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있다. Seeing is believing”의 의미도 비슷하다. 소문으로 듣는 것보다는 직접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뜻이다.

 

 

 

경험론(empiricism)에는 온갖 조류가 있다. 이 글에서 비판할 경험론을 “순박한 경험론”이라고 부르겠다.

 

순박한 경험론에 따르면 (환각을 보는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면) 직접 관찰한 것은 이론, 가설, 사변, 망상 등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지식이다. 따라서 가설을 심판할 때 직접 관찰이 결국 심판자로 나서게 된다. 직접 관찰은 이런 면에서 이론이나 가설보다 우월하다. 직접 관찰은 확실하지만 이론이나 가설은 불확실한 것이다. 가설이 어느 정도 입증되어 이론으로 인정받는다고 해도 그것이 직접 관찰만큼 확실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순박한 경험론이 이론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직접 관찰을 보편적 법칙 등을 이용해서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론이 필요하다.

 

문제는 우리가 직접 관찰하는 사람, 바위, 갈매기, 태양 등이 존재한다는 점은 확신할 수 있지만 이론적 구조물인 원자, 전자, DNA 등이 존재한다는 점을 확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직접 관찰한 것의 존재에 대해 절대적으로 확신할 수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이론적 구조물의 존재보다는 더 확신 있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순박한 경험론자의 주장이다.

 

요컨대 순박한 경험론자는 세상에 대한 지식을 둘로 구분하고 있다. 직접 관찰은 더 순수하고, 더 확실하다. 이론적 구조물은 설명을 위해 필요하기는 하지만 오염되어 있고, 덜 확실하다. 만약 이분법보다는 스펙트럼을 선호한다면 직접적 관찰에 더 가까울수록 더 순수하고 더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물리학, 생리학, 심리학의 발달로 우리는 직접 관찰이 일종의 “이론”을 거쳐서 만들어졌음을 알게 되었다.

 

과학 철학 강의: 015. 관찰은 이론에 의존한다

http://cafe.daum.net/Psychoanalyse/Kz8I/15

 

직접 관찰이 “이론”의 오염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순수함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이론”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순수한 관찰은 불가능하다.

 

 

 

직접 관찰이 이론적 구조물에 비해 더 정확하거나 확실하다는 보장도 없다.

 

육안으로 직접 관찰하는 것과 망원경이나 현미경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관찰하는 것을 비교해 보자. 망원경을 거친 관찰은 망원경의 원리를 둘러싼 여러 이론들에 의해 오염된 관찰이다. 그렇다고 망원경으로 관찰하는 것이 덜 확실해지고 덜 정확해지나? 많은 경우에는 오히려 반대다. 직접 관찰할 때에는 흐릿하게 보이는 것이 망원경으로 보면 또렷하게 보인다. 직접 관찰할 때에는 다섯 개인지 여섯 개인지 헷갈릴 때에도 망원경으로 보면 몇 개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인간은 색으로 세상을 본다. 하지만 현대 과학에 따르면 색 자체가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색은 인간의 뇌가 만들어낸 재구성일 뿐이다. 즉 일종의 “이론적” 재구성이다.

 

인간은 고체나 액체가 꽉 차 있다고 본다. 하지만 현대 원자론에 따르면 원자는 핵과 전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원자의 대부분이 텅 비어 있다.

 

 

 

자연 선택이 만들어낸 시각 기제의 작동 결과 생긴 시각상이 완벽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과학자들이 그런 시각상보다 실제에 더 부합하는 이론적 재구성을 만들어내지 못하리라는 보장도 어디에도 없다.

 

자연 선택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진리 경쟁이 아니라 번식 경쟁이다. 번식에 도움이 된다면 설사 진리 추구에 방해가 된다 하더라도 선택될 수 있다. 반면 과학에서는 진리 추구가 기준이다.

 

어떤 면에서는 과학(또는 과학 공동체)이 자연 선택보다 우월할 수 있다. 물론 과학이 자연 선택의 산물인 인간의 뇌에 의존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과학자는 가설을 검증할 때 결국 직접 관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은 직접 관찰이 확실하거나 순수하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순수하지도 않고 확실하지도 않지만 직접 관찰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것에 의존하는 것이다. 칸트가 말한 물자체(Ding an sich, thing-in-itself)를 인간이 직접 접할 수는 없다.

 

직접 관찰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그보다 더 정확하고 확실한 것을 과학자들이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실제로 현대 과학은 인간의 감각보다 더 나은 세계상을 이론과 도구를 통해 만들어내고 있다. 이론은 설명력뿐 아니라 정확성과 확실성의 측면에서도 직접 관찰보다 우월해질 수 있는 것이다.

 

 

 

들리는 이야기가 그냥 직접 관찰에 대한 소문에 불과하다면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성립한다. 직접 관찰에 대한 소문보다는 직접 관찰하는 것이 더 낫다. 하지만 그 들리는 이야기가 수백 년 동안 수 많은 과학자들이 뺑이치면서 만들어낸 이론적 구성물이라면 직접 관찰보다 나을 수도 있다.

 

 

 

이덕하

2013-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