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대충 써갈기고 얼른 끝내버리자. 오늘 올릴 내용은 비교적 세간에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별 재미도 없다. 가능하면 이 아래의 쓸데없는 글 보시기 보다 그냥 옛날 인터넷 검색을 권해드린다.

암튼... 조순이 서울시장으로 당선되고 나서 뭔가가 이상하다는 낌새는 곧 나타났다. 당선 직후 김영삼을 찾아서 허리를 90도로 굽히며 인사를 하고는 "앞으로 서울시는 국가적 관점에서 운영하겠으며 특정 정당의 이해관계는 절대 반영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그 후 민주당 사람들은 조순을 만나기가 몹시 힘들었다. 이는 그가 의도적으로 자당과의 거리를 두는 게 분명했다. 김대중 측에서는 속으로 끙끙대면서도 겉으로 드러내 놓고 그를 비난하거나 하지는 못했다. 당연히 그를 비난할 경우 잘못된 인사를 서울시장으로 만든 당선시킨 DJ의 판단부족을 우선 탓하지 않을 수 없고 이는 그의 자존심을 크게 손상시켰을 것이다. 더구나 그가 반김대중 노선을 대놓고 드러낸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내 보기엔 바로 이것이 김영삼과 김대중의 차이점이다. 김영삼이라면 이럴 경우 우선적으로 이자가 아직도 나의 편인가 아니면 배신을 한 것인가 그것부터 확실하게 파악을 하려고 들었을 것이며 만일 그가 배신한 것이 사실이라면 체면이고 뭐고 일체 던져버리고 죽기살기로 싸움을 벌였을 것이다. (과거에도 그런 경험이 여러번 있다.) 그런데 김대중은 그냥 어정쩡한 상태로 시간을 끌었다. 어쩌면 그 후의 일이 없었을 경우 둘의 관계는 불가근불가원 상태로 계속 유지되었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그것도 나는 회의적이다. 나중에 드러났지만 조순의 야심은 생각보다도 훨씬 컸으니까)

유시민이 등장한 것은 대강 이때쯤... 요즘 그의 저서 목록에서도 슬그머니 빠져 있다는 그 '게임의 법칙'이 등장한다. 내용이야 모두들 아시는 그대로... 결국 김대중으로서는 가망이 없으니 제 3후보를 내세우고 뒤에서 수렴청정을 하라는 말이다. 사실 도대체 이때의 그 제3후보가 누구를 염두에 둔 것인지는 아직까지도 미지수이다. 그가 입을 열지 않으니 알 수가 없는데 대개는 그가 언급한 후보는 조순이 틀림없으며 이는 그가 서울대 경제학과 학연에 목을 매고 있는 속물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고들 한다. 물론 그를 변호하는 입장에선 꼭 조순을 말한 건 아니고 그가 김대중과 결별한 순간 그의 제안은 물건너 갔다는 것이다고들 하는데 조금 궁색하긴 하다. 일단 위에도 말했듯이 당시의 조순이 김대중과 그리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으며 그를 제외하면 국정을 무리없이 운영할만큼 '현명'하면서도 김대중이 뒤에서 행사하는 영향력을 그냥 받아줄 정도로 '무능'한 인물을 찾기는 굉장히 어려웠을 것이다. 아무튼... 당시는 유시민이 그다지 욕을 먹지 않는 상태였기 때문에 김대중 지지자들도 "그 성의는 이해하겠는데... 에이, 그게 말이 되나?"정도로 넘어가는 분위기가 대세였다. 강준만이 "그는 호남에 대해 (손호철 등과 같이) 말만 가지고 하는 게 아닌 진정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식의 극찬을 한 것도 이 즈음이었다.

자, 문제가 정식으로 불거진 것은 그 다음이다. 우선 김대중은 김영삼에서 대선에서 패한 후 일단 정계은퇴를 했다. (물론 그 당시의 마음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직후 조중동의 DJ 예찬론은 얘기할 필요가 없겠지.) 그 후의 민주당 대표는 말도 안되는 통합조건 덕분에 꼬마민주당으로부터 통합된 당의 공동대표로 승격된 이기택... 밑에 어떤 분이 전에 이기택 연설하는 걸 봤는데 핏대만 버럭버럭 세우더라는 내용의 댓글을 다셨던데 (지금은 지워진 것 같다) 나는 본 적 없지만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을 거라고 본다. 이기택은... 좋게 말해서 공격적인 정치를 하는 사람이었다. 불리한 상황에서도 배수진을 치고 강력하게 맞서서 결국 여당으로부터 예상보다 큰 양보를 얻어내는 경우도 종종 있었 다. 그런데 문제는... 그의 생떼는 여당보다 김대중을 향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는 점이다. 그가 어디선가 한번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도 있다. "(DJ)는 내가 사리에 어긋나는 요구를 하거나 억지를 부릴 때도 인간이라고 하기 어려운 수준의 인내심을 보여주며 이를 다 받아줬다" 그런데 그 말을 하고 난 후에도 김대중을 향한 억지와 생떼는 오히려 점점 더 심해졌다. 어쩌면... 김대중의 정계은퇴 복귀와 이기택의 다음 순서는 자기라는 생각은 어차피 충돌할 수 밖에 없었을지 모른다. 문제는 방법이다. 어느날 그의 '권노갑을 아예 당에서 제명시켜라'는 요구는 한계를 넘어선 것이었다. 결국 김대중은 자기 계파 의원들을 전부 데리고 나와 다른 당을 차렸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잔류하게 된 의원 가운데 아까운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다. 호남에서 욕을 많이 먹는 독수리 5형제도 그렇지만 원래 동교동계에 DJ 심복이었는데 이때 갈라진 사람도 꽤 있었다.)

오늘의 주제는 조순이었지... 그래, 아마 그는 김대중이 탈당하는 순간 "옳거니!"했을 것이다. 이제 그와 아무 부담없이 갈라설 수 있는 명분이 생긴 것이다. (그에게 동반 탈당을 권유했던 눈치없는 의원도 있었다만... ^^) 사실 이기택과 조순은 그 이전까진 사이가 무지 나빴는데 (물론 이기택은 자신이 대선후보가 될 때 조순이 자기 영향력 밖에 있는 것을 경계했다) 이때부턴 일치단결했다. 그래봐야 뭐하나? 총선에서 민주당은 완전 죽을 쑤고 이기택 등 당 지도부는 전멸, 그의 대권을 향한 꿈은 이때 완전히 막을 내렸다. (김대중의 신당 역시 별로 좋은 성적은 거두지 못했지만) 다만 김종필의 자민련이 이때 약진을 해서 그 후 DJP 연합을 통한 정권교체의 싹이 트기는 했다.

이기택이 대권에 대한 야심을 포기한 후에 민주당의 얼굴은 공식적으로 조순이 되었다. 그래봐야 제4당의 후보였지만 그는 나름대로 자신이 있엇던 모양이다. 자신의 경제학적 지식과 후덕하게 생긴 외모, 도덕성(뭐? -_-a) 등을 국민들이 믿어줄 거라고 생각했는지 상당히 당당하게 대권 행보를 시작했다. 자, 코메디는 이제부터 시작된다. 그전에도 조순이 말재주가 별로 없다는 것은 알려졌지만 '그래도 잘 나가는 경제학잔데 아주 바보이기야 하겠어?' 하는 심리와 야 성향 지지자들의 자기편이라는 인식이 어느 정도 방패막이가 되어 주었다. 그런데 우리편이라는 콩깍지가 벗겨지는 순간 드러난 그의 모습은 말실수로 유명한 김영삼의 뺨을 여러 차례 갈기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공개 기자 간담회에서 나온 에피소드 가운데 2개만 소개하겠다. (세부 내용은 내 맘대로 변형하였다)

기자: 기여금입학제에 대한 의견은 어떻습니까?
조순: (자신있게) 시행해야죠. 이 문제를 법으로 금지한다는 게 말이 안되는 일입니다. (아마 간담회 전에 당 내부 방침을 듣고 온 모양이다)
기자: 그럼 지금 어느 대학이 돈을 받고 학생을 입학시킬 경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조순: 당연히 법에 따라 단속을 해야죠.
기자: 네? 그럼 지금까지 정부가 해온 입장과 아무 차이가 없지 않습니까?
조순: (한동안 눈만 깜박거리다가)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기자: 가상적인 상황입니다. A국은 우리와 관계를 수립하고 싶어 하는데 기존에 우리와 관계를 맺은 B국이 이를 반대할 경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조순: 네... 외교적인 수단을 강구하겠습니다.
기자: 어떤 외교적인 수단 말입니까?
조순: 저... 외교란 아주 중요한 겁니다. 그러니까 외교적인 수단을 써서...
기자: 아니, 구체적으로 어떤 외교수단으로 이를 해결하겠느냐 이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 기자도 좀 집요하긴 하다. ^^)
조순: 에... 외교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결정하겠습니다.

그가 매스컴에 모습을 드러내는 횟수에 반비례해서 그의 인기는 계속 떨어져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는 자신의 부진의 원인을 김대중 탓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다른 후보자는 거의 건드리지 않는데 비해 그는 오로지 김대중만 붙잡고 늘어졌다. DJ의 말바꾸기, 분당, 구태, 정치자금 문제 (그 대부분의 정치자금은 김대중이 자신을 서울시장으로 만들기 위해 썼다는 건 그도 몰랐을 리가 없다.)가 전부 그의 타겟이 되었다. 김대중은 여기에 한마디도 대꾸를 하지 않았다. 군소야당 후보를 건드려 봐야 이득이 안된다는 이유도 있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자신이 서울시장에 잘못된 사람을 내보냈다는 것을 끝까지 인정하기 싫었던 모양이다.

결정적인 코메디는 그 다음에 이루어졌다. "김대중이 자신있다면 국가경영 문제를 놓고 나와 일대일로 생방송 공개토론을 하자. 단 토론의 주제는 경제 분야로 제한해야 한다."  경제분야로 제한 경제분야로 제한 경제분야로 제한 경제분야로 제한 경제분야로 제한 경제분야로 제한 경제분야로 제한 경제분야로 제한 경제분야로 제한 경제분야로 제한 경제분야로 제한 경제분야로 제한 경제분야로 제한 경제분야로 제한 경제분야로 제한 경제분야로 제한 경제분야로 제한 경제분야로 제한............. 하긴 옛날에 우간다의 이디 아민은 자국과 전쟁 중이던 탄자니아의 대통령에게 자신과 레슬링 시합을 해서 승부를 가리자고 한 적도 있지. ^^

지지도가 계속 떨어지자 그도 결국은 포기... 그러나 김대중에 대한 그 원인을 알수없는 원한은 더더욱 타올라 그는 이회창의 신한국당에 투항하였다. 그런데 그렇게 되자 이회창과 조순 연합의 시너지 효과는 의외로 컸다. 그 이전까지는 IMF 및 아들의 병역 면제 등 온갖 악재로 김대중의 지지도에 비해 절반도 안되던 그의 지지도는 조순과의 합당 이후 급상승하여 대선이 가까와오며 하루하루 무섭게 김대중을 따라잡았다. 결국 대선 결과는 1.2% 정도 차이로 김대중의 승리...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대선이 일주일만 후에 있었다면 이회창이 충분히 역전을 시킬 수 있었다고들 말하고 있다. DJ에 대한 조순의 복수(다시 말하지만 무엇에 대한 복수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_-)는 거의 성공할 뻔 했던 것이다.

ps) 결국 김대중은 죽을 때까지 조순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