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당하는 집단이 있는 상황에서 그것을 먼저 문제삼는 쪽은 당연히 소외당하는 쪽이다. 하지만 그 소외가 부당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해결하기 위하여 모두 나선다면 그런 문제는 빠른 시일 내에 해결될 가능성이 높다. 사실 그런 정도의 의식이 있는 사회라면 처음부터 부당하게 소외당하는 집단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소외당하는 쪽이 있다면 그런 소외가 일어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당연 그로 인하여 이득을 보는 집단이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득을 보는 집단은 그런 상황을 개선할 이유를 느끼지 못한다. 당연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문제 있는 것으로 몰아야 한다. 그래서 이득을 계속 누릴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머리에 뭐라도 좀 든 인간들이다. 명분이 무엇인 줄을 알고, 체면을 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부당한 이득과 명분 둘 다 잃고 싶지 않은 상황에서,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한 차원 승격시켜 버린다.


아랍과 이스라엘이 싸우는 상황에서 둘 다 똑 같은 놈들이라는 논리다. 지금 이대로가 좋다는 이야기를 차마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인간들이 내세우는 논리에 저급한 인간들이 쉽게 설득 당한다. 왜냐하면 차원을 승격시킬수록 논리가 멋있게 보이거든.


노골적으로 반발하는 사람들보다 더 해악이 큰 집단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문제를 희석시켜버림으로써 문제를 해결해버리는 그런 방식을 취하는 인간들 말이다. 지금 아크로에서 벌어지는 호남차별 문제에 대한 논란에 끼어든 사람들 중에 그런 인간 몇 명 보인다. 자신이 가해자에 소속되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면서 말하고 있지만, 자신이 수혜자라는 사실은 숨기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