은 105만원이었다.


<PD수첩> 제작진은 비록 이메일까지 뒤짐을 당하고 결혼을 앞두고 수갑을 차는 형극을 치르기는 했으나 무죄 판결을 받아 웃을 수 있었고 만인의 격려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김주익 위원장은 자기 일 찾아 종종걸음치는 수백의 까만 점들을 향해 내 말 좀 들어달라고 수십 미터 상공에서 똥오줌 받아내 가며 호소했지만 결국 시체가 되어서야 크레인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관심은 “우주에서 제일 좋은 직장”으로 이름 높은 MBC의 노조원이 받은 그것의 천분지 일 만분지 일도 되지 못했다.  


괜히 옛날 일을 끌어와서 까탈을 잡으려는 것이 아니다. <PD수첩>이 무죄를 선고받기 1주일 전, 이미 고인이 된 김주익 위원장의 동료였으며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인 김진숙씨가 단식을 시작했다.  고 김주익 위원장의 장례식에서 “1970년에 죽은 전태일의 유서와 세기를 건너 뛴 2003년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를 비통하게 읊조렸던 김진숙씨는 크레인을 오르지 않고 그냥 밥을 끊었다.  지난 7년 동안 조선업의 호황 속에 이익을 챙길 대로 챙겼으면서도 이제 형편이 안 좋으니 자를 사람은 잘라야 하겠다는 회사에 맞서서 할 수 있는 일은 ‘단식’ 뿐이라고, 죄송하다고 했다. 이것 밖에 할 것이 없다고.  혹시 들어 본 적은 있으셨는지 모르겠다.  2월 5일 그녀는 24일만의 단식을 끝냈다.  


그녀는 굶고 있는데 당신은 무얼 하고 있는가 하고 비분강개할 의사는 전혀 없다. 더더구나나 당신은 왜 무관심한가 힐난할 자격은 정말로 터럭 위의 티끌만큼도 없다. 하지만 이 팍팍한 세상에서 감사히 월급 받으며 살아가고, 구조조정 말만 나오면 온몸에 소름이 돋는 모든 사람에게 결코 그녀의 단식이 무심할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지 않을까.   언론의 자유도 중요하고 민주대연합도 요긴하긴 한데, 언론의 자유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며 민주대연합은 누구를위한 것인지 관심을 나눌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적어도 관심의 영역에서는 ‘빈익빈부익부’의 사슬을 벗어나야 옳지 않을까.


<PD수첩>제작진이 받은 무죄판결의 소중함만큼이나, 나에게는 역시 고인이 된 MBC 여성 노조원이 보여 준 애틋하지만 강렬한 언어 한 자락이 산화되지 않는 금빛으로, 바래지 않는 옥빛으로 남아 있다.  고 정은임 아나운서가 2003년 10월 21일 새벽 3시의 영화음악실에서 남겼던 오프닝 멘트가 그것이다.  


    새벽 세 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백여 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봅니다.
    올 가을에는 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계시겠죠?
    마치 고공 크레인 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 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저 FM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나 자신에게도 이른다.  먹고 살기 바쁘고, 당장 내 비정규직 후배한테 우리한테 해 준 거 뭐가 있냐고 욕먹는 무능한 직딩이라도, 태산이 무너지고 바다가 마르더라도 내 먹을 거, 내 새끼 입힐 거 가르칠 게 우선으로 보이는 일상이라도 가끔은 정말로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 응원해 보자.  그래서 내 목소리 들리냐고 나지막하게라도 물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