넙대대 목사가 있었다. 실명은 김ㄷㅅ. 이번에 김대중 묘소에 불도 아마, DJ가 타계하자,  '김대중을 국립묘지에 묻어서는 안된다'라고 난리를 치던 늙은 목사들 중 일부라는 것이 내 판단이다.


하나님의 반대말은 사탄. 빨갱이는 사탄의 친척. 그리고 김대중은 빨갱이... 따라서 김대중은 하나님의 적,...이라는 참, 징그러운 등식에 충실한 일부 목사... 중 하나일 넙대대 목사. 실명은 김ㄷㅅ. 그는 전두환 숭배자였다. 그리고.....

그리고 그는 툭하면 518을 능멸하였다. 그리고 내가 나선다. 그의 주장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밝히기 위하여. 나중에 결국 나에게 굴복하고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반복되는 그의 게시물들. 그를 타격할 때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


"야! 한그루, 가증스러우니까 우리를 위해 싸우는 척 하지 말아줘!"

나는 아마추어 역사학도로서 그냥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싶은 것이다. 물론, 역사가 제대로 밝혀지면 호남차별 극복에 도움은 될 것이라는 판단은 선다. 그러나 나는 상식선에서 인권을 생각하지 숭고한 인권주의자가 아니다. 따라서, 이기적으로 말하자면, 호남차별극복을 위하여 역사를 밝히기를 해야 한다면 이미 예전에 중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취미가 역사를 연구하는 것이니 518에 관심이 많은 것이다.


뭘 말하고 싶냐고? '리본'님의 '정치의 이데올로기화'를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DJ 묘소에 불이 난 것은 호남 사람들과 비호남 사람들에게는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Picket님이나 시닉스님처럼 단지 '있어서는 안될 범법 행위'로 그냥 '쿨'하게 다가올 수도 있고 리본님처럼 그 화재가 호남차별의 연장선으로 해석되어질 수 있다. 그러니 내 발언을 인용하면서 대구한 것이리라.


하나만 묻자. 안다. 선진국이라면 내 발언은 '반인륜적인 발언'으로 형사처벌 대상이라는 것을. 이미 도덕의 범주를 넘어선 것이다. 그래서 사과했고 끊임없이 스스로 반성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에 나를 놀리기 위하여 장애인 사진을 습관적으로 올리던 사람들 중에 단 한사람만이 나에게 사과를 했다.


그 상황에 대하여 목격자를 댈 수 있다, 그런데 유령에 의한 돌출발언. 내 발언을 다시 상기시킨 그 유령과 사과를 한 나 둘 중에 누가 더 호남을 아프게 할까? 한가지는 분명하다. 당시, 내가 사과를 했던, 아니 할 수 밖에 없었던, 광주학살 현장에서 동생을 잃었다는 광주시민은 결코 나를 나무라지 않앗다. 가해자인 나에게 오히려 호소했다. 더 이상, 제발, 아픈 상처를 건드리지 말아달라고. 좋은 의미던, 나쁜 의미던 그학살의 시간들을 언급하지 말아달라고.


감히 말하자면, 리본님이나 그 유령이나 광주학살 그 자체를 몸소 경험한 사람들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것은 마치, 625때 전쟁을 몸으로 치룬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와는 달리 밥상머리에서 통치차원에서 빨갱이를 쳐부수기 위한 교육에 순치된 전쟁 이후 세대들이 빨갱이에게 이를 가는 것과 마찬가지리라. 역사는 가고 이데올로기만 남았다는 의미다. 정말, 잔인한 역사를 몸으로 체험한 사람들은 언급을 회피한다.

이는 마치..... 추리 소설이나 추리 영화에서 묘사되듯 '살인 현장'에 있었던 사람의 증언'이 가장 부정확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잊고 싶을 정도로 비극적이기 때문에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조차 고통이기 때문이다.


그 유령이나 리본님이 어떤 속성을 가졌건 탓하고 싶지 않다. 아니, 탓할 자격이 나에게는 없다. 어쨌든, 나는 가해자이므로..... 그러나 만일, 조갑제류나 지만원류라면 어떻게 발언했을까?

"광주의 빨갱이들은 계속 청소되어야 한다."


'학살'은 가치중립적 언어가 아니다. 이미 범죄 행위를 내포하고 있다. 그 학살의 대상이 설사 말 못하는 짐승이라 하더라도. 그러나 내가 썼다. 그러면 어떤 의미인지는 짐작이 되지 않는가? 어쨌든, 내가 가해자 역할을 했지만 나 역시 상처를 입었다. 그러니 더 이상 거론하지 말라. 솔직히, 리본님이나 그 유령의 발언에는 귀차니즘만 작동될 뿐이다. 단지, 그 발언이 거론될 때마다 활자가 살아서 움직이던 착각을 일으켰던 그 광주 시민의 찢어지는 아픔에 의한 절규가 조금이나마 내게 전이되기 때문이다.


"한그루님 부탁해요! 더 이상, 제발, 아픈 상처를 건드리지 말아주세요!  좋은 의미던, 나쁜 의미던 그 학살의 시간들을 언급하지 말아주세요!"


당시, 그 분이 나에게 온갖 저주를 퍼부었다면 오히려 지금 마음이나 편했겠다. 나에게 오히려 사정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이렇게 나 역시 아픈 것이다.


'누가 싸워 달랬어요?'

이 문장의 반댓말은 '우리를 위해 싸우는 척 하지 마세요'이다. 나는 호남 사람들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 그냥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것 뿐이다.


'호남의 차별' 그리고 '노빠들의 가증스러움'에 대하여.... 그 것이 아무리 참기 힘들더라도 조금은 감정을 누르라고 주문드리고 싶다,감히. 리본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