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올로기를 배제한 과학적 사회학을 위하여
 

나는 도덕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가치를 배제한 과학적 사회학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말을 하면 내가 가치가 과학에 끼치는 영향과 과학이 가치에 끼치는 영향도 파악하지 못하는 바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도 모르는 바보는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한 나의 입장이 궁금한 사람은 다음 글을 참조하라.

 

「과학의 가치 중립성과 진화 심리학」

http://theacro.com/zbxe/?document_srl=70856

 

사회학에는 다양한 경향이 있지만 어떤 면에서 볼 때에는 기능론적 사회학(functionalism, 기능주의)과 갈등론적 사회학(conflict theory, 갈등 이론)이 충돌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진화 생물학적 의미의 기능론(functionalism)과 구분하기 위해 사회학의 한 학파를 가리킬 때에는 항상 “기능론적 사회학”이라고 쓸 것이다.

 

기능론적 사회학자들은 대체로 보수적이며 갈등론적 사회학자들은 대체로 진보적이다. 즉 이데올로기가 학파 선택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나는 사회학에 이데올로기가 개입되는 것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데올로기를 배제한 과학적 사회학이 필요함을 동시에 역설할 것이다. 이 두 가지 진술이 서로 모순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모순처럼 보이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학을 둘로 쪼개 보겠다. 하나는 기술(descriptive) 사회학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으로 사회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목표다. 다른 하나는 규범(normative) 사회학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으로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라는 문제 등을 다룬다. 내가 이 글에서 초점을 맞추고 싶은 것은 기술 사회학이다.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과학 훈련이 되어 있고 지적인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정치적 지향이 어떠하더라도 서로 동의에 이를 수 있다. 이것은 나치 물리학자와 공산주의 물리학자가 서로 정치적으로는 지극히 적대적임에도 불구하고 냉정하게 물리학에 대한 토론을 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데올로기는 기능론적 사회학과 갈등론적 사회학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나
 

기능론적 사회학과 갈등론적 사회학자가 실제로 하는 일은 무엇인가? 그들은 여러 사회 현상의 효과를 연구한다.

 

기능론적 사회학자들은 사회 현상의 효과들 중에 자신이 보기에 흡족한 것들을 골라내서 연구한다. 반면 갈등론적 사회학자들은 사회 현상의 효과들 중에 자신이 보기에 불만족스러운 것들을 골라내서 연구한다.

 

예를 들어보자. 기능론적 사회학자들이 제도 교육을 연구할 때에 무엇에 집중하는지 살펴보자. 그들은 교육을 통해 읽기, 쓰기, 사칙연산 등을 비롯한 여러 가지 쓸모 있는 지식을 학생이 습득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반면 갈등론적 사회학자들은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자본주의는 영원하다”는 식의 메시지를 받아들인다는 점에 주목한다.

 

보수주의자들은 현상 유지를 원하기 때문에 사회 현상 중 좋아 보이는 것들을 돋보이게 하고, 진보주의자들은 변화를 원하기 때문에 사회 현상 중 나빠 보이는 것들을 돋보이게 하는 것 같다.

 

 

 

 

 

효과와 원인을 헷갈리는 기능론적 사회학자와 갈등론적 사회학자
 

만약 기능론적 사회학자가 “이런 사회 현상의 이런 효과가 내 마음에 든다”라고만 말했다면, 만약 갈등론적 사회학자가 “이런 사회 현상의 이런 효과가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라고만 말했다면 내가 그들을 비웃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사회 현상이 이런 효과를 발휘한다”는 사실에 대한 과학 명제이다. 반면 “이런 효과가 내 마음에 든다/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자신의 가치를 반영한 이데올로기적 명제다.

 

이 두 가지 명제를 분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리고 사회학자가 연구를 하면서 “이런 효과는 내 마음 든다/마음에 들지 않는다”라는 식으로 한마디 덧붙인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도 않다.

 

문제는 양측 모두 효과와 원인을 헷갈린다는 점에 있다. 기능론적 사회학자들은 효과라는 개념을 써야 할 곳에서 기능이라는 개념을 쓴다. 그리고 이런 개념적 혼란은 효과와 원인의 혼동과 관련되어 있다. 실제로는 효과에 대해 규명했을 뿐인데도 원인에 대해 규명했다고 과대 광고하는 것이다.

 

 

 

 

 

기능론적 사회학의 엉터리 기능론의 사례 – 전문가들이 돈을 많이 버는 이유는?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기능론적 사회학자들이 어떻게 혼란을 초래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어떤 사회학자에 따르면 전문직 종사자가 고소득을 올리는 이유는 그래야 학생들이 전문 지식을 배우려고 오랜 시간 공부하기 때문이다.

 

조금 희화화하면 이런 식이다. 사회에게는 욕망도 있고 사고력도 있다. 어느 날 사회는 자신에 대해 생각한다. 자신이 잘 굴러가기 위해서는 의사, 과학자, 대학 교수와 같은 전문가 집단이 필요하다.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공부해야 한다. 그런데 그 공부라는 것이 항상 재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학생에게 뭔가 동기를 부여해야 오랜 시간 인내하며 공부할 것이다. 그래서 사회는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전문직이 고소득을 올리도록 한다. 그 이유는 자신이 잘 굴러가도록 하고자 하는 욕망이 사회에게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이라면 사회 대신 신을 대입해도 된다. 신이 인간 사회를 잘 굴러가도록 하기 위해 전문직이 고소득을 올리도록 사회를 만들었다고 보면 되는 것이다.

 

전문직 직종이 고소득을 올리는 것은 하나의 사회 현상이다. 이런 현상은 여러 효과를 발휘한다. 어떤 학생들은 고소득을 올리기 위해 전문직이 되는 데 필요한 교육을 받으면서 인내심을 발휘할 것이다. 여기까지는 좋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충분히 설득력 있는 효과 분석이다.

 

문제는 이런 효과 분석에 기능이라는 딱지를 붙여주어서 마치 원인 분석이라도 되는 것처럼 과대 포장 하는 것에 있다. “학생들이 인내심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 “전문직이 고소득을 올리는 것”의 기능이라는 것이다.

 

세상에는 신이 없다. 적어도 사회학자들이 신을 끌어들여서 설명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그렇다고 위에서 희화화한 대로 사회가 하나의 유기체여서 욕망과 사고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욕망과 사고력이 있는 것은 개인이지 사회가 아니다.

 

만약 어떤 사회의 모든 개인들이 “맞아! 우리 사회가 잘 유지되려면 전문직이 필요해. 그리고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공부해야지. 그런데 공부가 지겨울 때도 있으니까 전문가가 되려는 학생에게는 뭔가 동기가 필요해. 아! 전문가들이 많은 소득을 올리게 해서 그 동기를 부여하면 되겠군”이라고 한결같이 생각해서 전문가에게 많은 돈을 주기로 합의했다면 어떤 사회학자의 설명이 맞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비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전문직으로 소득이 쏠리게 되면 자신들은 상대적으로 돈을 덜 벌게 된다. 그들의 마음이 바다 같이 넓어서 “그래! 내가 좀 손해를 보더라도 사회가 잘 운영되는 데 필요한 전문가들을 위해 희생해야지”라고 생각하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나?

 

전문가가 돈을 많이 버는 뻔한 이유가 있다. 그들은 드물다. 따라서 돈 문제로 갈등이 생겼을 때 사장은 전문가를 짜르고 곧바로 다른 전문가로 대체하기 힘들다. 반면 미숙련 노동자의 경우에는 금방 대체할 수 있다. 이 희소성 때문에 사장이 전문가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대체로 돈을 더 잘 번다. 이것이 전문가들이 돈을 많이 버는 이유에 대한 훨씬 더 그럴 듯한 설명이다.

 

정리해보자. “전문가들은 희소하며 그들이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이 돈을 많이 버는 현상의 원인이다. “일부 학생들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전문가가 되기 위해 인내심을 발휘한다”는 전문가들이 돈을 많이 버는 현상에 따른 결과 즉 효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회학자는 효과를 원인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갈등론적 사회학의 엉터리 기능론의 사례 – 교사가 학생을 통제하려고 하는 이유는?
 

갈등론적 사회학에 따르면 교사가 학생을 통제하려고 하는 이유는 학생이 그런 통제에 길들여져서 나중에 자본가의 통제에도 순순히 복종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이번에도 조금 희화화해 보자. 위에서는 사회가 의인화되었는데 여기에서는 자본가 계급이 의인화된다. 자본가 계급은 노동자들이 자본가의 통제에 순순히 복종하도록 만들고 싶어한다. 그래서 자본가 계급이 생각해 낸 것이 학교다. 자본가 계급은 “학교에서 한 10년 동안 통제에 길들이자. 그러면 통제 당하는 것이 습관이 될 것이고 학생이 나중에 노동자가 되면 자본가의 말을 아주 잘 듣게 될 거야”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자본가 계급은 통제 일색인 학교를 설계한다. 자본가 계급은 전지전능하다. 그리하여 자신 맘대로 학교를 만들어서 자신 맘대로 학교가 돌아가도록 한다.

 

기독교인이라면 자본가 계급의 수호천사를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며, 신이 오직 자본가 계급만 사랑한다고 가정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 10 여 년 동안 복종하는 것에 익숙해진 다음에 졸업한 사람이 취직을 해서도 복종의 문화에 잘 적응한다고 보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그럴 듯한 분석이다. 여기에서 “학교에서 10 여 년 동안 복종을 강요당한다”는 현상이 있으며 이 현상은 “회사에 가서도 복종의 문화를 받아들인다”라는 효과를 발휘한다.

 

한번 교사의 입장이 되어보자. 전국에 있는 모든 교사들이 “맞아! 자본주의 체제가 잘 돌아가려면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복종해야지. 내가 장래에 노동자가 될 학생들에게 복종을 계속 강요해서 그런 노동자들을 만들어내야겠군. 왜냐고? 나는 자본주의와 자본가 계급이 너무 좋으니까”라는 식으로 생각할까?

 

이번에는 학부모의 입장이 되어보자. 전국에 있는 모든 학부모들이 “맞아! 자본주의 체제가 잘 돌아가려면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복종해야지. 장래에 노동자가 될 나의 자식들이 다니는 학교가 복종을 계속 강요해서 나의 자식을 그런 노동자로 만들어냈으면 좋겠군. 왜냐고? 나는 자본주의와 자본가 계급이 너무 좋으니까”라는 식으로 생각할까?

 

아니다. 학부모가 원하는 것은 자신의 자식이 자본가 밑에서 뺑이치는 것이 아니다. 보통 학부모가 원하는 것은 자식이 출세해서 자본가 또는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학부모는 좋은 대학에 가면 출세 길이 열린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좋은 대학에 가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그런데 그 학교 공부라는 게 재미가 없을 때가 많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공부하기 싫어하는 학생을 통제해서 공부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학부모가 학교의 강력한 통제를 원하는 이유는 자신의 자식이 하기 싫은 공부라 하더라도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나와서 출세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런 학부모의 열망이 결국 교사와 학교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다.

 

예컨대 학교에서 강제적으로 또는 반강제적으로 교복을 입도록 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학부모들이 “그래! 지금부터 교복을 열심히 입어야 나중에 작업복을 입을 때에도 순순히 입을 거야”라고 생각하기 때문인가? 아니다. 교복을 입어야 담배나 술을 사기도 어렵고 나이트클럽에 가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학부모는 자신의 자식이 어린 시절에 술, 담배, 섹스 등을 즐기기를 원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강하게 통제를 하는 원인은 “자신의 자식이 출세하기를 바라는 학부모의 열망”이다. 그리고 그런 강한 통제의 효과로서 “나중에 노동자가 되었을 때 자본가에게 좀 더 고분고분해진다”는 현상이 어느 정도 일어날 것이다.

 

내가 학교의 강력한 통제라는 현상의 원인이 오직 자식 출세를 바라는 학부모의 열망에만 있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핵심은 효과와 원인을 혼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E가 어떤 현상 A의 원인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어떤 현상 A가 어떤 효과 E를 발휘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잠재적 기능 – 뭐 하자는 건가?
 

기능론적 사회학에서는 명시적 기능(manifest function)과 잠재적 기능(latent function)을 구분한다. 명시적 기능은 의도한 이로운 효과를 가리키는 반면 잠재적 기능은 의도하지 않은 이로운 효과를 가리킨다.

 

기능론적 사회학의 기능 개념은 원인론을 함의한다. 그들이 “가족의 기능은 사회구성원 재생산이다”라고 말할 때에는 “가족이 존재하는 이유는 사회구성원을 재생산하기 위해서다”라는 명제가 함축되어 있다.

 

그런데 잠재적 기능 개념에서는 아예 의도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즉 예기치 않은 효과라는 것이다. 이럴 거면 도대체 기능 개념을 뭐 하러 쓰나? 그냥 “효과” 또는 “이로운 효과”라고 부르면 된다. “잠재적 기능”이라는 개념은 기능론적 사회학의 기능 개념이 효과 또는 이로운 효과를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갈등론적 사회학자들이 기능 개념을 드러내놓고 쓰는 경우는 별로 없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그들도 기능론적 사회학자와 똑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예컨대 그들은 “자유 민주주의가 존재하는 이유는 노동자들은 체제에 포섭하기 위해서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노동자 포섭이 자유 민주주의의 기능이라는 이야기다.

 

기능론적 사회학과 갈등론적 사회학은 엉터리 기능론을 펼친다는 점에서는 조금도 다르지 않다. 단지 기능론적 사회학에서는 “사회 전체를 위한 기능”을 따지는 반면 갈등론적 사회학에서는 “자본가 계급을 위한 기능(마르크스주의)” 또는 “전체 남자들을 위한 기능(가부장제 이론)”을 따진다는 면이 다를 뿐이다. 이데올로기라는 측면에서 보면 상반되어 보이기도 하지만 과학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똑 같이 원인과 효과를 혼동하고 있다.

 

 

 

 

 

과학을 하려면 인과론의 기초부터 배워야 한다
 

기능론적 사회학자든 갈등론적 사회학자든 과학의 기초인 인과론 개념에서부터 헷갈리고 있다. 원인은 결과(효과)와 동의어가 아니다. 따라서 효과에 대한 분석은 원인에 대한 분석이 아니다. 원인 분석을 내세우려면 그에 걸맞는 논거를 제시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진화 생물학의 기능 개념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아래에 링크된 글에서 진화 생물학의 기능 개념을 짧게 다루었으며 사회학의 엉터리 기능 개념과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았다. 진화 생물학의 기능 개념에는 효과와 원인이 얽혀 있다. 하지만 기능론적 사회학처럼 엉터리 기능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사회학의 기능 개념」

http://theacro.com/zbxe/?document_srl=60926

 

사회학자들이 인과론의 기본을 제대로 익히게 될 때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나?”라는 질문에 대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연구를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자신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무관하게 오직 논리와 증거로만 승부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2010-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