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가정을 하는 것은 실없는 일인지 모르지만, 아마도 노무현 대통령의 업적으로 첫 손에 꼽을 수 있었던 것은 '수도 이전'이 되었으리라.

 국회에서 정당 간의 원만한 합의 하에 만들어진 법률을 허황된 이유로 백지화 시켜버린 헌재 재판관들의 반혁명이 아니었다면..이 제도적인 혁명의 영향력은 조용하고 철저하게, 그리고 이 땅의 모든 민초들의 삶 속으로 구석 구석 스며들 수 있었다. 서울은 남한 사회의 집적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상징적인 자본이 결집된 결정판이자 그로부터 배태되는 모든 모순의 소용돌이에 둘러 싸여 있는, 남한 인구의 절반을 이미 집어 삼킨 블랙홀인 것이다. (남한 사람의 욕망의 현주소를 가장 적나라하게 대변하는 학부모들의 서울대 중심 학벌주의는 이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발전적인 세계의 어느 수도를 가봐도 한 나라의 주요 대학의 절반 이상을 한 도시가 독차지 하고 있는 곳은 없다.)  
 서울이 남한 민중들에게 주입하는 욕망의 위력은 너무나 어마어마해서, 타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소외감을 제대로 느낄 여력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 스스로도 그쪽으로 편입되고 싶다는 강력한 계층 상승 욕구를 느끼고, 자신들의 소외감을 갈망으로 대체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내부 속에 사는 괴물은, 자신의 모습을 그 인간에게 스스로 내보이지 않는다. 그 괴물은 욕망을 가진 인간이 추락하게 될 때, 그럼으로써 스스로를 분해하게 될 때에만 자신을 드러낸다. 한국 자본주의 사회의 중심에서 마천루처럼 우뚝 서 있는 '서울중심주의' 라는 괴물도 마찬가지다. 만성적인 지역의 저 개발, 저 성장, 그리고 지역 주민의 내면에 뿌리 내린 소외감이 돈을 뿌림으로서 해결된다고 믿는 것은, 바로 서울중심주의자들의 가부장적인 이데올로기의 환각이다. 서울중심주의자들의 환각은 서울의 상징성이 해체될 때에만 드러날 수 있는데, 노무현은 이러한 프로그램의 시작을 바로 목전에 두고 어의없게도 돌뿌리에 걸려 넘어졌다. 그것과 동시에 노무현을 넘어서는 정치인이 나올 가능성은, 노무현이 꿈꿨던 현실적 가능성의 닫힘과 함께, 먼 미래를 향해 기약 없이 유예되고 있다. 시작의 끝이 너무 빨리 찾아옴으로써, 깨져버린 조각을 잡고 있는 민중들은, 작은 것들에만 분노하고 큰 것에는 침묵하는 슬픈 대중들이 되어가고 있다. 정치꾼들은 판을 쳐도 정치가를 찾아볼 수 없는 이 시대는, 슬픈 대중의 분열적인 자화상과 불안감들로 무겁게 채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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