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약은 준비하지 않고, 기폭제만 준비하나?

  -출마선언문(초안) 몇 개를 보고-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지난 12월부터 서울시장, 경기지사 후보 출마선언문들을 유심히 읽었다. 최근에는 광역과 기초 자치단체장 후보 출마 선언문도 몇 개 읽었다. 첫 느낌을 거칠게 얘기하면 이렇다.

 

사람은 생각이 참 안 바뀌는구나!

2006~8년의 진보개혁의 동반 좌절로부터 배운 것이 없구나!

 

진보개혁 동네의 망조가 참 깊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 영국 노동당이 18년을 광야에서 헤맸는지, 왜 칼로 일어난 자 칼로 망한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과거의 빛나는 성공신화로부터, 또 과거의 역사적 상처가 남긴 트라우마로부터 자유로워지기 힘들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여태 진보개혁 동네서 나온 출마선언문을 보면, 대체로 반MB, 친노무현, 지역균형발전, 진보개혁연대 등을 고창하고 있다. 지역민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어 그들을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자기 고유의 비전과 가치를 강조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좀 긴 출마선언문에는 정책이 좀 언급되어 있는데 대체로 보육, 교육, 복지, 일자리 관련 정책이 대부분이다. 일자리 정책은 대체로 재정에 기반을 둔 사회적 일자리(사회적 기업)나 사회서비스 일자리 정책이 주다. 보육(국공립 보육시설 확충), 교육(무상급식, 교육예산 증대), 복지 정책은 보편적 복지라는 이념을 기반으로 제시 된다. ‘북유럽 등 선진국은 국가가 이런 것까지 보장하는데, 너희는 그것도 모르냐’ ‘대중은 복지 맛을 몰라서 복지 세력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식의 대중을 우습게 보는 계몽주의를 강하게 내비친다. 당연히 감동과 기대를 불러일으키기에는 역부족이다. 예산의 절대 부족과 허술한 복지전달체계와 방만한 공공부문으로 인해 결코 쉽게 해소되지 않을 거대한 사각지대(특히 차상위 계층)에 대책이 없고, 전달체계와 공공부문의 지독한 모순.부조리에 대한 분노가 없다. 무엇보다도 현실을 직시하려고 하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2010 지방선거를 바라보는 진보개혁 진영에는 2006년 지방선거 참패의 트라우마가 작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2006년에 집권여당으로서 생활밀착형 공약을 그런대로 잘 다듬어 제시했지만 반노무현, 반열린우리당 바람에 맥도 못 추고 쓸려나갔다는 아픈 상처가 2010년에는 생활밀착형 정책을 경시하게 하는 듯하다.  2006년의 충격은 ‘선거는 오로지 구도다’라는 신념을 강화하고,  지적 나태를 정당화한다. 결국 진보개혁 진영 전반에 반MB 구호로, 친노무현 이미지로, 거칠게 말해 노무현 영정 사진으로 승부를 보려는 풍조를 조장하는 듯하다. 

 

그런데 냉정하게 따져보면 2006~8년에 한나라당의 반노무현, 반열린우리당이 먹힌 것은 한나라당이 지방자치단체를 보다 잘 운영 할 것 같고, 결과적으로 주민을 더 행복하게 해 줄 것 같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의 반노무현, 반열린우리당은 그것이 뒷받침되지 않았다. 그래서 열린우리당에서 이탈한 표심이 민주노동당으로 가지 않은 것이다.

 

2010년의 광범위한 반MB, 반한나라당 정서를 실제 투표행위로 연결하려면, 과거 한나라당처럼 진보개혁 진영이 주민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줄 능력이 있어 보여야 한다. 그런데 진보개혁 진영은 반MB, 반한나라당은 선명하지만 그 폭발력 내지 흡인력을 담보하는 '유능 이미지’는 약하다. 어떻게 보면 (자유롭고 정의롭고 풍요로운 나라를 잘 만들 수있을 것 같은) '유능 이미지'가 폭탄의 본체인 화약이고, 반MB, 반한나라당은 기폭 장치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MB와 한나라당에 맞서 잘 싸울 사람을 뽑는다면 왜 40대, 50대, 60대의 경륜가가 필요하겠는가? 차라리 물불 안 가리고 대의에 헌신할 혈기왕성한 20대~30대가 낫지! 그런데 40대, 50대, 60대 예비후보의 출마선언문에는 반MB-친노무현만 선명할 뿐 자신의 고유 가치도 경륜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진보개혁 진영의 정서와 시각은 과거 운동권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평범한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고, 그들의 관점에서 정치와 선거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긴 얘기 짧게 줄이면 이렇다.

 

예비후보 당신은 국민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도구이자 종이다. 자신의 희생을 무릅쓰고 선봉에서 서서 싸우는 투사? 솔직히 지금은 선봉에 서서 싸우는 (정치인) 투사가 별로 손해 보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자기희생 없는 투쟁의 선봉은 아무런 감동이 없다. 국민은 뭔가를 반대하겠다 내지 저지하겠다는 사람보다 돈 벌게 해 주겠다, 행복하게 해주겠다, 사회를 정의롭게 만들겠다는  사람을 선호한다.  저 혐오스런 MB가 40~50%대의 높은 지지율을 보이는 것은 말이 되든 안되든 뭔가를 획기적으로 바꾸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발산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또 하나 진보개혁이 믿음직한 대안 세력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MB와 한나라당을 반대하고, 그 정책을 저지하는 것은 두 번째나 세 번째다. 첫째가 있어야 둘째도 살고, 노무현도 산다. 제발 지역민들의 행복 비전과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비전을 맨 앞에 내세워라! 평범한 국민의 세속적인 욕망과 정서를 직시하라!-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