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작은책 12주년 기념으로 나온 강연집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의 서평을 쓰려고 했으나 요즘에 아르바이트에 찌들어 의욕을 상실해버린 터라; 그냥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의 일부분을 읽고 든 생각을 간략하게 글로 써봅니다.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에서 하종강 씨 강연부분 중에 전교조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해직당한 1600여 명의 교사들, 이분들이 무슨 대단한 간부였거나, 뛰어난 활동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교육부가 전교조에 가입한 교사 명단을 다 파악했어요. 그 명단을 일선 학교로 보냈습니다. 교장선생님이 그 교사들을 교장실로 한 명씩 불러서 “여기 노동조합 탈퇴서에 이름 석자만 쓰세요. 그러면 해직당하지 않습니다”하고 종용한 겁니다. 형식적으로 탈퇴서를 제출하고 비공개 조합원으로 몇 년 동안 조합비 내면서 활동한 조합원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굳이 그 탈퇴서에 이름 석 자를 안 쓰고 해직을 선택한 교사가 1600명이었다는 겁니다. 세상에 이런 바보들이 어디 있습니까?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 271p-

네, 다들 아시겠지만 전교조는 처음엔 불법이었고, 그래서 전교조에 가입한 교사 1600명이 해고를 당했죠. <접시꽃 당신>의 시인 도종환 씨도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이더군요.
 
사실, 해직교사들이 형식적으로 탈퇴서에 이름을 쓰고 탈퇴를 했다고 해서 비난하는 사람은 없었을 겁니다. 실제로도 그렇게 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하지만 해직당하면서까지, 바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전교조라는 조직을 지키려고 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런 사람들이 지금의 전교조를 만들어 낸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바보같이 신념을 지키며 싸운 사람들이 있어서 교사들도 노동자임을 인정받고, 교사들의 노동조합이 합법적인 조직으로 인정을 받게 된 것이지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조정래의 <인간연습>이 생각나더군요. <인간연습>에 감옥에 갇혀서 기절한 사이에 억지로 전향서에 도장을 찍혀서 전향을 해버린 인물이 나오는데, 그는 결코 자신의 의지로 전향을 한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동료들에게는 혁명의 배신자로 낙인찍히고 그 스스로도 ‘나는 어찌됐든 결과적으로 배신자다’라는 일종의 자책감을 느낍니다. 사실 제가 저 입장이었으면 굉장히 억울했을 듯 하고, 동료들이 배신자 취급한 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만…제가 말하고 싶은 건, 전향서 그 별거 아닌 종이 한 장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 더 나아가 그 별거 아닌 신념에 목숨 거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좋은 곳이 됐다는 겁니다.
 물론 그들의 신념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만은 아닙니다. 사회주의에 대해서도 굉장히 많은 비판이 나올 수 있고요. 하지만 제가 생각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것은, 사회주의의 존재 자체로 인해서 자본주의도 더 많은 자기반성을 하고 자신의 체제를 수정한 끝에 처음보다 더 발전하고 인간적인 체제가 되었다는 것이지요.-전 아직도 인간적인 체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그건 일단 패스합니다.-
 물론 전향서 쓰고 또 나와서 비밀리에 사회운동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그게 더 현명한 것이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은 전향서를 쓰지 않음으로써 그 사소한 종이 한 장이 사실은 사소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자기 신념을 끝까지 관철하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 생각합니다.
 남들이 어리석다고 해도, 그것을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가는 사람들. 혹자는 바보라 하고, 혹자는 몽상가라 하겠지만 그런 사람들이 불가능해보일 것만 같았던 것들을 조금씩 현실로 구현해냈다는 것. 조선시대에 사는 사람이 아무리 진보적이었다 한들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지금처럼 신분제가 철폐된 세상이 올 것이라 상상할 수 있었을까요? 그들의 귀에 그게 말도 안 되는 헛소리 이상으로 들렸을까요? 하지만 결국은 먼저 꿈꾼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런 사회가 이룩된 것이겠죠.
 박노해의 시 한 구절이 생각나는군요.
 
을 혼자서 꾸면 꿈에 지나지 않지만
꿈을 모두 함께 나누어 꾸면 반드시 현실이 된다

꿈을 머리나 입으로만 꾼다면 꿈에 지나지 않지만
몸으로 자기 몫의 고통을 받아 나가면 반드시 현실이 된다

꿈을 젊어서 한 때 바짝 꾸고 말면 꿈에 지나지 않지만
생을 두고 끝까지 꾸어 나간다면 반드시 현실이 된다
                                                                                    
                                                                                                                                 -박노해, <꿈을 함께 나눈다면> 중에서-

  ‘현실’은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현실’을 무시하는 바보로만 보일지 몰라도, ‘현실’을 바꾸는 것 또한 그들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진정한 ‘현실’주의자라면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부터 잘못된 ‘현실’을 바꿔나가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봅니다. 

ps. 여러분들도 아실 20세기의 위대한 축구선수 지네딘 지단. 지단의 이름인 zinedine은 아랍어로 ‘신념의 아름다움’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부러울 정도로 멋진 이름입니다.

 

 

 

나는 역사에 밀착해서 살아왔다. 역사는 목동의 피리소리에 맞추서 춤추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부상자의 신음소리와 싸움하는 소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