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서 지역주의 자체에 집착하는 것은 지역주의라는 기표안에 가려있는 참된 기의를 보지 못하게 하는 마력을 가지게 한다.
 
그래서 누가 그러지 않았는가? 한국의 지역주의담론은 '만들어진 현실'이라고

대표적으로 87년 조선일보를 주축으로 "지역주의가 모든 악의 근원이다"는 지역주의(망국)론을 들 수 있겠다. 이 지역주의 (망국)론이 가지는 문제점은 그 당시 시대적 맥락하에서 즉 민주 vs 독재 구도속에서 역설적으로 독재자들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담론이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국민들로 하여금 특히 제 3지역사람으로 하여금 그 기의로서의 독재보다는 겉으로 들어나는 지역만을 보고 영남지역주의와 호남지역주의를 동일하게 보게 만드는 착시효과를 가져오기 떄문이다. 나아가 호남인에 덪칠해진 부정적 이미지는 사람의 판단력을 더욱 흐리게 만드는 효과를 가지게 된다. 통치기술로써의 지역주의(망국)론은 그렇게 독재정권과 영남패권을 강화하기 위해 빈번히 애용되었고 나아가 합리적으로 만들어진 '만들어진 현실'이 되게 된 것이다.

나아가 이 지역주의 (망국)론은 겉으로는 물론 양비론 행태를 취하지만 실제로는 호남의 지역주의 (나아가 김대중)만을 공격하는 방향으로 쓰여진다. 물론 여기에 인종차별적요소가 가미된다. 독재정권과 그 정권에 하수인 노릇은 했던 언론은 영남의 패권적 지역주의에 대해서는 아에 입을 다물게 되는데 대표적으로 초원복집사건을 그 예로 들 수 있겠다. 그동안 지역주의 (망국)론을 주장하던 언론들은 영남의 지역주의를 비판하기는 커녕 갑자기 도청이 모든 사건의 본질인양 변질시켜버린다. 더구나 실제 선거과정에서 특정지역에 대한 부정적 묘사와 문제점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통치기술로써의 지역주의 (망국)론은 더더욱 호남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강화시킨다.
 
이러한 지역주의 (망국)론이 어느순간부터 민주개혁진영까지 오염시켜 버리게 되는데 민주개혁진영 내부의 헤게모니싸움에서 그것이 갖는 유용성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개혁진영 내부에서도 지역주의 담론의 실제 본질에 대한 접근보다는 조선일보식의 지역주의 이해에 머무르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된다. 왜냐하면 애시당초 그들의 지역주의 담론이 가지는 진정한 의도부터가 정치적 헤게모니 쟁탈을 위한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지역주의 담론이 영남의 패권적 지역주의에 대해서는 꿀먹은 벙어리가 될 수 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애시당초 그들의 지역주의 담론은 민주개혁진영내의 헤게모니 쟁취를 위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역주의에 대한 깊은 성찰은 애시당초 있지도 않았다. 다만 조선일보식의 지역주의 (망국)론을 도돌이표식으로 반복할 뿐이었다.

80년대 민주화 과정에서 합리적 자유주의세력이었던 김영삼(자유주의우파)과 김대중(자유주의좌파)이 앞서 나가고나아가 김영삼의 변절로 인해 김대중이 최종적으로 승리하게 되면서 민주개혁진영내에서 헤게모니는 호남의 지지를 받는 민주당이 쥐게 되었는데 좌파진영으로서 이런 부분들이 상당히 못마땅했던 것이다. 나아가 김대중이 가지는 자유주의좌파적 성격은 그들의 사회주의적 가치를 나름 자유주의라는 가치안에 어느정도 포함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어설픈 정치적 비판으로는 그 아성을 깨기가 힘들 수 밖에 없었다. 김대중이 가지는 진정한 장점은 자유주의를 기본으로 하면서 사회주의적 가치를 민주주의안에서 절묘하게 조화시킨 중도성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이 중도는 실용주의측면에서 접근하는 중도와는 차이가 있다.)
 
아무튼 그 결과 한국의 (극)좌파진영의 입장에서는 당근 지역주의를 악으로 만들어야 민주개혁진영내의 헤게모니싸움에서 민주당을 악으로 만들 수 있는 전술적 입장에 처하게 된다. 그런데 거꾸로 생각해 보라. 조선일보의 빨갱이론을 가지고와서 똑같이 민노당이나 진보신당과 같은 좌파진영에 대해 빨갱이집단이라는 식으로 공격할 경우 그 어처구니 없음에 대해서 말이다. 이 부분에 대해 진중권을 포함한 한국의 좌파진영은 역지사지를 해볼 일이라고 본다. 
 
그런데 이러한 조선일보식 지역주의 (망국)론은 민주당내부에서도 역시 리바이벌이 이루어진다. 그 대표적인 집단이 바로 김영삼의 3당합당이후 흡수되었던 노무현 그룹이다. 한가지 이들 노무현 그룹의 특이점은 그들이 김영삼의 3당합당으로 인해 거덜나 버린 영남민주화세력의 극소수 후예라는 점이다.  따라서 그들의 지역주의 (망국)론은 결국 망쪼든 영남민주화세력의  한풀이 성격(또는 헤게모니 쟁탈전 성격)이 가미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들이 영남의 패권적 지역주의에는 shut the mouth하면서 민주당과 호남만을 물고 늘어지는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사실 조선일보에 의해 만들어져서 실제 만들어진 현실이 된 지역주의 (망국)론의 목표에 그들 역시 충실히 복무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지만 말이다.

문제는 이러한 지역주의 담론이 가지는 천박성이다. 그것은 진정한 성찰을 거친 지역주의 담론이 아닌 독재세력을 지지했던 수구보수언론이 퍼뜨린 통치기술로써의 지역주의 (망국)론의 리바이벌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진보좌파진영과 친노그룹에게서 약간의 버젼업이 이루어지긴 했지만 근본적인 부분에서 조선일보의 지역주의 (망국)담론 나아가 지역주의 양비론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 목표는 모두 하나이다. 진정으로 지역주의 해결이 목표가 아닌 정치적 헤게모니를 위한 파편적 주장일 뿐이었다는 점이 그것이다.

결국 진보좌파나 친노그룹의 지역주의 담론 역시 조선일보의 지역주의 담론과 그 지향점이 비슷한 통치기술로써의 지역주의 담론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을 나는 "영패적" 지역주의 담론으로 부르고자 한다. 왜냐하면 결과적으로 영남의 패권을 강화하는 기술로 악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역주의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물론 아니다. 민주주의 제도 중 하나인 대의제 자체에 대해서도 한계가 지적되고 있는 마당에 완전무결한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시스템은 항상 업그레이를 필요로 한다.) 사실 계급주의가 갖는 문제만큼  지역주의도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다만 근대성의 관점에서 타파되어야 할 독재는 아니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일정부분 완화될 필요성은 있다고 하더라도 그 것이 가지는 역사적 맥락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타파되어야 할 것으로 설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선과 악의 이원법적인 대상으로 접근할 수 없다는 이야기 이다. 
 
더구나 한국의 지역주의 특히 호남의 지역주의가 가지고 있는 민주화의 보류로써의 측면을 너무 무시해왔다. 당장 호남의 지역주의에 대한 공격이 난무하는 순간 한나라당의 지지강화라는 아주 이상한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가? 이것은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과거 호남의 지역주의가 문제라는 식의 공격이 결괒거으로 제3 지역의 독재정권 지지로 이어졌듯이 말이다.(수도권에서 독재정권이 절반가까운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근본적 이유가 이러한 그들의 통치기술로써의 지역주의 담론에 기인하고 있다고 본다면 오바하는 것일까?) 참여정부시절 호남의 지역주의는 최고의 정치적 아젠다였고 끊임없이 오르내렸으면 유시민 진중권같은 이들에 의해 비판(또는 비난)받아왔지만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일시적으로 탄핵에서 언론플레이를 통한 거품성 지지가 빠진 후에 나타난 참담한 결과는 한나라당의 일당독재화로 표현될 수 있을 만큼 끔찍한 정치적 균형의 파괴뿐이었다.

자 여기서 지역주의에 대한 접급방법에 관한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된다.
 
한국의 지역주의가 극단적 대립으로 발전하지 않도록(마치 계급주의가 극한의 대립에 의한 파국으로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과 똑같이) 완화될 필요가 있지만 선악 이분법론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것은 아니라는 것을 지적할 수 있겠다. 다만 소프트랜딩이 차원에서 점진적인 방식이 필요할 뿐이다.
 
나아가 영호남의 지역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형평성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 할 수 있겠다. 사실 한국의 지역주의 양비론자들은 말만 양비론자이지 실제로는 호남의 지역주의만을 문제삼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역주의완화를 위해 더 노력하는 지역은 호남이었지 결코 영남이 아니었음에도 영남에 대한 비판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반면 호남에 대해서는 너무 과도한 비판이 난무했다고 본다. 솔직히 노무현을 뽑아주고 탄핵에서 구민주당을 버리고 열우당을 택했던 호남의 지역주의가 그렇게 문제시되는 지역주의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민주당 내 소수세력이었던 영남민주화세력을 대표하는 노무현이 민주당 간판으로 대통령이 된 상태에서 영남사람(예를 들어 유시민이나 김두관)이 민주당이름으로 호남지역구에 나왔다고 해도 그들은 충분히 당선이 되었을 것이라고 본다. 사실 지금의 추미애나 박영선도 호남유권자가 가장 많은 지역에서 당선이 되었지 않는가? 한마디로 지역주의 완화의 문제에 있어 얼마든지 상생적인 방식을 취할 수 있음에도 과거 참여정부의는 마치 자신들은 선이고 과거 민주당 사람들은 모두 수구기득권이나 악의 화신인 것처럼 취급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그리고 분당이후 만들어진 열우당내에서 지긋지긋한 쌈은 또 얼마나 많이 했는가?. 그것도 영남친노들이 호남엘리트와 대립하는 식의 아주 않좋은 모양새를 연출하기까지 했다. 이 대목에서  점점 더 친노들이 가지는 진정성에 대해 의심하게 된다..

아무튼 한국에서 독재정권에 의해 만들어진 현실로써의 지역주의 담론은 너무나 천박할 뿐만 아니라 나중에 그러한 담론을 이용했던 민주개혁진영의 영혼까지 파괴하는 이상한 괴물이 되어 버렸다. 왜냐하면 애시당초 그 출발점부터가 잘못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싸리 같은 지역주의라도 독재를 지지했던 지역주의와 민주화의 추동이 되었던 지역주의가 같을 수 있는가? 이 간단한 질문에서도 민주화와 결합했던 지역주의를 단지 악으로 몰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은 민주주의와 결합된 계급주의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그 계급주의나 지역주의가 민주주의를 파괴한다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의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기본바탕은 그들이 조롱하는 지역주의이다.(독재정권이 물러난 현재의 시점에는 특히 노무현집권기 이후에는 호남뿐만 아니라 영남도 현실적으로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정치집단간의 견제와 균형의 역활을 수행하고 있다.) 단지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지역주의일 뿐인 것이다..

다만 역사적 관점에서는 지역주의 (망국)론이 아니고 (호남)지역주의 (민주화)론을 말해도 달리 이상할게 없을 정도다. 물론 그렇다고 호남을 절대시할 필요는 없다. 그들도 그들의 필요성에서 민주화를 선택한 것 뿐이기 때문이다. 어떤 인종적인 차이점이 그런 결과를 가져온게 아니고 역사적 맥락이 그런 결과를 가져왔을 뿐이라고 본다. 다만 우리는 인정해줄 것은 인정해 주고 다만 지역주의가 극단적으로 악화되는 것을 방지하면서 소프트랜딩을 통해 호남으로 하여금 민주주의라는 멍에(?)에서 벗어나도록 해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어떤 노빠님들은 영남의 지역주의에 대해 정치인으로서 어찌 감히 꾸짓을 수 있냐고 반문하셨는데 그런 멘탈리티를 가지신 분들이 친노정치인들이 호남에 대해서 함부로 꾸짓는 것에 대해서는 어찌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지역주의와 관련하여 친노들의 태도에 대해 제가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은 지역주의를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접근하는 부분과 지역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데 있어서의 영호남간의 형평성의 측면이다. 오히려 더 비판받아야 할 지역주의인 영남의 지역주의에 대해서는 참여정부 5년내내 꿀먹은 벙어리였으면서 그 반대편인 호남의 지역주의 그것도 민주화를 추동했던 호남의 지역주의에 대해서 입에 거품을 물었기 때문이다. 사실 형평성만 충족되고 방법상 서로 상생을 도모하는 관점에서 접근했다면 오히려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을 그들의 이상한 접근(사실은 조선일보식 접근)은 결국 지역주의를 더 악화시켰고 호남의 지역주의가 더 큰 문제라는 잘못된 인식을 제3지역 사람에게 선전한 꼴이되고 말았다. 나아가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특정집단에게 정권을 넘겨주기 까지 했으니 그 폐해야말로 이루말할 수 없다고 본다.

한국의 지역주의담론이 통치기술로써의 만들어진 지역주의 담론 또는 특정지역만 갈구는 지역주의 담론이 아니고 역사적 진실과 정의에서 출발하는 지역주의 담론 나아가 형평성을 갖춘 지역주의 담론이 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