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성향에 대한 고백 붐이 일어나는가 했더니 느닷없이 노빠(및 전사모)를 자처하는 분들이 사이트를 맹폭하는 분위기...에다가 운영진은 내분? 덕택에 나의 혈맹인지 숙적인지 아무튼 댓글 꼭꼭 달아주던 바람계곡님은 잠수(...인가 했더니 좀더 심각한 사태였던 듯. 아무튼 부활하셨으니 됐고). 떡밥님은 내가 예전과 달리 너무 진지해졌다고 삐짐... (정말 그런가 싶어서 다시 개그모드 발동 걸어보려 했는데 별로 재미가 없음) 거기다가 진보누리에서 유명하던 한그루님의 방문 (아참 4.3때 돌아가셨다던 조모님에 대해 한 말은 미안허우. 님도 그때 그러는거 아니지)... 등의 어수선함을 무릅쓰고 기억 시리즈 일단 계속됩니다.

그러니까 우선 내가 왜 노빠가 되었고 그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는지 이야기를 하려 했는데 좀 길어질 것 같아서 우선 배경설명을 겸해서 그가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 결정적 계기였던 5공 청문회 이야기를 좀 할까 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우리나라는 전두환이 물러나 직접적인 독재체제로부터 해방된 이후에 개헌을 하면서 대통령의 권한은 크게 축소시킨 반면 국회의 권한은 엄청나게 키워놨다. 그 결과는 노무현 탄핵 때 모두 다 보신 그대로다. 보통의 경우 국회가 대통령을 탄핵할 경우에 대통령은 반대로 국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다시 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데 (객관적으로도 그게 공평하다) 우리는 그런 것도 없다. 한마디로 대통령이라 해도 적어도 과반수 이상의 여당 국회의원을 갖고 있지 못하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김대중은 자민련을 자기 편으로 만들기 위해 말도 안되는 생떼도 받아주며 (예를 들어 의원 꿔주기 같은 거 ^^) 그렇게 공을 들인 거고... 그런데 노무현 이전에도 과반수가 안되는 소수 여당을 가지고 국정을 운영했던 대통령이 있다. 바로 같은 노씨인 노태우이다.

그가 김대중을 사면복권해서 야당표를 분산시킴으로써 대통령에 무난히 당선된 것 까지는 좋았는데 그 바로 후에 총선을 치르고 나니 좀 예상밖의 결과가 나왔다. 양김에 대한 실망 및 신임 대통령에 대한 기대 등으로 여당 지지가 더 많아질 것 같았는데 지역민들이 일치단결해서 '자기 당'을 지지함으로써 호남은 김대중, 경남은 김영삼, 충청은 김종필이 싹쓸이를 해버린 것이다. 아마 이때부터 지역구에서 1등만 당선되는 체계가 운영되었을 텐데 민정당은 대부분의 지역구에서 2등으로 낙선해서 득표율은 상당히 높으면서도 (대선 때 노태우 지지율보다도 높았을 거다) 당선자 수는 엄청 쪼그라드는 현상이 발생했다. 김대중의 평민당이 제1야당, 김영삼의 통민당이 제2야당, 김종필의 .... 뭐더라-_-a가 아무튼 그 다음이고 이들을 다 합치면 과반수를 훨씬 넘어섰다. 그 유명한 여소야대... 이렇게 되고 보니 거대야당의 위력이 금방 나타났다. 김영삼은 김대중에게 밀린 것에 이를 갈면서도 야당공조로 여당에 타격을 주는 일에는 주저하지 않았다. 그 후 장관 하나도 마음대로 임명하지 못하는 노태우의 정치 일정은 거의 올스톱되었다. 혹자는 김대중이 정치적으로 제일 행복했던 시절은 대통령이 된 이후보다 이 제1야당 총재를 하던 시절이었을 거라고도 한다.

아울러 이 무렵에 여소야대의 위력을 또한번 보이며 열린 것이 5공 청문회... 이 역시 민정당이 과반수였다면 어림도 없었던 일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만연된 부정과 부패를 청산하여 국가의 민주화 달성을 완성하기 위하여' 열린 이 청문회는 두 종류로 나뉘어졌는데 하나는 5공비리 청문회, 또 하나는 광주청문회였다. 비리 청문회는 주로 통민당 의원들이 많이 참여해서 활약했고 위원장은 이기택, 광주청문회는 당연히 평민당 의원들의 무대였으며 위원장은 문익환 목사의 동생(그러니까 문성근씨 삼촌?)인 문동환 의원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관심을 더 많이 끈 것은 5공비리 청문회였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비리는 누가 보더라도 척결해야 할 문제고 중요한 것은 그 세부사항이 어떻게 되었는지 밝혀내는 것이다. 그러나 광주문제는 가해자와 피해자 간에 기본적으로 보는 관점이 전혀 달라서 시작부터 말이 통하지 않아 심문이 진행되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이쪽은 나온 증인들이 더 거물들이고 사안이 사안이었던 만큼 더 필사적으로 방어를 하려 들었던 반면 5공비리의 경우 증인들이 상대적으로 위축되어 의원들이 좀더 마음대로 심문을 진행할 수 있었다. 

생방송으로 진행되었던 이 청문회에서 국민들의 인기를 끌었던 것은 이에 따라 당연히 5공비리 청문회에서 활약한 의원들이었다. 요즘도 그렇지만 그 당시도 법정드라마에서 변호사나 검사가 거물 증인을 논리적으로 궁지에 몰아 꼼짝없이 유죄를 인정하게 만드는 장면은 상당히 인기가 있었는데 이 장면이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장면을 보게 된 것이다. 당시 여러명의 청문회 스타가 태어났다. 그런데... 여기서 제일 먼저 히트를 친 것은 김동주라는 사람이었다. 생긴 것도 상당히 괄괄해 보이고 목소리는 엄청 큰 인물이었는데 우선 증인에게 고함질러 제압하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한번은 어떤 군인이 증인으로 나왔는데 무슨 사안에 대해 인정하라고 다그치는 장면이 있었다. 증인은 '그렇게 볼 수 있는 여지도 있습니다'라고 말했는데 그는 그 말이 맘에 안 들었는지 예 아니오로만 대답하라고 했다. 그 군인은 좀 엇나가는 심정이었는지 계속 그렇게 볼 수도 있다고만 말하자 이 양반, 한번 매섭게 째려보더니 의사당이 떠나갈 듯이 "그랬어요, 안 그랬어요?"하고 소리를 지르던데... 와, 보고 있는 내가 무서울 지경이었다. 참, 그렇다고 대한민국 장성이라는 사람이 "저도 인격이 있는 사람입니다"하며 눈물을 글썽거리는 장면에서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그런데, 지금은 이 김동주를 그저 목소리 큰 사람으로만 기억하는 이들이 많은데 의외로 증거 준비를 철저하게 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확실한 증거를 들이대며 다그치니까 증인들이 더 꼼짝을 못했던 것이다. 사실 그점에서 칭찬을 해줘야 한다고 본다. 재판에서는 미리 준비해서 제출하는 자료가 대부분의 승패를 결정하지 재판정에서의 말싸움은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라고 하지 않는가? 문제는 그 후의 행적이다. 3당합당 때 민자당에 따라갔다가 자민련, 민국당을 거쳐서 무소속으로 나와 떨어졌다던가?

그 다음으로 인기를 끈 사람이 바로 노무현이다. 외모가 미남은 아니었지만 꽤 성실하게 보였고 (사실 그 때 인상이 나중에 더 나이들어서보다 훨씬 나은 것 같다. 보톡스가 잘못됐나...) 상당히 저음인 목소리도 좋은 인상을 주었다. (지금도 이보다 목소리가 좋은 정치인은 홍사덕밖에 없는 것 같다) 그보다 침착하게 질문하고 상대방의 답변을 끌어내어 결국 궁지에 모는 논리적인 모습이 상당한 인기를 끈 것이다. 솔직히 나는 그 때 이사람의 심문 솜씨가 수준급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다지 깊은 인상은 받지 않았다. 사실 이런 문답은 광주 청문회에서 김광일이 더 잘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정주영의 심문에서 노동자들의 고통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닦는 모습 역시 인기를 끌었는데 그때 나는 이 친구 왜 이렇게 오버하나 싶기도 했지만 인권변호사 출신이라니까 뭐 그정도는 이해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 후에 전두환 증언 때 명패 던지기 (듣기로는 증인석에 던진 게 아니라 바닥에 패대기친 거라고도 하던데 별로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보고 아 대책없는 이상주의자 하나 뜨셨구나 생각이 들었다. 자, 이사람에 대해선 다음에 또 얘기하고...

광주 청문회는 앞에서 말했듯이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었지만 김광일의 활약이 제일 나았다. 이해찬도 잘 했는데 한번 광주시민을 학살한 후 포즈를 잡는 공수부대원들의 모습이라면서 갖고 나온 사진이 무장공비 토벌 후의 군인들 사진으로 밝혀지면서 좀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당연히 조중동에선 난리가 났지). 본인도 자기 실수를 인정하면서 "하지만 이게 잘못이라 한들 수백명의 국민들을 학살한 5공의 잘못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왜 나의 사소한 실수를 그렇게 부풀리는가?"하고 항변했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그게 이 사회에서 통해야 말이지. 이인제도 그럭저럭 활동을 하기는 했는데 인상적인 장면은 없었다. (솔직히 이사람 대선에 나왔을 때 하던 소리를 보면 그다지 말재주도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누구는 가장 자신있게 당당한 목소리로 동문서답을 하는 인물이라고 하더만...)

박찬종, 당시에도 똑똑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어서 상당한 기대를 모았는데... 이 사람이 청문회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고 어떤 식의 활약을 했는지는 내 기억 속에서 그야말로 하얗게 비워져 있다. 분명히 이사람도 특위 위원이었으며 거기서 얼굴을 내밀고 있었고 가끔씩은 뭔가 말을 했었다는 건 확실하다. 그런데 그 내용은 단 한마디도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이를 호의적으로 해석하자면 '잘 해도 기억에 남겠지만 잘 못해도 기억에 남았을 것이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은 평균 수준의 심문은 했다는 의미일 것이다'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후 나에게 이사람은 어디를 가건 '있거나 없거나 별 상관이 없는 인물'의 이미지로 남아있으니 그건 안타까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보다 좀 길어졌는데 나머지는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