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적인 사정으로  Acro가 개설되고 이제사 첫 포스팅을 하게 됩니다.
아래에 바람계곡님과 하킴님께서 올려주신 "전라디언"에 관한 글이 있어 그것과 연관된 글로 예전에 써 놓았으나 인터넷에 올리지 못했던 글을 올립니다. 댓글로 달려고 하다고 글이 너무 길어 메인으로 올립니다. 

----------------------------------------------------------------------------------------------------------------------------------------
  

삼성 비자금 사건과 호남인을 바라보는 시각

                                                                          2008.2.18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시작된 삼성 비자금 사건이 특검의 진행에도 불구하고 명쾌하게 그 실체를 규명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나 특검이 이 사건을 철저히 파헤치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 사건의 본질적 측면보다 김용철 개인의 신상과 도덕성에 보다 더 문제를 삼는 국민들의 시각이 특검으로 하여금 수사를 주저하게 하는데 한 몫을 하는 것 같다. 물론 이런  현상들이 삼성의 대언론기관 로비 및 여론 조작 활동에도 영향을 받았겠지만, 우리 사회가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지역주의와  공적 영역의 문제를 사적인 감정을 기준으로 하여 사태를 바라보는 잘못이 더 큰 요인이 아닌가 생각한다.


김용철 변호사 본인도 말했지만, 필자도 김용철 개인을 의인화 하거나 영웅시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개인적으로 김용철도 공범의 위치에 있었고, 그 폭로에는 사적 보복의 성격도 없지 않아 있어 김용철 개인을 두둔할 명분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김용철 개인의 신상이나 도덕이 아니라, 삼성의 무소불위의 권력 control 의지와 그것을 관철하기 위한 비도덕적, 불법, 탑법의 행위이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김용철 개인이 아니라 삼성(정확히 이야기 하면 이건희 회장과 그 일족 및 수하들)의 불법 행위인 것이다.

보수언론과 경제단체들은 문제의 Focus를 김용철의 조직 배신행위에 맞추고 이것으로 삼성의 비리를 희석하려 한다. 일방의 잘못이 타방의 잘못을 정당화하거나 상쇄시켜 주는 것은 아니다. 김용철이 배신을 했다면 그것은 개인의 배신행위로 평가(비판)하면 되는 것이고, 삼성의 비리는 삼성의 비리대로 엄격히 다루어야 한다. 만약 김용철의 폭로가 없었으면 삼성이 애초에 비리를 저질러지 않은 것이 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삼성의 불법적 행위가 왜 이토록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우리는 왜 철저한 규명을 요구하는 것일까? 삼성의 비리의 목적이 공식적 국가권력을 통제하고, 개인(이건희 회장과 그 일족)과 조직(삼성)의 안위를 보존하는 데에서 나아가 종국에는 사회를 지배하고 통제하겠다는데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국가와 삼성을 동일선상에 놓고 바라보고, 삼성에 무비판적 태도를 보이면서 자발적 혹은 암묵적으로 삼성의 의지와 방향에 동의하게 되는 소위 “3차원 권력”이 되는 징후가 보이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의 "Big Brother"가 민간 권력에서 탄생할 수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우려인가?


우리 국민들은 과연 이번 사건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필자의 주변의 사람들의 말을 듣다 보면, 짜증나고 불쾌하고 급기야 분노까지 치미는 경우가 있다. 김용철의 폭로를 인간적 배신행위로 규정하면서 김용철의 출신지를 들어 지역주의를 끌어들인다는 점이다. 김용철이 광주일고를 나온 전라도 출신이라는 이유로 잘못된 지역주의 편견을 덧씌워, 이 문제를 더욱 인간적 의리문제로 몰고가 삼성 비리의 본질 문제를 애써 외면하려 한다는 것이다. (참고로 필자는 경상도 출신이다)

필자는 이 문제를 놓고 이야기할 때, 전라디언은 원래 그런 사람들이라느니, 앞으로 전라도 사람은 더욱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경상도 사람들로부터 거의 빼놓지 않고 들었다. 심지어 김용철 때문에 앞으로 더 힘들어지겠다며 김용철 변호사를 원망하는 호남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더욱 기가 차다고 생각하는 것은 김용철의 폭로가 의리 없는 배신 행위라고 욕하면서 이 문제를 인간적, 인격적으로 다루려는 경상도인을 비롯한 비호남권 사람들의 숨겨진 개인의 욕망(利害관계)이다. 겉으로는 개인 김용철의 인간적, 인격적 문제를 논하면서도 끝에 가서는  이 문제를 호남인  일반으로까지 확대해서 모든 호남인이 배신을 때리는 의리 없는 인간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런데 비호남인, 특히 경상도인들이 개인의 문제를 일반화하는 이런 오류를 범하는 것은 단순히 무지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철저히 자기 이해관계의 반영이며, 계산된 행동이라고 나는 본다.

회사이든, 공공기관이든, 모든 사회 조직은 그 조직원간의 경쟁은 피할 수가 없다. 특히 승진에 있어 내부 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경쟁에서 경쟁자의 일부(호남, 호남인)를 원천적으로 핸디캡을 가진 개인(집단)으로 규정해 버린다면 그 경쟁은 훨씬 수월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비영남 사람들도 호남인들을 매도하는데 영남인들에게 합세하는 이유도 그 기저에는 이러한 이해관계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들의 주변을 살펴 보라. 이러한 환경(전라도 배제)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조장하거나 활용하는 비호남인들을 도처에서 볼 수 있다. 당장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비일비재하다. 비호남인들이 이러한 환경을 최소한 조장하지 않더라도 방치하거나,  의도하지 않지만 그 수혜를 보면서도 수혜의 원인을 애써 인정하지는 않는다.


내 주변에는 경상도 사람도 있고, 전라도 사람도 많다. (경상도 출신이라 영남인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솔직히 나는 경상도 사람이 화통하고 의리 있다고 하는 말에 동의하지 못한다. 그 반대의 경우를 경상도 사람에게서 엄청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전라도 사람들이 모두 의리 있고 화끈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출신이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성격과 성향의 문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경상도 사람들이 의리를 찾을 때는 보통 청탁을 위한 지연, 학연을 동원할 때이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은 우리끼리 잘 해먹자는 뜻으로 이권이나 권력에서 외부세력을 배제하고 우리가 독점하는데 합의하자는 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영남사람들이 의리 있다는 실증적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사회사업가나 기부자의 비율이 높다거나, 불우한 동향인이나 동문들을 도우는 사례가 타 지역인들 보다 많다는 이야기도 들어 본 바 없다. 단지 동향인이나 동문 중에 고급 공무원이나 영관급 장교가 있다면 국장/장차관 승진이나 별을 다는데 필요한 로비자금을 모아주는 것은 종종 보거나 들은 적은 있다. 이것도 의리라고 한다면 할 말 없지만.


전라도 사람들에 대한 비호남인들의 인식이 왜 사실과 다르게 왜곡되어 있을까?

전라도 사람들이 실제로 타 지역 사람들 보다 더 많이 배신하고 사고를 많이 치는 것일까?

하지만 이것을 실증할 자료는 어디에도 없다. 단지 선입견과 그 선입견이 또 다른 선입견을 낳고, 그 선입견이 타지역민들의 물질적, 사회적 이해관계에 유리하게 작용함으로써 더 강화되는 과정을 밟았을 뿐이다.


나는 2년전에 고혈압으로 순간 의식을 잃고 죽음에 이르러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경험을 한 적 있다. 그 뒤로 휴대폰이나 컴퓨터 상에 나타나는 시간에 “4”자가 들어있는 것을 볼 때마다 왠지 불안하고 불길한 예감이 들곤 했다. 그리고 “4”자가 시간을 볼 때마다 자주 눈에 띄었다. 시간을 볼 때마다 “4”자가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없었다 할 정도였고, 심지어 4시44분을 본 것도 이틀 연속 계속되는 경우도 있었다. “4”자를 볼 때마다 불안은 가중되고 또 “4”자가 보이는(의식되는) 횟수도 점점 늘어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내 건강에 별다른 이상이 생기지도 않았고 시간이 갈수록 “4”자에 대한 의식도 엷어지면서 시간을 볼 때 “4”자를 보는 경우도 현저히 줄어들어 특별히 많이 보았다는 생각도 없어졌다. 당연히 건강과 “4”의 연관성도 부정하게 되었고, 심리적 안정도 되찾게 되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심리적 불안상태에서 “死”를 건강상태와 연계지어 생각하고 숫자 “4”를 무의식적으로 각인시킴으로써 다른 숫자들은 보이더라도 기억이 희미하지만, “4”만은 명료하게 의식에 남게 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노출빈도가 똑같음에도 불구하고 “4”를 유독 많이 보았다는 잘못된 인식을 하게 된 것이었다. 이것은 모든 인식이 사실을 제대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는 실례일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전라도 사람들의 잘못된 행위가 눈에 많이 띈다고 생각되는 것은 “전라도에 대한 잘못된 선입관”이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실제로는 경상도 사람도, 충청도 사람도, 전라도 사람들과  비슷한 비율로 잘못한 행위를 하지만, 경상도 사람과 충청도 사람의 행위는 의식되는 경우가 적거나 희미하지만, 전라도 사람들의 잘못된 행위는 전라도에 대한 편견이 이미 자리한 상태이기 때문에 눈에 쉽게 들어오고 실제와 다르게 그들의 잘못이 많다라고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잘못된 인식이 또 다른 선입견을 낳고 또 편견을 강화하는 과정을 밟으면서 더욱 사실과 괴리되는 인식이 고착화된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의 전라도(인)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낳게한 요인은 박정희 정권부터 김영삼 정권에 이르는 40년간의 영남정권이 만들어 놓은 영남(인)에게 유리하게 짜여진 사회 전반의 구조이다.

통계적으로 보면, 왼손잡이가 오른손잡이보다 사고율이 높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왼손잡이가 오른손잡이보다 능력이나 주의력이 떨어져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이 모두 오른손잡이 위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냉장고나 전자렌지와 같은 가전제품의 손잡이 등 우리가 생활하는데 있어 만들어 놓은 구조물 중 왼손잡이 중심으로 되어 있는 것이 하나라도 있는가? 장애인을 위한 시설물은 있어도 왼손잡이를 위해 고안된 시설물은 없다. 이러한 환경은 왼손잡이들을 불편하게 할 수밖에 없고, 왼손잡이의 사소한 부주의가 사고로 이어질 확률도 높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40년간 영남패권이 사회 곳곳에 자리 잡고, “우리가 남이가”하면서 능력과 관계없이 지연,학연으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환경에서 과연 호남인들이 정상적인 경쟁을 할 수 있었을까? 단지 전라도 출신이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할 때,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좌절을 경상도 사람들이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출세와 부에 대한 욕망이 있는 사람들이 정상적인 경쟁이 불가능(자기에게 불리한 공정하지 못한 경쟁환경)하다고 생각될 때 이들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유리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 보다 편법을 동원하거나 비상 수단을 강구할 확률은 높지 않을까? 따라서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날 가능성도 높아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왼손잡이가 오른손잡이 위주의 주변환경에서는 상대적으로 사고 확률이 더 높을 수밖에 없듯이, 영남 위주의, 혹은 호남에게 불리한 사회시스템 하에서 전라도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사고(?)의 확률이 높았지 않았겠느냐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것은 통계학적, 실증적으로 증명된 바가 전혀 없는 필자의 생각일 뿐이다.)


경상도 사람들이 현재 향유하고 있는 영남 위주의 사회시스템이 당연하고 정상적인 사회시스템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깨지 않거나, 호남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자기이해에 계속 이용하는 한, 지역주의 타파는 요원하다고 생각한다.

지역주의 문제해결은 전라도 사람들이 아니라 경상도 사람들이 먼저 풀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도 위에서 살펴본 대로 그 원인 제공을 영남(사람)에서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