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대학생이 교내에 붙인 대자보 하나가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동안 인터넷에 온갖 종류의 정부비판글이 넘쳐나고, 비슷한 주장의 대자보들이 붙은 적도 많았을 겁니다. 그런데 모두가 흘려 듣고 넘어갈 법한 글이 이렇게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것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인 것이죠.

몇번 접해본 대자보들의 내용 자체는 아고라 등에 흔한 게시글 수준에 불과합니다. 성급한 주장과 정확하지 못한 펙트들도 군데 군데 눈에 뜨이고요. 그럼에도 자신의 삶이 안녕하지 못하다 여기는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그 이유가 본인들의 잘못이 아니라 무언가 사회구조적인 것에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구체적 대안 제시가 없고 세력으로 조직될 수 없기 때문에, 잠시 새로운 형태의 불만표출운동으로 유행하다가 잠잠해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진행되는 양상이 딱 Occupy 운동의 한국 버전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니 무슨 대단한 규모의 반정부운동이라도 벌어진양 전전긍긍 신경을 곤두세우시는 분들은 안심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주목하는 것은 대자보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그 <안녕> 이라는게 대체 뭘까, 그것의 정치사회적 의미는 무엇일까 하는 것입니다. 

거창한 야망을 성취하려고 애쓰지 않는 이상, 2013년 대한민국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안녕한 삶이란 대략 다음과 같을 겁니다. 평균 학력인 대학교를 다닐 수 있고, 자기 발전에 약간이나마 투자할 수 있으며, 마음에 드는 이성과 알콩달콩 연애도 하고, 언제 짤릴까 불안하지 않은 직업을 가질 수 있으며, 중병이 아닌 이상 질병에 걸리면 치료받을 수 있으며, 결혼해서 두세명 정도의 자녀를 평균 수준으로 양육할 수 있으며,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주거 공간과 국산 승용차를 굴릴 수 있으며, 나름 검소하게나마 노후 대비를 할 수 있는 소득을 올릴 정도는 되어야 어디가서 '안녕하다' 라고 말할 수 있을겁니다.

개인의 안녕한 삶이라는게 이렇고, 사회적으로 안녕한 삶이라는 것도 존재하죠.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고, 민주주의와 양심 사상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고, 국가 경제가 활기있게 돌아가고, 선거는 의혹 없이 공정하게 치러지고, 정치인과 공무원들은 국민의 공복답게 효율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전쟁의 공포에 떨지 않아도 될 정도는 되어야 비로소 안녕스러운 국가라 할 수 있을겁니다.

그렇다면 과연 2013년 대한민국의 평범한 시민들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안녕한 삶을 살고 있을까요? 이 질문에 그렇다라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의심스럽습니다. 그럼에도 대통령과 집권세력은 일부 목소리 큰 사람들이 시끄러운거만 빼면 이 나라가  안녕하게 잘 굴러가고 있다는 듯이 행동하고 있고, 현상유지 외에 종북몰이와 불복프레임말고는 보여주는게 없습니다. 안녕 신드롬의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죠.

물론 과거에 우리 국민들이 지금보다 안녕했던 것은 아닙니다. 삶의 질이나 풍요는 오히려 지금보다 훨씬 못했던게 사실이죠. 그러나 당시에는 <파이가 커져야 나눠먹을 것도 많다> <아랫목이 따뜻하면 윗목도 저절로 따뜻해진다> 라는 주장들을 신뢰할 수 있었고, 누구나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운명이 바뀌는게 가능했던 시기였습니다. 어쨌거나 희망이 있었고, 그래서 좋은 시절을 기다리며 견디는게 가능했던 것이죠.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파이가 커지기는 커녕 현상유지도 급급하고, 아랫목의 온기는 그들만의 잔치가 된지 오래입니다. 계층은 고착화되고, 양극화는 심해지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인서울을 목표로 청소년기를 보내고, 청년들은 취업준비에 목을 매고, 중장년기 20 ~30년동안 생활하기에도 급급한 소득으로 버티다가, 대책없이 노년기를 맞아야하는게 정해진 숙명처럼 강요되고 있습니다. 조금만 삐끗하면 그 과정에서도 낙오되어 인생이 쫑나는건 다반사이구요. 이런 불안하고 두려운 삶이 안녕할 리가 없는거죠.

결국 안녕하십니까를 물으며 대자보를 적고, 안녕하지 못하다며 공감하는 사람들의 요구를 해결하려면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기존과는 다른 패러다임과 다른 질서가 형성이 되어야만 가능합니다. (저는 그래서 안철수현상과 이번 안녕 신드롬을 동일한 맥락의 사건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국민들의 다수는 박근혜에게 그런 것을 기대했었는지도 모릅니다. 아직도 많은 분들이 차마 기대를 접고 싶어하지는 않는 것 같구요. 어쨌거나 박정희 향수라는건 경제성장기 호시절에 대한 추억에 다름 아니고, 그 시절의 희망과 역동성을 다시 경험하고 싶어하는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은 70년대가 아니고, 박근혜는 박정희가 아닙니다. 그걸 처참하게 확인하는 5년이 될거라 예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