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나는 공산주의자다. 적어도 나는 스스로를 그렇게 부른다. 하지만 공산주의라는 개념이 너무나 다양하게 쓰이기 때문에 “진정한 공산주의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그렇게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이념과 체제에 대해 더 명확하고 상세하게 기술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더 나아 보인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조하라:

 

「이념과 체제의 하이퍼스페이스」

http://theacro.com/zbxe/?document_srl=70467

 

그 글에 링크된 세 편의 글에서 내가 꿈꾸는 공산주의 사회의 상을 그렸다.

 

자본주의가 인간 본성에 부합하는 체제이며 공산주의는 인간 본성을 고려해 볼 때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오랜 기간 인기를 끌고 있다. 진화 심리학과 공산주의를 모두 옹호하는 나를 보고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그들이 보기에 진화 심리학자는 동시에 공산주의자일 수 없다.

 

이 글은 그런 비판에 대한 반론이다.

 

 

 

 

 

사냥-채집 사회의 남자들은 왜 사냥을 하나?
 

사냥-채집 사회도 알고 보면 상당히 다양하다. 하지만 어떤 패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체로 남자들이 사냥한 것들은 부족에서 골고루 나누어 먹는다. 사냥한 사람이 더 많이 먹지 않는다. 반면 대체로 여자들이 채집한 것들은 가족끼리만 나누어 먹는다. 사냥한 것에 대해서는 복지의 원칙이, 채집한 것에 대해서는 수익자 부담의 원칙이 작동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수익자 부담의 원칙이 무너지면 아무도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냥-채집 사회 남자들의 사냥은 이런 주장이 틀렸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간에게는 온갖 욕망이 있다. 돈 또는 재화에 대한 추구가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유일한 원동력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사냥-채집 사회의 남자들은 사냥을 하나? 그냥 놀면서 남이 사냥한 것을 얻어 먹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즉 무임승차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진화 심리학자들이 이 문제를 완전히 푼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럴 듯한 설명이 있긴 하다.

 

첫째, 집단 선택론을 적용한 설명. 이 설명에 따르면 남자들은 자신의 부족의 번성을 위해 사냥을 한다. 나는 집단 선택의 논리가 작동하더라도 상당히 미미할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이 설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둘째, 사냥을 통해 남자는 지위와 평판을 얻는다. 즉 사냥을 열심히 잘 할수록 높은 지위와 좋은 평판이 생긴다. 지위와 평판이 좋으면 얻는 것이 많다. 그 중 하나는 여자의 사랑과 성교 기회다. 왜냐하면 여자는 대체로 지위가 높고 열심히 일하고 정직한 남자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냥-채집 사회에 대한 연구를 보면 사냥을 잘 하는 남자가 더 많은 여자와 결혼하고 더 많은 여자와 성교한다.

 

현대 산업 사회에서 설사 임금을 전혀 받지 않더라도 남자들은 노동을 통해 지위와 평판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일할 의욕이 생긴다. 남자들만 일하는 작업장에 예쁘고 젊은 여자들이 가만히 앉아서 구경만 해도 생산성이 높아진다. 아마 예쁘고 젊은 여자가 등장하는 사진이나 동영상만 있어도 열심히 일할 것 같다.

 

나는 지위와 평판에 대한 남자들의 열망이 너무나 강력해서 임금을 전혀 주지 않아도 현대 산업 사회가 잘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너무나 많은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이런 문제를 예측하기는 매우 어렵다.

 

 

 

 

 

전통의 힘
 

인간이 다른 사람들의 믿음과 행동에 강하게 영향을 받도록 설계되었음을 암시하는 증거들이 많이 있다.

 

어떤 실험에 따르면 옆에 있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막대기 A가 막대기 B보다 길다”라고 확신에 차서 이야기하면 B가 A보다 길다는 것이 뻔히 보일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막대기 A가 막대기 B보다 길다”라고 이야기한다.

 

어떤 실험에 따르면 권위 있어 보이는 사람이 강력한 어조로 요구하면 많은 사람들이 옆 방에 있는 사람이 죽을 지경이 되도록 전기 충격을 준다.

 

온갖 미신과 종교의 터무니 없는 주장들이 과학이 엄청나게 발전한 21세기에도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사냥-채집 사회의 삶을 고려해 볼 때 이런 경향은 이해할 만하다. 오랜 세월 많은 세대를 거쳐 축적된 지식들은 생존과 번식에 매우 유용했을 것이다. 설사 그런 지식 중 잘못된 것들이 있다 하더라도 대체로 믿고 따르는 것이 전체적으로 따져 보았을 때 더 나았을 것이다. 따라서 어린이는 어른들의 말을 대체로 믿는 것이 유리했을 것이다. 또한 남들이 믿는 것을 믿으면 왕따 당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인간은 진리를 추구하도록 설계되었다기보다는 번식을 잘 하도록 설계되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인간의 습성 때문에 어떤 것이 일단 전통으로 정착되면 강력한 관성을 발휘한다. 왕정, 신분제, 종교, 미신 등이 얼마나 강력한 관성을 발휘했는지 보라. 왕정이 무너지기는 힘들었지만 일단 민주공화정이 전통이 되면 왕정주의자들은 조롱거리가 된다. 나는 선진 산업국에 왕정주의자들이 거의 없는 이유가 모든 사람들이 매우 현명하고 유식해서 왕정과 민주공화정을 상세히 검토해서 장단점을 비교해 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부분이 전통의 힘으로 설명된다. 사람들은 왕정이 강력한 전통이면 왕정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민주공화정이 강력한 전통이면 민주공화정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종교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다. 종교가 강력한 전통이면 사람들은 아무리 터무니 없더라도 종교의 온갖 헛소리를 믿는다. 예컨대 처녀가 애를 낳고, 죽은 사람을 살리고, 물 위를 걸어 다녔다고 해도 믿는다. 아직 종교가 10% 미만의 소수파가 된 나라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일단 그렇게 되면 무신론이 강력한 전통으로 자리 잡을 것이며 사람들은 또한 이전에 종교를 무턱대고 믿었던 것만큼이나 무턱대고 무신론을 믿을 것이다.

 

자본주의/공산주의 논쟁의 경우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단 공산주의가 정착되면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시할 것이다.

 

 

 

 

 

불가능한 것은 모두 포기해야 하나?
 

나는 부정부패가 전혀 없는 사회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부정부패가 만연하는 것을 손 놓고 구경만 해야 할까? 내 생각에는 부정부패 없는 사회라는 이상에 최대한 가깝게 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물론 이 때 이런 목표를 위해 무엇을 희생해야 하는지를 따져야 할 것이다. 부정부패 없는 사회라는 이상과 사생활 보호라는 가치가 충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논쟁의 핵심에는 “부정부패를 없애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놓여 있다. 나는 부정부패를 없애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몇 가지는 희생할 수 있다고 본다. 예컨대 1억 이상의 거액 뇌물의 경우 공소시효를 없애도 될 것이다. 또한 고위 공직자의 경우 유죄 판결을 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심지어 재판을 시작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혐의만 있다면 언론에서 보도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인권 침해다. 무죄추정의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고위 공직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인권이 이 정도는 침해될 것을 감수해야 하는 사회가 좋다.

 

공산주의 사회가 되면 분명히 희생되는 것이 있다. 대규모 이윤을 추구할 기회, 엄청난 돈을 벌어들일 기회가 사라진다. 그리고 나는 그런 희생을 감수할 의향이 있다. 내가 거액 뇌물에 대한 공소시효를 없애고 고위 공직자의 인권을 어느 정도 침해해서라도 부정부패를 없애기 위해 힘써야 한다고 보는 이유는 그렇게 해서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손익 분석은 나의 가치 체계에 달려 있다. 나는 고위 공직자나 거액 뇌물을 받은 사람의 인권보다 부정부패 없는 사회를 위에 놓고 있는 것이다. 공산주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나는 자본주의로 인한 폐해를 없애는 것을 떼돈을 벌 수 있는 기회 위에 놓고 있는 것이다.

 

 

 

 

 

인간 본성은 모두 장려해야 하나?
 

진화 심리학계에서 강간에 대한 적응 가설과 부산물 가설이 대립하고 있다. 여전히 증거가 부족하고 개념적으로도 혼란스럽지만 나는 적응 가설이 더 가망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즉 나는 남자가 때에 따라서는 강간을 해서 여자를 임신시키도록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되었다고 본다. 그렇다고 내가 강간을 금지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강간을 장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강간을 처벌하는 법을 지지한다.

 

인간은 내집단과 외집단을 나누어서 외집단을 경멸하고, 증오하도록 설계된 듯하다. 그렇다고 내가 인종주의와 민족우월주의를 지지하나? 그렇지 않다. 나는 세계시민주의 또는 국제주의를 지지한다.

 

자본주의가 인간 본성과 부합하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일관성 있다면 강간이나 민족우월주의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만약 강간이 적응이라면 강간을 지지해야 할 것이며 내집단/외집단 메커니즘이 적응이라면 민족우월주의를 지지해야 할 것이다.

 

 

 

 

 

인간은 너무나 복잡하다
 

대량 모듈성(massive modularity) 테제에 따르면 인간의 마음은 수백, 수천 개의 모듈로 이루어져 있다. 그 모듈들 중 몇 개 또는 수십 개 또는 수백 개 또는 수천 개가 자본주의와 잘 어울린다고 해서 인간 본성이 자본주의를 가리키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공산주의와 잘 어울리는 모듈들이 그만큼 많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엄청나게 많은 메커니즘들이 엄청나게 다양할 수 있는 환경 입력 값들과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그리고 수 많은 인간의 마음들이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상황은 엄청나게 복잡하다. 아직 진화 심리학자들은 기껏해야 수백 개의 모듈들에 대해 조금 연구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산주의는 불가능하다고 단정하는 것은 엄청난 지적 허영이다.

 

조합적 폭발(combinatorial explosion)이라는 말이 있다. 동전 던지기를 20번만 해도 100만 개가 넘는 경우의 수가 있다. 수 많은 인간들이 엄청난 경우의 수를 자랑하는 환경과 상호작용해서 만들어낼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인간의 잠재력은 무한하다는 말은 유효하다.

 

 

 

2010-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